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에 꽃망울이 돋자 벚꽃이 피어나고 하얀 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 아래에서 우리는 기쁜 함성과 함께 하늘을 향해 베레모를 벗어던지고 그토록 갈망하던 [특전사]라는 이름을 받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의 따뜻함은 우리들의 웃음꽃도 만개해 준 온도였다. 우리들의 이름을 대신하고 앞으로 불리울 이름인 [특전사]에 대한 [첫사랑]은 그로부터 시작되었었다. 각자의 사연 어린 배경을 품고 이곳으로 같이 걸어 들어왔고, 모두가 함께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날 그 시간부 같은 이름으로 태어나게 되었고, 함께 하늘을 뛰어내리고, 달리고, 뛰어오를 다사다난하면서도 파란만장한 추억을 함께 써 내려갈 수 있음에 너무나도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4년 전의 봄이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은 4년 후 그 모두와 헤어지고 혼자가 된 시점이다. 너무나도 눈에 선연한 엊그제 같은 그날을 기리며 편지를 적고 있는 중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어찌 둘 바를 모른 채 침대 위에 누워있다. 입대 한 후로 특수부대원이라는 꿈을 실현시키고 실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2023년이라는 어색한 숫자가 벌써 지금 이 순간이 되어 실재하였고 4년 반이라는 시간이 아득하다고 실감하자마자 전역을 하게 되었다.
1.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단어이자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감정인 [사랑]을 찾아 이 부대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원 동기는 바로 그것이었다. 남자로서 한 번은 센 곳을 가야겠거니, 빡센 훈련과 교육을 받기 위해서 가겠거니, 간지 나는 전투복을 입고 싶어서이니, 하는 것은 아주 부수적인 이유에 불과하고, 위 이유들이 모두 뒤 따라올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목표를 세운 것이 바로 [전우애]라고 익히 알려진 이 단어를 가지고 싶어서 지원을 하게 되었었다. 부수적인 이유들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버리면 내가 갈망하는 마음이 금방이라도 식어버릴 것만 같아, 그 모든 것들을 통용하는 가장 큰 이유를 품어야만 내가 특전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측불허의 인원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해도 불투명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부대를 가기 싫었다. 젊은 날에 흰머리와 후천적 탈모만큼은 피하고 싶었다고 할까. 피땀을 흘리는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도 물을 나눠마시고 콩 한쪽을 열 두 등분을 나누어서라도 함께 먹을 사람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싶은, 그 기억을 영원히 가지고 싶어서 오게 되었다. 아무래도 그런 기억과 추억들이 내가 이 땅을 떠나고 눈을 감는 날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거짓말 보태는 것 하나 없이 아주 낭만만을 추구하며 들어왔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신분인 [군인]에 대한 각오를 하지 못했다. 반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수료를 하고 나서 난 얼마가지 못해 [첫사랑]을 아주 대차게 실패했다. 나라는 인간을 죽이고 [특전사]라는 [군인]으로 거듭났으면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만 한다. 윗사람들이 아무리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명령을 내려도 무조건 순종해야만 하는 것을, 나는 내가 나를 버려야 할 각오를 하지 못했으므로, 후회막심의 연속인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그것이 그 어떤 훈련보다 힘들었다. 차라리 주둔지를 벗어나 팀원들과 훈련을 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곳이 좋았다. 시팔조팔하면서 하는 맛이 씁쓸하기도 하다만, 쓴 맛을 할께보는 부대원들과 달달한 생수 한 모금 나눠 마실 수 있음에 아주 행복했다. 그러므로 잘하고 싶었다. 비록 주둔지에선 개처럼 굴러도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특전사라고 자랑스럽게 불러주는 친지분들 앞에서 떳떳하게 그 이름을 듣고 싶었다. 나를 특전사라고 부르지만 나만 불리우는 이름이 아니니까. 더더욱 박차를 가하고 싶었다. 그 감정은 나의 열정이 아니라 애증 하는 마음이 더 확실했다.
