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낯부끄러워 붙은 입술을 쉽게 때지 못하는, 본성이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역시 글이 최고인 것 같다. 코찔찔이 철부지 시절 밸튀하는 느낌이라고 할까나, 마음에 담아둔 진심 어린 언어들을 활자로 담아 건넬 때의 느낌은 쫄리기도 하다만 설레어서 퍽 좋다. 더불어 뚫린 입에 조리있게 말하지 못하는 언변을 메꾸기에 제격이다. 군생활 중, 작가로 합격도 했겠다, 이젠 ‘답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크다. 나태함을 이겨내지 못했던 그동안의 일들을 이제 규칙적으로 해보려 한다. 2년 가까이 대외적인 활동에 공백기를 가졌는데, 전역을 계기로 몰아서 근황들을 전하였다. 이제 전할 것들은 거의 전하였으니, 다시 내가 가야할 길에 올라서서 부단히 걸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모든 sns활동은 이제 활자들로 전하며, 일상은 아주 가끔씩 올리고 피드와 하이라이트들을 한 편의 이야기와 책으로 단편화 시킬 계획이다. 과거에 무언가에 몰입되어 살아갔던 삶이 내심 그립기도 하였고 지금 나에게 들이닥친 거대한 공허함을 외면해보려는 발악이기도 하겠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했던 터라, 생각의 추를 긍정적으로 기울이기를 애쓰며 굳건한 사명이 나를 지배하여 앞으로의 나날들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심란한 현시점, 쉴 거면 확실히 쉬고, 말고 움직일 거면 확실히 움직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마음 속 응어리로 조용히 품고 있는 약간의 불편한 마음의 원인을 찾아 없애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내가 갈망하는 그 곳이 어디인지, 나라는 인간이 진정으로 존엄하며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정말 궁금했다.
1. 걸어온 길만 하여도 족히 삼천리는 되었다. 새로이 거듭난 이후로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이 시점, 1600일이 넘는 복무 기간이 손쌀같이 지나갔고, 청춘을 다 바쳐 생활한 이곳을 나가는 참이다. 아니 사라졌다고 하는 표현이 문맥상 옳은 표현이기도 하겠다. 수많은 얼굴들이 가까이서 스쳐 지나갔고, 오랜 세월 동안 붙어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일생의 5년이라는 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한 없는 아쉬움 밖에 남지 않는다. 평생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민 없이 내 손으로 기회를 발로 차고 나가게 되었다. 여타 공무원보다 누릴 수 있는 메리트가 다소 많은 직업 군인이라는 직종을 포기하고 가족과 주변 친지 분들에게 적잖은 질타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내 이름을 대체하기도 하고, 이름의 수식어가 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지닌 나의 부대. 그 부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과 각오는 현재 온 데 간데도 없고, 뜨거운 자부심 또한 차갑게 식어버렸다. 부대 이름에 대한 미운 정으로도 묵묵히 살아가고, 꾸준한 자기 개발과 새로운 목표 새우거나, 가정을 꾸려서 자식들과 행복한 생활을 하는 선배들을 보면 내심 마음속으로 경외감이 생기곤 한다.
그런 즉 나에게는, 군대에서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선후배 동기들과 따뜻한 밥과 반주로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내고자 만든 자리에서 오고 가는 담화들, 그것들로 애써 자기 위로를 해보았건만 바뀌지 않는 현실과 앞으로의 일과들은 나에게 아득하기만 했다.
