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bute to Charles Lee 1>

첫 만남: 긴 이야기의 시작

by 박관영

16년 10월 말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전국 생체를 우승하고 함양으로 복귀했다. 봄날을 맞이한 기분이 이런 것인가, 하루하루가 행복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유명한 누군가가 무대에서 항상 외치는 동기부여의 격언들이 내 인생에 적용되었음을 처음으로 실감하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더 크게 의의를 두었던 것은 생애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고 그 결과물을 세상의 무대에서 증명하여 부모님께 효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탄으로 얼룩진 몸뚱이로 트로피를 들고서 목욕탕 아저씨들께 자랑하려고 중앙 레스파로 찾아갔다.


그곳엔 순철이 형님도 계셨다.


순철이 형님을 처음 뵀을 땐 건달인 줄 알았다. 지금도 물론이고 굉장히 동안이다. 전형적인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시는 분이었다. 우락부락한 덩치에 정체 모를 문신과 큰 흉터가 있었고 귀가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그땐 만두귀의 의미를 몰랐었다. 비록 일개 목욕탕 헬스장 었지만 최강의 강도로 운동하셨고 살기를 내뿜으셨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나는 ‘강도’라는 단어의 정의를 형님 덕분에 실감할 수 있었고 깨달았다. 인구 3만 명 지리산 산골짜기 함양이라는 촌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이일 수밖에 없는 동네인데, 여태 볼 수 없었던 최강의 비주얼을 갖춘 인원이 처음으로 함양에 등장했다.


어느 날은 친구와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동생아, 요즘 아르바이트하면 시간당 얼마씩 주냐?”


“6000원 정도 됩니다 형님."


“그래? 그것 갖고 돈이 되나. 캄 형님이 시간당 2만 원 줄게 일하러 올래?”


그러한 인물이 말도 안 되는 시급을 보장해 준다고 하니 생명의 위협을 느껴,

“엄마한테 여쭤 보고 올게요 형님."이라고 당연하게 말씀드렸다. 그때 당시 고등학생 신분이었던 또래들은 무서운 형들이 일 시킨다고 하면 전단지 돌리거나 룸 청소 및 설거지하러 불려 다녔고 돈도 제대로 못 받고 담배 한 갑으로 일단락되는 게 다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엄마 찬스로 가뿐하게 회피한 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운동을 했었다.

그 뒤로도 매일 헬스장에서 형님을 뵙고 “동생아 보조 좀.”이라고 부탁하시면 기구를 냅다 던지며 하던 운동을 끊고 달려갔었다.


“보조 괜찮았습니까?”


"괘안타."


전국 생체를 우승하고 목욕탕에 찾아갔을 땐 따뜻한 미소로 환영해 주셨다. 형님께 처음 보던 모습이었다. 그 온기에 이끌려 형님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스승도 없이 시합 준비해서 상 타오고 고생했다 동생. 앞으로도 시합 계속 뛸 거가?”


“더 큰 무대로 정진하려 합니다"


“그럼 행님이랑 운동할래?”


“예 행님!"


엄마 찬스는 생각도 안 났다.

형님과 시합 준비하는 시간이 어쩌면 고등학생 때 불려 다니던 일보다 더 힘들고 고된 무서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형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 미소는 누구나 지을 수 없다는 걸 나 같은 새내기 입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끝없는 인내와 불굴의 의지, 강단, 불타는 열정과 정신력 그리고 한계를 이겨낸 자만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형님의 미소의 한편에선 아무나 경험할 수 없고 아무나 이겨낼 수 없는 시간들이 존재했었다. 그간의 세월이 고스란히 내 영혼에 스며들어왔다. 그 시간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들었던 생각은, 같은 인간이지만 같은 사람 같지 않아서 괴리감을 느꼈고, 동시에 경외감도 들었다. 형님이 머무르고 있는 자리는 아득히 먼 곳의 경지였다. 그곳에 자리 잡아 있는 그의 미소는 떳떳하고 당당했다.


그린베레를 쓰고 가슴 뜨겁게 청춘을 보냈던 시간들이 어떠한 고난이 찾아와도 이겨낼 수 있는 무기였음이 분명했다. 평생을 살아가며 간직할 자부심이 있었기에 남다른 미소를 지을 수 있었겠지.


부러웠다.


‘난 언제쯤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하지만 형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나에게도 존재한다면, 나도 언젠간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난 지금 당장 고통과 맞서 싸우며 깨달아가는 삶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삶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힘듦은 나로선 감히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가 어떤 정신력을 가졌는지는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형님을 따라 하기만 해 보자 하는 생각이다.


한 세기가 걸릴 듯이 아득한 시간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렇게 살다 보면 나도 저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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