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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Sep 19. 2022

뱃속이 환한 것들

narrative recepi: 버섯버거

영우가 김밥만 먹는 이유는 속이 환한 음식이기 때문이지. 보이는 그대로의 것들. 생각한 그대로의 것들. 나는 속을 이유도 실망할 이유도 깜짝 놀랄 어떠한 이유도 없지. 세상에 많은 것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어. 유혹에는 때론 가장과 과장이 숨어있어. 그래서 나는 혼란스럽고 두려워. 물론 나의 친구는 이것을 마치 퀴즈인 마냥 퍼즐인 마냥 즐기기도 해. 실망은 또 실망대로 사는데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해. 글쎄다, 나는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뱃속이 환한 사람을 좋아해.


뱃속이 환한 사람 / 박노해 


내가 널 좋아하는 까닭은

눈빛이 맑아서만은 아니야


네 뱃속에는 늘 흰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는 게 보이기 때문이야

  

흰 뱃속에서 우러나온

  

네 생각이 참 맑아서

네 분노가 참 순수해서

네 생활이 참 간소해서

욕심마저 참 아름다운 욕심이어서

  

내 속에 숨은 것들이 그만 부끄러워지는

환한 뱃속이 늘 흰 구름인 사람아  


 『사람만이 희망이다』 수록 詩



콩고기, 가지 베이컨, 두부 스테이크, 아몬드 밀크. 자신을 속이고 나를 속이는 많은 음식들에 대해 생각해 보아. 하늘, 꽃, 나무만큼이나 익숙해져 버린 명사들, 그리고 지금도 새로 태어나고 있는 '흉내 내는' 이름들은 마치 '호박이 뭐가 부족해서 줄을 그어 수박이 되려고 하지?' 그런 생각을 들게 해. 호박은 호박 자체로서 참 아름답고 특별한데 말이야. 비단 채식에 관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야. 그것의 핵심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있고 그것에 관한 자신감이 있다면 우리는 그 무엇을 흉내 낼 필요가 없지.


마침 마주친 예쁜 호박


필리핀 배경을 갖은 치과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어. 그는 나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고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면서 'different from everyone else here.'라고 말했지. 그는 응답했어 'Being different is a good thing. You are unique.' 맞지. 다르다는 건 좋고 중요한 거야. 내가 큰 무리에 들어가서 비슷함을 흉내 내고 튀지 않으려고 애쓰고 원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건 심각하게 재미없는 일이지.


한 치의 의구심도 들지 않는 그런 식당이 있어. 집에서 왔다 갔다 80km의 거리에 톨비도 내야 하지만 나는 이곳에 오는 내내 아직 겪지 못한 즐거움을 상상을 하며 가벼운 기분을 느껴. 이미 4번째 발걸음이지만 처음 맛보는 음식들에 대한 어떤 믿음이 있어. 오늘은 마음에 '버거'를 품고 이곳에 왔어.



베지앙 버섯 버거


처음에 영우 김밥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잖아. 뱃속이 환한 김밥. 이 버거가 그랬어. 영우라면 이 버거를 좋아했을듯해. 고기가 되고 싶은 채소, 고기를 먹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채소, 고기가 우월하다는 암시를 품고 있는 채소. 이런 것들은 알 수 없는 패티로 나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어. 응, 그런 적이 종종보다는 자주 있었어. 오늘의 버거는 참 그녀스럽게도 '여기 버섯 있어요!' 하면서 버섯들이 꼬물꼬물 흘러나오는데, 왜 그런 거 있잖아, 너무 그 사람이 그 사람스러우면 웃음이 나는 거. 'It's so you.' (참 너도 너다.)라는 말을 늘 칭찬으로 여기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깨 으쓱하는 나에게 오늘의 버거는 함박웃음이었어.



뱃속이 환한 버섯 버거

일전에도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었지. 우리가 이름에 집착하는 순간 그 이름에 부응하기 위해서 원치 않게 가면을 쓰게 된다는 말.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우리에게 생기는 기대치 때문에 온전하게 즐기지 못하는 맛들에 관해서. 되고 싶은 거 다 빼고, 내가 나인 자체로 멋있고 특별할 수 있는 것. 그런 음식을 만들고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 나는 그래서 생각했어. 음식을 만들기 전에 이름을 정하는 게 아니라 그 후에 이름을 짓는다면 그 자체의 맛과 멋에 집중한 음식을 소개할 수 있을 거라고.


음식에는 작은 kick과 풍미가 필요해. 어쩌면 그건 건빵 속 별사탕 같은 존재일 거야. 별사탕 먹으려고 건빵 먹는 거 아닌가? 오늘은 버거는 버섯도 버섯이지만 카라멜라이즈드 된 양파가 '나 양파야!' 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낸 그 순간이 멋짐이었어. 양파가 캬라멜라이즈드 될 때 짜장 맛과 향이 나거든. 세상에 양파 같은 존재가 또 있을까? (있지, 마늘과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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