시간이 존재한 이상, 하루가 흘러갈 수록 짬이차고 계급이 오르는 군대라는 세상을 벗어나, 이제 하루가 똑같이 흘러가도, 찰나에 밑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사회라는 세상으로 발을 딛었다. 또 다시 막내 생활 시작이다. 막내를 오래했던 탓에 청소, 분리 수거는 적응하는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경력으로 내밀기에 ‘특전사 중사 전역’ 덧붙이고 ‘보디빌딩 전국대회 다수 입상’ 딱 이정도가 나를 증명하는 견적이자 자력이다. 내밀 명함이 없어서 못 내미는 나의 처우가 사실 “적응이 되지 않는다.” 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은 문맥이겠다. 5년에 가까운 시간을 사회보다 간단명료하고 폐쇄적인 세상에서 보내고 나니, 뵈는 것이 없어진 걸까. 내가 나 스스로 “좆됐다.” 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나의 내면의 세상은 꽃밭에 따뜻한 볕이 들었고, 그 한 가운데에 다리를 꼬고 누워서 팔배게를 하고 있다. 선선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누워서 꽃향기를 맡으며 “좆된건가..” 하고 읊조리도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피곤하게 만드는 생각을 모면하고 낮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동안 행복했던 기억이 컸던 나머지 주변인들이 익히 말하는 ‘군대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 편이다. 그런 악몽 환영이다. 우리 같이 출근했다가 운동하고 퇴근해서 밥 먹게, 그렇게 헤어지고 다음을 기약하며 난 고향에서 아침을 맞이하면 된다. 뒤도 안돌아보고 떠난다고 수 천 번을 다짐했건만,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때지 못했고, 다시는 부대 방향으로 오줌도 싸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아직 생각이 많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생의 계획을 단 하나도 세우지 않았다. 나불대고 다녔던 그동안의 계획들은 전부 백지화시켜 버렸다.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라는 격언은 어느 정도 동의하나, 여태까지 무계획적으로 살아가며 무의미한 나날들을 살아온 사람들에겐 아주 사탕발린 소리이기도 하겠다만 참된 의미를 소망하며 도전하는 정신으로 부딪히는 이들에게는 득이 될 수도 있다고 감히 확신한다. 부디 내가 후자가 되길 소망한다.
그 간의 시간동안 아주 값진 경험을 하고 추억들과 인연을 만들고 나가지만 더불어 사상의 성장이 이루어졌다. 그에 따른 성장 덕에 삶의 이유에 대한 답 또한 찾았고, 앞으로의 계획 역시도 전부 갈아엎을만했다. 주변 동료들이 앞으로의 계획이나 뭐 해 먹고살 것인지에 대한 답은 “여행을 가겠다.” 내지는 ”착하게 살 것.“이라고 대답하는 정도였다. 나의 현주소에서 제 입으로 무엇을 감히 내세울정도의 떳떳한 삶을 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송구스러울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불평불만만을 널어놓으며 대우받기를 원했고, 어느 하나 잘난 것이 없었던 이 죄질이를 거둬주신 동료들의 사랑은, 한낱 죄인인 나의 그릇에 차고 넘치는 과분한 것이다. 하루가 흘러갈수록 내가 머무를 울타리는 이별을 재촉하고, 석별의 정을 세례 받는 내가 여러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것은, 부대 이름을 팔아 밥 벌어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동료들에게 값없이 거저 받은 사랑을 드넓은 광야에서 만날 나그네들에게 베풀며 살아가는 것. 그렇게 묵묵히 선하게 살아가면서 내 뒤에 평생을 따를 청춘의 수식어가 빛나게 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사명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로써 대충 여행을 함께 할 군장을 다 싸맸다.
2. 여행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심사숙고하게 되는 시점이다. 솔직히 말하면 “자랑거리”가 될 만한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난 여행을 이렇게 기술하고 싶다.
‘ 여행은 교통수단을 통해서 외국으로 건너가든 국내를 건너가든,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궁극적으로 많은 문화들을 경험함으로써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인간에게 진취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걸음.’에 더불어
‘여행은 언제 어디서든 지금 당장 가능한 것.’이라고 기술하고 싶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빗대어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터널 비전]과도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나의 일가견이다.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 외 내면으로 바라보는 시각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에, 자기 자신을 자기 손으로 한평생 동안 가둬놓은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바로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간 글을 적은 시점으로부터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정말이지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그들의 세상에 유유히 유영하는 기분은 말로써 형용할 수 없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로부터 난 지금까지 1000편이 넘는 글귀들을 써내려 갔고 3일에 하루 꼴로2000장이 넘는 종이들을 미친듯이 넘겨댔다. 시력이 급저하 되었고 열 보 앞에 사람들, 간판도 흐려 퍼졌을지라도 단 하나도 후회되지 않는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다.
