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tdaal Apr 06. 2023

'나도 그렇다'는 그 말

 [둥근사각형] 4. 너와 내가 옳다는 말

카페인이 두통에 좋지 않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커피는 내게 있어 묘약이다. 머리가 아프면 속이 안 좋을 테고 그럼 먹지 않아 속이 비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머리가 아픈 악순환이 반복된다.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힘을 내서 마음 크게 다잡고 집 밖을 나선다. 그리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 미신 후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은 늘 가벼웠다.


오늘은 정말 굳게 마음먹고 30분을 걸어 옆옆 동네에 갔다. 외부 테이블에 앉아 벌컥벌컥 마시는 아이스 롱블랙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약이다.





 저도 비 맞는 거 좋아해요!


빗방울이 떨어진다. 종종 있는 일이다. 거세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밖에 앉은 모든 이들이 테이블을 떠나지 않았고 내 어깨 위로 톡톡, 노트 위에 톡톡, 커피잔 안에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개의치 않는다. 아니 오히려 좋다.


약을 한잔 더 주문했다. 테이블을 정리해 주려고 온 직원에게 '저는 아이스 씹어 먹는 거 좋아해요. 얼음만 남았지만 두고 가줄래요?' 말하자 '물론이죠! 저도 좋아해요. (가져가려고 해서) 미안해요.'라고 말한다. 두 번째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빈 잔 두 개가 생겼고 다른 직원이 그것들을 가져가며 '비가 내리는데 원한다면 안쪽에 자리를 만들어 드릴게요.'라고 한다. '저는 사실 비 맞는 걸 개의치 않아요. 실은 더 좋아요. 그리고 해가 반짝 나는 걸 볼 수 있잖아요.'라고 했다. 그녀는 '저도 비 맞는 거 좋아해요!'라고 말하며 떠났다.



해선 안 되는 규칙의 더미 속에서 살고 있는 와중에 듣는 그들의 '나도 그렇다.'는 말은 위안이 된다. 설령 그녀가 얼음 씹는 걸 좋아하지 않더라고, 비 맞는 걸 좋아하지 않더라도 가벼운 공감의 말은 우리가 잠시 통했다는 기쁨을 준다. 별것도 아닌 말에 '찌찌뽕'이란 말이 튀어나오고 '찌찌뽕'이라는 말 마저 동시에 해버렸을 때 동질감 같은 찰나의 기쁨은 곱절이 된다.



반대로, 내가 어떤 안 좋은 일을 겪었고 그것을 공유하게 되었을 때 상대가 '나도 그렇다.'라고 한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영어에서 '천둥을 훔쳤다'라는 말이 있는데 예를 들자면 내가 청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친구들 앞에서 하는 도중에 늦게 온 친구가 갑자기 '나 임신했어!'라고 말하는 경우이다.



참, 생각해 보면 커피 자체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러 오고 가는 그 길에서 마신 공기가, 바람이, 약간의 움직임이 나를 좋은 에너지로 채워 주었기 때문에 머리가 개운해진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한다는 것에 관해 생각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