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대하여 4>

박관영 예술론.

by 박관영

읽고 적은 지 어느덧 1년 2개월. 딱 이 세월만 흐르면 전역이다. 만약 시간을 돈으로 주고 살 수 있다면 당장 결제하려 한다. 대신 그동안에 적었던 내 글이 없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피차 결국은 바꾸진 않을 것 같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잘 알 것 같아서 아무래도 좋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조금 수월해진, 조금 더 확신을 가진 오늘의 나는 계속해서 읽고 써 내려가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내 안의 무언가가 뒤집고 엎드리고 기었다가 걸음마 때려고 일어서려 느껴지는 것이, 점점 더 글에 대해서 수월해지고 편안해지는 중이라고, 성장해나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쯤 돼서 글에 대한 나의 고찰을 해보며 생각을 점검하고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박관영 예술론


난 예술이 영생하는 포유류라고 생각한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감히 세상을 향해 설파해보고자 한다.


먼저 인간은 불현듯 피어오르는 영감에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영감을 표현해내기 위해 구상하는 레시피를 실현하기 앞서 전산에서 최초 작업을 진행하여 <데이터>로서 <잉태>하고, 인화와 출판, Lp 리코딩, 요리, 그리고 테이핑 작업을 거치며 <출산>하여 영상과 음악, 음식, 사진과 책들이 세상에 실존하게 된다. 전시와 선물, 그 창작물들을 즐기는 시간, 그렇게 영감이 퍼지며 파생되고 탄생되는 다른 작품들과 셰프들과 아티스트들 <생식>, 그렇게 예술은 빛을 머금고 세상 속에서 <자라난다>. 오늘날 예술이 창작되는 일련의 과정을 포유류가 생식하는 과정에 빗대어 설명했다. 실은 이것이 고전 예술의 창작 과정에 비교하면 역순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저번 ‘예술에 대하여’ 편에서 다뤘듯이 결국 전산상에 남은 글들과 작품들은 분명 ‘데이터’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 이 글들도 전체 스크롤하고 뒤로 가기 한번 누르면 가루 하나도 안 남기고 없어지게 된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과거 퇴고하는 과정에서 이 실수로 인해 몇 편의 글들을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워져 버렸다. 그리곤 몇 날 며칠을 자학과 자괴감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난 그 사건으로 인해 난 예술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었는데, 난 이 글들을 형태를 갖춰서 세상에 남기고 싶은 생각이 확고해졌다는 결론이다. 그것이 현재 앞둔 목표 중 하나이다.



2. 거꾸로 돌아간다.


과거 예술가들은 스마트 세대의 기기가 상용화되기 전에 작품을 창작했다. 그들에겐 전산에 <잉태>된 데이터 형태의 예술은 없었다. 그들은 먼저 세상에 남기고 데이터로서의 <잉태>가 아닌 세상에 ‘전시’하여 <자라나게> 했다. 하지만 점점 스마트 기기의 성능과 애플리케이션이 발달됨에 따라 용이하게 작업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최초의 창작 과정을 ‘데이터’에 먼저 입력 <잉태>하게 되었다.

난 데이터와 인터넷을 담은 스마트 기기와 형태를 갖추고 태어난 작품과는 완전하 상극이라고 역설하고자 한다. 결국 전자기기 자체로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작가의 얼과 혼을 온전히 담아낸, 온전히 작품으로서 거듭날 수 있는 물체가 될 수 없다. 화면 속에 담겨있는 작품, 재생되는 영상, 스피커로 들리는 소리로 감동과 전율을 느낄 수 있으나 창작품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고유의 연륜을 느낄 수 없었다.

즉, 기기는 작품을 상징하는 물체, 예술을 품을 수 있는 모체가 될 수 없다. Lp 레코드판과 캔버스를 보면 음악과 그림이 담겨있는 그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스마트 기기는 예술을 상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의 창작 과정을 역순으로 거치는 오늘날, 마찬가지로 물건을 잃어버리듯이 전산에서도 작품을 잃어버릴 수 있다. 게시글의 권한을 가진 인원이나 저작권을 소유한 인원이 그것을 삭제시켜버리거나, 혹은 위 해당사항이 본인이거나, 피치 못할 무수한 상황으로 인해 ‘데이터’에 불과한 그것들을 삭제하게 된다면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예술에선 이보다 큰 상실이 없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창작되지 못한 무수한 생각들처럼, 데이터로 <잉태> 되었으나 세상을 등져버린 산물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3. 결론: 창작하고 세상에 당신을 남겨라.