고로 내가 계획한 여행은, 내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통신 수단을 셧다운 시키고 골방에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떠나는 여행길을 소망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직감은 무시할 수 없기에, 발 닿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듯이, 난 일단 골방에 처박히고 싶은 생각 밖에 없다. 선과 악의 축에서 무의식 중에 머무르는 악까지도 모두 말끔하게 씻는 것이 일단 첫 번째 목표다. 말을 하지 않는 것, 육두문자와 미움, 저주, 간음, 판단, 음행, 정욕, 물욕, 참소, 시기, 질투, 분쟁, sns, 유튜브, 폼플랫, 술, 담배, 카페인, 인스턴트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비로소 내가 고통없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곳이다. 위 같은 나의 여행에 쓸모도 없고 쓸데도 없고 무익한 짐들을 모두 내려놓고 출발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쯤되면 이렇게까지 너무 극단주의적이라고 대부분이 생각하며 염려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까지 큰 그림에 프롤로그에 불과하다. 방금 위에 기술했다시피 이제 괴나리봇짐을 쌌을 뿐,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다.
3. 여행에 대한 소망은 다름 아닌 골방에 틀어박히는 것이라고 기술했는데, 참으로 얼토당토 아니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나의 계획은 수 백 수 천만 원어치의 책을 전부 통독하고, 하루에 수 시간 동안 글을 쓰며 지내는 것이다. 그간의 시간들 동안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삶의 루틴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이제 진짜 내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내가 스스로 조성하여서, 내가 만든 공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책 읽기와 글쓰기 외에는 다른 것은 절대 할 수 없는, 아니 불가능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종착지를 향하여 부단한 발걸음을 옮기며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종국의 마침표를 향해 사력을 다하여 걸어가는 것이 내가 우선적으로 향하고픈 첫 번째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후 비행기를 타든, 배를 타든 타국을 누비고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어가고 글을 써내려 갈 것이다.
“여기 하얀 세상이 있다. 그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는, 찾을 수도 없는 하얀 세상에서 길을 찾아보아라.” 한다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군가는 걸음을 몇 보 나아갈 것이고, 조심스레 팔을 뻗고 손가락의 감각을 곤두세운 채 무언가에 가닿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다 끝이 보이지 않으면 결국 달리기를 시작할 것이고, 다수는 끝내 미칠 것이다. 난 그 세상에서 길을 찾기보다 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백지에서 사람들이 좌에서 우로 걸어갈 수 있는 글과 이야기, 즉 길을 개척하는 척후자로서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다. 그 하얀 종이 속에 많은 이야기, 그림, 기억, 추억, 사람, 등등 세상의 존재할 수 있는 무수한 가치들을 언어로써 담아낼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가. 그 의미 있는 일들을 행함에 있어서 겸비해야 할 것들은 부담해야 할 짐 따위 같은 것들이 아니다. 아직까지 하얀 도화지에 불과한 국한된 나의 세상 속에서, 내가 내 스스로 가둬 놓은 울타리를 박차고 벗어나서 신도 신지 않은 채 발 닿는 대로 여행을 떠나는 여정은 바로 이런 것이다. 거짓과 사치 가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향하는 여행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책]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수 백 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들을 담은 수 백장의 종이들을 엮어 만든 [책]이라는 존재는 최초에 하 얀 백지로부터 시작해서 언제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르는 영감으로 쓰여, 끝내 저자의 모든 것을 담 아낸 그릇으로 역사한다. 그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 는 것은 저자와의 만남이자 대화이자, 그가 눈뜨고 살아온 세상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그래서 나는 언 제나 과감히 나를 버리고 떠난다. 그리고 난 한 발 짝도 물러서지 않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4-1. 때때로 사람은 의도치 않아도 결백히 내뱉은 말들과 약속들이 거짓말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사람은 거짓을 구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삶을 살면서 맹세했던 수많은 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킬 수 있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인간은 찰나의 나태함과 실수로 인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결과로 타인에게 실망을 사거나 모순과 위선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거짓의 결과물을 낳기도 한다. 나 또한 이러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였고, 배은망덕하고 경거망동하게 행동하기도 하였으며, 실망과 거짓을 사기도 했다.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을 의도적으로 구하기도 하였다. 그로 인해 사람을 잃기도 하였고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뢰를 잃기도 하였다. 그 끝은 자신의 파멸이었고 자기 자신마저 불신하고 버림받았으며, 끝없는 자책과 자기학대만이 존재했다.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들이다. 사람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실족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무소불위와 전지전능을 소망하며 살지만 실상은 아주 나약한 피조물이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을 전부 가지기 위하여 [돈]이란 존재에 목메어 갈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히 누구한테 한 소리하기로 마음먹은 것 마냥 글을 써 내려서 책으로 내기에는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혼자 이뤄냈다고 하기엔 주변 친지들로 부터 너무나도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갔다. 세상적으 로도 잘 먹고 잘 살아가게 해 주신 분들의 공을 나 혼자 가로챈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도움을 주 기 위해서 본인 일들을 마다하고 자기 일처럼 뛰어들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돈이든 시간이든 전혀 관여하 지 않고 보살펴 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피 땀 흘려 고생하고 내가 하는 말들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들 어주고 믿어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지금 글을 쓸 수 있는 오늘의 자리가 마련되었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을 기리고 그분들의 감사와 사랑을 깨닫는 데에 무한한 진통이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늦게 감사와 사랑을 깨달아서 한 없이 망극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가득 찼다.
