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평생 기억에 남을 선물

by 박관영

오래 지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읽고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중학교 이후 선수 생활에 이어 직업군인의 길로 들어서며 다시 책을 펼치기까지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다지 좋지 않은 이유로 먼저 쓰기 시작했다. 의학적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훈련 중 사고를 당한 시점으로부터 부대 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기억력이 쇠퇴되었음을 실감했다. 에어 팟을 통째로 잃어버리면 그나마 다행인데 부수적인 기기들이 하나씩 없어지니 부품들을 따로 주문하기 일쑤였다. 콩나물에 정확히 45만 원이 들었다. 미운 정 때문에 함부로 못 바꾸겠다.

이렇게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심해졌는데 경각심을 느끼고 메모장에 발버둥을 쳤다.


메모장을 연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연도별로 얻었던 깨달음이나 명언들 좋은 자리에서 얻었던 덕담들이 적혀 있었다. 기나긴 사색 끝에 도출한 결론들도 무수히 적혀 있었다. 보디빌딩을 할 때였고 내가 가진 근육만큼이나 서투르고 투박했으며 단단했다. 전혀 문학적이지 않았고 보면 헛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민망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느낀 간절함과 뜨거움이 그대로 묻어 나왔고 내 마음을 울렸다. 그때의 내가 남긴 흔적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야 할 길들을 위해,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어느 것에 쉽게 동요하지 않기 위해 등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존재했었다. 궁극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것에 진심이었다. 철학과 열정에 완전히 베여있었을 당시의 모습을 회고하며 그때의 나를 부러워했고 미안해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제2의 시작점으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없이 뼈다귀만 남아있었던 17살 소년은 지리산 자락 함양군에서 현재 이천에서 생활하고 있다. 세상에 제일 큰 무대로 올라가기도 했고 길을 걸어 나가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평생을 함께 할 벗들을 만났고 직접 찾아가기도 하였다. 그들과 함께 뜨겁게 울고 웃으며 지내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이 메모장에 전부 담겨 있었다. 지금도 세상 어디선가 어두운 곳에서 무언가를 절실히 갈구하고 염원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대한민국에 사연 없는 사람들이 없다고 하는 이 형국에서 감히 이야기를 꺼내놓기 낯부끄럽지만 나 또한 그랬고 절실함에 흘린 땀방울들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품에 있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고 싶다. 공백이라 하면 7년 그 세월 동안 머릿속에 있던 단어들과 문장들은 증발한 지 오래다. 영감의 땅에 가뭄이 찾아온 이 시점, 어릴 적 다녔던 이영숙 글쓰기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오늘날이다.


메모장에 있던 서툰 낱말들과 문장들을 조금 더 철학적으로 다듬기 시작했다. 단어와 문장의 순서를 바꾸기도 하였고 지우기도 하였다. 그나마 모양새가 보기 좋아지긴 했으나 더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펼쳤고 읽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고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펼쳐서 찾아 적었다. 그러다 작가의 필력에 반해 필사를 하기 시작했고 직접 찾아뵙기도 하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값진 선물들을 받은 21년이었다. 그것은 꼭 물질적이 아니었다.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로도 큰 선물이었음을, 명품은 숫자로 값어치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물건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번 연도는 간절히 필요하는 물건에 진심까지 담긴 명품을 받았다. 평생 잊지 못할 이 책들을 수없이 넘기며 정성스레 낡혀야겠다는 다짐이다.

죽은 이들은 그들을 위해 읽을 것이고 세상 어디선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언젠간 꼭 찾아뵙고 싶다.


세상에 책을 출간하시기까지 집필하신 작가님들과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언젠간 큰 보답을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그들을 위해 난 오늘도 읽고 쓰고 있다. 앞으로도 쭉 나의 원고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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