욕을 먹고 질타를 당하더라도 조금은 더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며, 더 참고 굴러보기로 마음에도 없는 ‘시팔조팔’을 읊조리며 결심했다. 아직 많이 좋아하니까.
2. 걷잡을 수 없는 것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자해하는 것과 같았다. 감정이 태도가 되어버리는 누군가의 행실은 첫 만남에서 약속했던 것들에 대한 위선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분노를 표출하는 당사자는 분노에 지배당해 자아성찰과 자각을 상실해 버렸다. 그 인내의 몫은 오로지 후배들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차분히 말을 건네고 대화를 시도하면 ‘개기는 것’이 되어버렸다. [인내]는 곧 [분노]가 되어버렸고 [표출되는 선배의 분노]는 곧 [표출되지 않는 후배의 분노]가 되어버렸다. 이 고통스러운 칼날을 배에 품은 채 살아가는 시간이 아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분노는 나가 내 자신을 향해 고스란히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누군가의 선배가 된 [내가] 왜 똑같은 행동을 했을까. 나만큼은 그런 선배가 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을 한 내가 왜 그랬을까. “
조금은 다르고 싶었던 마음에 사과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걷잡을 수 없다. 미움이라는 것이 싹이 트고 찰나에 우리를 지배한다. 그로써 인간은 사람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미움이 우리를 지배하여 총구를 내 동료에게 돌리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불치하문(不恥下問)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먼저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하며, 미움을 멀리 해야겠다는 마음의 동아줄을 한 시도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많이 좋아하니까.
3. 아직 이별하지 못했다.
정신 차려 보니 이별의 때가 도둑같이 이르렀다. 전역을 결심한 것도 여러 가지 이유가 부합되었지만, 막상 날이 코 앞까지 다가와도 실감하지 못한 채 이삿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너무 아무 이유 없이 미워했나..”라는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휘몰아치며 나를 상실의 늪으로 침잠시켰다. 동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것이 어색했다. 내가 지금 딛고 있는 이곳이 다시는 못 돌아올 곳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금 이 침대 위에서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한다. 옷걸이에 걸린 전역복과 전투복도 어색하다. 다시 들어가서 출근 준비하고 전투복을 입을 것만 같은, 아직은 긴 휴가를 나온 느낌이다. 그토록 보기 싫었던 전달사항들 또한 무언가 휩쓸어가 버린 것처럼 조용해졌고, 배너에 항상 뜨던 이름들이 나타나지 않으니 위화감이 들었다.
고향으로부터 300km가 떨어진 이천이 너무나도 가깝게 느껴진다. 항상 달리던 도로, 조금만 걸어가면 보이는 오천리, 20분만 나가면 보이는 시내가 옆 동네처럼 느껴진다. 동네만 나가도 머리 짧고 까무잡잡하고 다부진 사람들이 돌아다닐 것만 같다. 조금만 더 가면 내 방에 룸메하고 누워서 밤을 함께 맞이할 것만 같은데, 방문을 열면 풍겨오는 강남역에서 샀던 디퓨져 향기가 나를 반길 것만 같은데, 난 아직 헤어질 준비조차 하지 못한 채 얼떨결에 깨어보니 꿈만 같던 4년 반, 16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25살이 된 채로 고향에서 아침을 맞이하였다.
특전사뿐만 아니라 특전사로써 살아가면서 인연이 맺어졌던 서울 사람들 또한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지리산으로 내려와 버렸다. 4년 반 동안의 업보를 이렇게 돌려받았다. 속이 개운 시원하고 후련한 전역을 기대한 대가가 이렇게 되었다.
이별의 대상이 언제나 [타인]이었던 시간이 지나가고 [본인]인 차례가 다가왔다. 진심도 아니었던 이별에 대한 갈망들을 가벼운 낱말들과 함께 곁들여 내뱉었던 나는 참으로 배은망덕한 사람이다.