난 글을 쓸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실되기를 간구하며 적었다. 자신과 자신이 아끼는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헌법과도 같은 기본 중의 기본을 우선적으로 지켜야만이 온 마음을 다해 힘껏 [사랑] 할 수 있다 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 2년 동안 적어 내려온 글들 중에서 길고 긴 문장들과 문단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양심에 찔리거나 부정한 글들을 가차 없이 삭제해 버렸다. 길든 짧든 글을 적어 내면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정성을 들여 할애했는 가는 나에겐 중요한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과정 또한 중요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글들에서 나 자신을 속여 거짓을 만들어 낸 활자들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가장 컸기 때문이고, 내뱉은 말은 곧 사라 지지만 활자로 남기게 되면 언어가 존재할 수 있는 형태가 영원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영원한 거짓말을 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 자신과 내가 아끼는 것들을 사랑의 우선순위로 세우지 않는 이유는, 곧 교만과 자만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둘째로 더 이상은 거짓을 구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일종의 구속과 속박이기도 하다. 나를 우선으로 세우지 않고, 낮아진 자세로 겸손과 겸비한 마음으로 살아 숨 쉬어야만이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굉장히 어려운, 끝내 완성하지 못할 숙제이다. 사랑의 대상이 어떠한 위치에 머물러 있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건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은 나로선 할 수가 없는, 오로지 아버지 밖에 하실 수 없는 일이기에, 난 그 어떠한 변명과 핑계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고개 숙여 부단히 애를 써야겠다고 매일을 새롭게 다짐한다.
4-2. 더불어 위 같은 이유에 때문에 나의 현주소에 대한 의심과 점검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끝끝내 놓지 못하는 습관과도 같은 것이다. 정보가 없어서 공부를 애를 써야 했던 옛 시대와는 달리 강물이 범람하듯 넘치는 현시대에서 정보와 역정보를 구분해야만 하는 수고가 동반하게 되었다. 정보가 범람하는 만큼 유식한 사람들도 바다의 모래알 같이 많아진 오늘날에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 근거와 논거들이 진리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늘이 아는 진리와 진실 앞에서 거짓과 역정보에 노출되기 가장 쉬운 시대에서 살고 있다. 자신의 사상과 견해와 철학 등등, 맹신해 왔던 모든 것들을 뒤로 제치고 편협과 국한된 자세에서 벗어나 자신의 현주소가 잘못된 것임을 가정하고 오직 "0"의 위치에서 토의하고 촌각을 다퉈보아야 한다는 것을 현시대에 정보를 접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또한 이 글을 쓸 때에도 그러한 마음 가짐으로 임하기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소망한다. 인간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룰 때 거울 보듯 자신의 삶에 빗대어 바라본다고 하였거늘, 그만큼 짙은 색안경이 없다고 생각한다. 부디 내가 글을 쓸 때 색안경을 쓰지 않고 온전히 누군가의 마음에 녹아들어 진실된 위로와 경청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앞으로 허락된 시간의 나날들을 보내면서 위와 같은 자세를 지켜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의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 분들에게도 위와 같은 자세로 읽어주기를 부탁한다.
