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찾기 위한 여정
결혼식 사진을 아버지와 함께 보는 중에 “큰 아들도 찾았다!”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난 어리둥절하며 고사리 손으로 사진을 이리저리 내 짚으며 손톱 걸음을 걸었고, 이내 손끝은 뒤통수에 갖다 대고 긁적였다. 아버지는 사진 속 어머니 손에 들려있는 부케를 가리키시며 “이 꽃 뒤에 너 숨은 하객이 너다.”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이가 축복하는 자리에서 큰 아들인 내가 뱃속에서 함께하고 있었음을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말씀을 참 아름답게 하셨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감성을 지닌 어른이 세상에 얼마 안 계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분이 우리 아버지라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서 참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내 어릴 적 따뜻하고 소중한 기억이다. 아버지가 함께하셨기에 더욱이.
어느새 소년으로 자라나고 성인이 되기까지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거짓말을 하고 남을 불신하고 미워하고 죄를 짓기 시작하며 순수함을 잃어버렸다. 향기와 색을 모두 쏟아낸 시들어버린 꽃처럼 내 영혼은 죄의 기운에 찌들어 생기를 잃어버렸다. 결혼식 사진 속 어머니의 손에 들린 부케도 분명 시들었을 것이다. 난 흑백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괴로웠던 나머지 아버지께서 과거 색을 잃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군사정권 시절에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부당과 비리에 맞서 싸웠던 레지스탕스였다. 어릴 적 운동과 공부를 잘하셨던 아버지는 장남으로서 나라와 가족을 지키는 장군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입대하였다. 임관까지의 여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순수이 ‘최선’이라는 소신을 지키며 노력을 하셨던 아버지는 지저분한 벽에 가로막혀 그릇에 걸맞은 대가를 받지 못했다. 곧게 뻗은 길은 막다른 길이 되어버렸고 지저분한 벽의 표면은 곧 아버지의 엉덩이 비롯한 신체 곳곳의 피부색이 되었다. 푸른 잎이 무성한 청춘으로부터 시작된 흑백의 기운은, 연륜으로 아름답게 익어갈 중년의 아버지를 잠식시켰다. 편찮으신 와중에도 통증을 애써 무시해가며 정신력으로 극복해오셨던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짐을 덜어 주기 싫으셨던 것일까, 혼자 짊어진 마음의 병들이 번지 고야 말았다. 그렇지만 영혼은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것일까, 대수술을 마치고 나오셔 선 독한 마취 기운에도 어머니부터 찾으셨던 아버지의 정신은 무슨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 누구의 그릇을 빌려서도 난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지금 내면에서 도저히 어린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아니면 숨어있는 것인가, 결혼식 사진을 볼 때처럼 도저히 손톱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난 아직도 계속 죄를 짓고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으며 내가 찾는 그 아이는 점점 더 깊은 내면의 골짜기로 숨어 들어가고 있었다. 어서 사랑과 순수함을 지닌 과거의 ‘나’와 손잡고 탑을 부숴야 한다.
난 지금 순수함을 되찾는 여정을 하고 있다. 아들과 함께 앨범을 보며 순수함에서 우러나오는 감성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가 느끼셨던 감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순수함을 갈구하는 나의 나침반을 들었고 잃어버린 색을 되찾기 위해 침이 가리키는 곳으로 모험을 떠났다. 요단강을 횡단하는 배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하고 기억을 많이 잃었다. 무언가의 상실에 쉬이 안타까워했고 쉬이 분노하였으며 그리 망가졌다. 나락의 절벽, 그 턱에서 간신히 연명했던 2020년이었다.
주홍빛 노을로 물든 하늘에서 낙하산을 펼치고 경자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갈대밭에서 일어나니 어둠이 찾아왔고 일출이 올 때까지 골짜기를 걸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은 곧 나였다. 아니, 눈앞에 보이는 색이 검정뿐이었던 나는 간신히 보이는 선과 테두리를 더듬으며 유색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복귀 행군을 하였다. 어느새 세상에 태어나 눈뜨고 살아간 ‘나는 왜, 무엇에,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에 대하여 수없이 질문을 던지며 걸었다. 이윽고, 난 그 짧은 생에서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겨진 찰나의 기억을 찾기 시작했다. 기억의 서랍을 정리 정돈하고 색이 바래져 희미해진 것들, 완전히 소멸된 것들, 언제까지나 선명하게 남은 것들을 둘러보았다.
