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성찰: 어서 나를 찾아 만나러 간다.
로빈슨 크루소의 모습은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도 역시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과연 인간은 자신을 빗대어 본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지만,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처럼 인간의 숲을 정처 없이 헤매며 사색하는 모습과 음악과 함께 거리를 거닐며 수많은 인파 속에서 사색하는 나의 모습은 과연 그와 다름없는가.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 표류되어 혼잣말로서 인형과 대화하는 모습이 과연 방 안에서 혼잣말을 읊조리며 자신과 대화를 글로 이어 남기는 나의 모습이 과연 그와 다름없는가.
인간의 숲이 껴져 있는 세상이라는 섬에 표류한 나는, 과연 어디로, 무엇을 향해 모험을 떠나고 있는가. 이 모험의 끝은 어떨 것인가.
사명 깊은 이들조차 망설이게 하고 긴장하게 만들고 한 치 앞을 모르는 이 길 위에 내가 서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난 직감한다.
걷다 보면 뛰고 있을 거고
뛰다 보면 뛰어내리고 뛰어오르고 있을 나라는 건 분명한 것임을.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이 길 위에서 만날 것들에게 설레고 있다.
염려스러웠던 마음에 시작한 걱정은
그저 실없는 생각에 불과했다.
난 이미 출발한 뒤였으니까.
No.65 빈이에게.
사진은 뒤꿈치가 썩어 걷지 못했던 나를 밀어준 곳에서 찍었다.
울부짖으며 걸었던 날로부터 2년이 지난겨울 어느 날, 이젠 필드에서 생활하며 낙하산과 함께 혼자 오게 된 그곳, 백마산 정상에 올라와 야경을 보고 있다. 지독하게 추웠던 광주의 겨울을 함께 울고 웃고 싸우며 보냈던 너와 함께 이 야경을 봤어야 했는데 참 아쉽다.
네가 다쳤을 때 난 왜 밀어줄 기회조차 없었나.라고 자책하며 야경을 바라본다. 처음엔 달달했던 초콜릿이 카카오를 씹은 것처럼 씁쓸함이 퍼지네.
하지만 이곳에서 너와 평생 함께할 예술의 꽃이 만개했던 게 생각난다. 난 그 꽃을 꺾어 우리 곁에 함께 살아가는 음악, 꽃, 커피, 그림, 글,
다섯 송이의 꽃잎들을 하나씩 하나씩 때어내고 너에게 전화를 걸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우리의 역사적인 통화도 실은 2년이 지났다.
4년이 지옥 같았지만 찰나 같네.
우리가 고대하던 낭만을 펼칠 날들이 아득히 머나먼 이야기 같았는데 이제 열두 개월밖에 안 남았다.
옆에 없지만 곁에 있는 빈아.
옆보다 곁이 가까우니 없어도 옆에 붙어있는 것 같구나.
널 백마산에서 못 밀어줬어도 사상의 오르막 길에서 사력을 다해 밀어줄게.
65만큼 애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