영혼까지 갈아 넣는 마음으로 이 책의 메시지를 집필하는데 임하는 마음은 [전투력 측정] 할 때와 같이 투혼하는 정신과 같다. 책을 집필하는 이유는 글을 잘 쓰기 때문이 아닌, 필히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요, 둘째로 거짓 구렁텅이인 내 속마음에 서 진실된 마음들을 구하기 위함이요, 셋째로는 내 자신에게 한 치의 자비와 타협이 없는 엄격한 환경을 조성하고 젖 먹던 힘까지 사력을 다해 글을 쓰기 위함이다. [측정]이라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밝히는 것이라고 감히 정의한다. 고로 자신이 낼 수 있는 강도를 다해, 평소에 자신이 내지 못했던 힘까지 발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타인의 간섭과 방해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내 속사람과 독방에 갇혀서 타협과 부정과 나태함과 거짓된 마음으로부터 탈피하고, 진실과 진심을 간절히 소망하는 심령으로 거듭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수많은 눈물과 간절한 기도로 적어 내려가기를 원하고 지금도 그 마음은 영원할 것이다.
평가를 받을 때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깊고 아득한 절벽으로 몰아붙여야 만이 내 본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성장점이라는 것을 통렬히 통감한다. 그곳에서 발견한 내 속사람은 본성에 한없이 치우쳐 자기 생존에 급급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서있다. 그 사람만을 다시 못 박아 죽여야만이 새로이 거듭날 수 있다. 그런 나를 고발하는 마음으로, 영혼까지 발가벗는 마음으로, 찰나의 나태함에 적지 못하고 잃어버린 사무치게 그리운 나의 문장들과 단어들을 찾아서. 그리고 앞으로 만날 문장들과 이야기들을 향하여, 난 고백의 언어들을 계속 써내려 간다.
5. 개개인이 살아온 삶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사명]이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사명]이라는 단어 아래, 사람은 그 어떠한 고난과 역경, 삶의 악천후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제공받는다. [사명]이라는 것은 어쩌면 [일생일대의 자신의 임무]라는 뜻풀이를 넘어서 [죽을 사]와 [이름 명]자를 합친 [죽음의 이름]인것이 아닐까. 자신의 죽음의 이름을 찾아 헤매는 사람의 열망과 욕구는 [본능]이 아닐까. 그것을 찾아내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향해 쫓아가는 것은 인간의 곁에서 늘 존재하는 [죽음]이라는 [마무리]를 떳떳하게 매듭지을 수 있는 [사명]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사명]은 [원수를 향한 복수]이거나 [절대선]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끝이 없을 정도로 [사명]에 대한 정의가 수 없이 바뀌었다. 지금 이 순간은 나의 [사명]은 [완전체]이지만,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이 지나갔다. 굳게 선 반석처럼 나타났던 수많은 이유들이 도로 물거품이 되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나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사명]이라는 것은 만나는 것이었기에, 그 어떤 이유도 [완전체]앞에선 타당하지 않다. 난 그 길을 하얀 백지에서부터 검은 활자들을 적어 내려가면서 끝내 만나게 되었다.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의 글들에 거짓과 교만과 자만과 온갖 미사여구를 꾸며대며 그동안의 나날들을 지새웠던 죄인인 나를 변호하는 이야기나, 자랑하고픈 심보에 앞서 과장시킨 이야기는 없을 것이며, 여태까지 살아온 모든 삶을 청산하고 회개하고 회심하는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진실된 이야기들만 적어 내려갈 것이다. 이 책을 정의하자면 다소 많은 단어들이 집합하게 된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나의 책, 모두를 위해 전하는 편지이자, 서신이자, 서사이자, 간증이자, 수필이자, 수기이자, 일기이자, 에세이이자, 자서전이자, 회고록이자, 권면서이자, 유언장이자, 묵상이자, 교두보이자, 동아줄이자, 시편이자, 기도문이자, 나만의 {팡세}이자, 이 모든 장황한 이야기에서 단 한 가지만을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복음]이다.
비록 눈 뜨고 살아있어도 어둠 속에서 살아가며 자기가 어둠에 거하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 한 소경이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면서 떳떳한 것들에 대해 감히 고백하려고 갖은 애를 쓰려한다. 귀가 있어도 말 귀를 듣지 못한 농아가 미움을 샀던 그대들에게 용기 내서 화해의 편지를 쓰려한다. 태어나 장애 하나 없이 살아갔어도 처신과 구실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 불구이자 죄인인 내가 마지막으로 그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그러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나를 믿어 주셨으면 하는 것이 내 마지막 소망임을, 전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기 힘들겠지만 [사랑]에는 [진심]이었기에, 그 크신 [사랑]에 힘입어 걸음마를 떼고 달려온 간증을 한편으론 조심스럽게 전하고, 한편으론 낱낱이 부르짖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