난 색감이 아름답게 이루어진 것을 좋아했다. 색으로 이루어진 것들을 통해 이루어 표현하지 못할 감정들과 마음속 영혼까지 파고드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심오한 감정, 슬픔에 침잠하는 느낌, 위로받기도 하였으며 편안하였다. 두 다리 뻗고 누워서 얻는 휴식과는 달리 정신의 안정을 취하는 진정한 회복을 갈구했다. 정처 없이 배회하는 느낌이더라도 전시회만큼은 아무래도 좋았다. 전문적인 식견이나 그에 걸맞은 안목이 갖춰지지 않아도 작품으로부터 느끼는 나의 고유의 육감에 집중했다. 그렇게 보고 느꼈고 생각하며 깨달아왔다. 전시회나 작품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삶에서 세상에 이루어진 모든 것들을 대하는 나의 습관이자 자세였고, 나라는 사람이 사실 그런 ‘인간’이었다.
학창 시절,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다육이를 키우기 시작하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란다에 꽃들로 전부 채워졌다. 여름엔 창문에 대를 놓아 덩굴이 자라났고 그늘은 꽃과 덩굴 잎의 모양으로 거실을 뒤덮었으며 집 안은 초록빛으로 물들어졌다. 공기가 탁하고 무거워질 때쯤 환기를 시키면 꽃내음이 온 집안을 감쌌다. 학창 시절 내내 함께했던 꽃들이 생각나 새벽시장을 찾아 꽃을 구매하고 키우면서 줄기를 잘라 물 올림 하고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보람찬 마음을 느꼈다. 또한 ‘꽃말’이라는 것이 꽃들이 지닌 생명력으로부터 발산하는 영향을 정의 내린 이쁜 낱말들과 단어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러한 이유로부터 주변 지인분들께 삼행시를 지어 선물하게 되었다. 본래 태어나고 순우리말이나 한자의 뜻대로 살아가라는 의미의 토대로 이름이 지어지게 되는데, 선물하고자 하는 분들의 성향, 꿈, 가치관과 철학을 비롯한 전체적인 모습을 그대로 담아 이름의 새로운 뜻을 담아 이쁘게 지어서 선물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기억의 길을 거닐다 보니 마음속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자리 잡은 장면들이 있었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들을 지나 소중한 사람들의 모습들, 그들과 함께한 시간, 운동, 세상의 무대에 섰을 때, 등등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나의 기억들은 감정들과 향기 또한 지니고 있었다. 실로 되뇔수록 아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했던 것들도 바래지기 마련이었다. 해가 거듭할수록 머릿속의 장면들은 희미해지고, 흐트러졌으며 왜곡되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앞으로의 나날들을 살아가며 선명히 남을 기억들을 위해 카메라로써 예비하기로 결심했다. 기억을 형상화하고 그것을 고이 간직할 수단을 찾았다. 그렇게 난 지금도 사람들과의 소중한 순간들을 찍어서 선물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나 찰나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어느 날은 휴대폰 초기화로 인해 사진들이 모조리 날아가 버린 적이 있었다. 영영 볼 수 없는 사진들은 기억 속 한편에 저장되어 버렸고 이로써 난 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으며, 큰 생각을 얻었다. ‘사진’이라는 것은 전산이라는 세상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필히, 무조건 적으로 세상에 나와야 한다고, 그것이 ‘이치’라고 생각한다. 전산에서 머무르는 사진은 ‘사진’이라고 볼 수 없는 ‘데이터’에 불과하다. ‘데이터’라는 형태로 잉태되어 인화라는 출산을 거쳐 형태를 갖춘 종이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위에 적었듯이 실수를 통해 사진을 잃어버리더라도 서랍 한편이든 구석진 바닥이든 어디에서든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며 훗날 세상에 다시 발견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들은 ‘데이터’와는 차원이 다르게 뜻깊을 것이다. 그렇게 난 폴라로이드를 구매했고 내 동료, 내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꽃과 사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커피와 차를 마시며 향에 취해 무르익어가는 즐거움, 함께 생각을 다듬는 가치 있는 시간, 그러한 시간들을 기록하고 이쁘고 담백하게 문장을 나열하며 글이 탄생하는 기쁨. 그러한 모든 것들로 인해서 흑백인간이었던 내가 점점 색을 되찾아가고 있다. 그렇게 배우며 깨달음을 하나둘씩 얻고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대들의 이름을 하나둘씩 낱말들과 문장들 속에 이쁘게 나열하며 사진과 글들은 탄생하고 있다. 난 지금 사진과 글에 아버지를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께.
끝으로, 누군가 ‘진정히 사랑하고 노력하였느냐’라고 질문받는다면, 찰나의 고민도 없이 떠오르는 아버지 생각에 침묵과 함께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습니다.
멀리 서든 가까이에서든 큰 선물을 주시고 내면도 성숙하게 자리 잡도록 키워주신 아버지. 초등학생 시절 집안의 가문을 적어오는 학교 숙제를 했을 때, 그때 말씀하셨던 ‘백 명의 스승보다 한 명의 아버지가 낫다’ 문장은 아직도 가슴 깊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러한 어른이 되기 위하여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이 되기로 꿈을 품었습니다.
-19:34 210718
말이 서툴고 글 쓰는 게 편한 큰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