나의 결론을 설파하고자 하면 [예술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우리의 내면이 보고 듣고 느끼는 영감과 감정과 생각들을 형상화시켜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무한대로 느끼는 우리는 영감에 형태를 입히기 위해선 작업이라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치게 된다. 우리가 생각을 무한대로 할 수 있듯이 예술의 가치 역시 무한대이기 때문에 금전적인 값을 도출하기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들의 가치는 세월로서 정해지고 세월에 무르익어가고 성장하는 것이다.

또한 예술의 시작점은 영혼이라는 것이다. 작업과 같은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은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절대 충동적이지 않은 생리현상과 같이 지극히 당연한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이 예술가들만이 특정 짓는 것이 아닌 인간이 살아오는 동안 해왔던, 지금도 계속 역사를 써내려 가는 위대한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만류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세상이 예술이라는 단어 말고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예술은 필연적으로 작가(영감의 주인)의 손끝에서 태어나야 한다. 영감을 나누는 행위는 영혼의 일부분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것들은 그릇을 갖추고 옷을 입고 나와 우리와 세상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태어나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예술은 세상 속에서 생식하며 다른 작품들과 장르를 파생시키고 아티스트들을 만들어낸다. 창작은 예술에 있어서 이치이자 섭리이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가 감히 세상에 내던지고 싶은 메시지이자 일종의 시위다.


4. 내 글에 대한 깨달음과 방향성


오늘날 반복 숙달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양한 방법으로 글에게 감히 도전하고 있다. ‘말하듯이 적어라’의 명제를 수용하며 적다 보니 무언가 벽에 자꾸 부딪히는, 온당치 않은 느낌을 받았었다. 마치 문법에 있어서 ‘관영아’가 될 순 있지만 ‘관영야’가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직접 타인에게 부탁해서 실험에 옮겼던 일이 있다. 수정 단계를 거치지 않은 문장을 입으로 풀어 말하면 상대방에게 느낌을 전달할 수 있었지만, 눈으로 읽기 시작하면 글의 구성상 가장 엉뚱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진짜 ‘말하듯이’ 적었고 그걸 진짜로 했던 전 그야말로 ‘순수한 바보’처럼 행동으로 옮겼다. 글은 항상 ‘퇴고’라는 필수 불가결한 행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을, 소리와 공기로 이루어진 말의 세상과 물체의 끝과 표면이 맞닿으며 새겨지는 글의 세상은 엄연히 다른 차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5. 철학


글에서 밝힌 가치관과 철학은 전부 저의 사색에서 도출된 결과이다. 내가 왜곡시키고 과장하고 모방하고 훔치는 삶을 살아왔다면 이 자리, 내 변두리의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훔치기보다는 필사를, 모방보다 각색을, 집중보다 몰입을, 맹신보다 참고를,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 그렇게 전반적인 삶에 <퇴고>를 진행하며 나의 색깔을 보존하고 깊게 물들이려 노력한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에게 필사를 가르쳐준 친구가 “글을 읽어보니 누가 봐도 제가 적은 것 같다.”라고 말했었다. 그때 당시에는 글이 투박하고 딱딱한 못생긴 바위 같았다. 하지만 뒤이어 건넨 친구의 한마디가 여전히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남아있다. “그만큼 너의 색깔이 많이 묻어나 있다. 조금 더 보기 좋게 다듬으면 이쁜 글이 될 거다.”

글을 적으며 처음으로 얻은 최고의 격려이자 조언이었다. 그 친구의 고마운 조언 덕분에 글에서 나의 영혼과 색깔을 그대로 담는 글을 적기로 다짐했다. <글이 위대하다거나 대단하진 않더라도 꼭 나의 영혼과 색깔을 담겠다. 화려함과 기교함을 없애고 온전한 나의 얼과 풍이 확실하게 담긴 글을 적겠다. 그것이 나의 화려함이자 기교가 될 것이다.>라는 지조를 가지게 되었다. 항상 그 친구에게 감사하며 적고 있는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다.


난 앞으로도 ‘예술하는 척’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김수영 시인의 말씀처럼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지 아니하고 ‘심장’으로 하지 아니하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며 글을 완성시켜 나갈 것이다.

내 품 안에 거둬져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고 아름답게 밝혀 가려한다. 그 창작물 또한 독립출판과 같이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바보 같고 미련하게 보일 순 있겠지만,


아무래도 난 행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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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예술이나 책과 글에 대한 철학을 가끔 남기려 한다. 사색과 고찰 통하여 다듬고 깊어지는 철학의 성장 과정을 남기며, 훗날 마주할 대의와 시련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큰 열쇠가 될 것이라 믿는다.

또한 나의 <예술에 대하여>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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