이별에 대한 [기쁨]따위를 소망하다니, 수박 겉핱기로 사탕발린 거짓말을 믿어댔다니, 정작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을 때 감당하지 못할 착잡함과 슬픔을 생각하지도 못한 채 기어이 자처하고야 말았다. 곁에서 함께 온도를 나누며 호흡하던 동료들과 웃고, 떠들고,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하며, 위로하고, 같은 곳을 향해 아득한 길을 행군했던, 거창하지 않아도 소소했던 것들이야말로, 산과 바다와 하늘에서 나누었던 추억들이야말로, 그것으로 청춘을 버텨냈던 것들을 나 스스로 배척해 내는 행위를 했던 것이, 그토록 원했고 사랑해 마지않았던 이름을 너무 미워하게 된 것이,
난 아주 많이 후회된다.
참으로 미안하여도 제일 송구스럽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영원히 짊어져야 할 짐을 짊어지고 행군해야 한다. 나라는 사람은 같은 수의를 입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그들과의 추억들을 짊어지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온 세상을 방랑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난 것 하나 없이 항상 부족했던 부대원에게 책망해 주시고 계도해주신 동료들의 과분한 사랑은 비좁고 협소한 나의 그릇에 차고 넘치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개 떠나는 사람 한 명을 보내기 싫어하는 동료들에 대한 서러움 또한 나의 그릇에 과분한 사랑이다. 차거나 뜨겁거나 둘 중 한 가지였어야 했는데, 미지근했던 나에겐, 아무래도 춥고 끔찍했던 것들보다 부대원들의 따뜻한 웃음과 목소리들이 더욱 비중이 컸다. 위병소를 들어갈 때에 설레던 첫사랑을 잃어버린 자의 최후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항상 후회만 하다 가는구나. 난 끝까지 후회할 것 같다. 대차게 실패한 군생활을 내 가슴 깊이 묻고 평생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정말 많이 좋아하니까.
4. 약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려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뤄낼 것처럼 각오에 서려있지만, 본인 입으로 내뱉은 약속과 맹세가 언제든지 거짓말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을 난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꼭 지키고 싶은 약속은 한낱 죄질이에 불과한 저를 아무 대가 없이 키워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사랑으로 베풀어주신 선후배 동기들에게 보답하는 것, 그들이 내게 값없이 베풀어준 것들을 누군가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는 것.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때 용서하는 것, 아무도 베풀지 않을 때 베푸는 것, 아무도 사랑을 주지 않을 때 사랑해 주는 것, 그렇게 묵묵히 살아가면서 [특전사]의 이름을 빛내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두 번째 [사명]이다.
지키지 못할 거창한 나의 약속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고백하지 못했던 나의 진심을, 환송식 때 말하지 못했던 나의 진심을, 이렇게 꾹꾹 눌러 활자로 남겨보았다.
군생활을 잘하였는가? 난 아무리 나 자신에 대해 고찰했을 때, 부족한 부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못해준 기억, 지키지 못한 약속들만 떠오르는 4년 반의 기억들만 가득 차있다. 누차 연락드리지 못한 선배들, 가기 전에 끼니 약속한 선후배분들의 얼굴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있다. 더욱이 원수 같은 세 글자가 내 마음을 후벼 판다. 누군가처럼 비방의 아우성을 내지르기엔 내 마음에 아로새겨진 그대들의 얼굴이 선연하게 남아, 난 그대들과 있었던 행복한 일들만 그려보려 한다. 그 모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난 지금 집필을 하고 있다. 누누이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을 드렸던 [작가]의 삶, 그대들이 없었으면 들고나가지도 못했을 [예술] 그 어떤 교육보다 값진 것을 특전사에서 들고나갔다.
괴나리봇짐에 기쁜 소식을 잔뜩 싣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나그네로서의 삶을 소망하며,
석 글자를 잊어버리는 그날이 오더라도 얼굴을 잊지 않으리니, 마주칠 훗날을 고대하며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피땀 흘리며 우리들의 빈자리를 메꾸며 고생하고 있는 선후배 동기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나 또한 나의 현주소에서 같이 걷고, 뛰고, 뛰어오르고, 뛰어내릴 것임을.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뵙겠습니다.
바로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