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능-1.
아빠는 나무 장롱 문에 발을 내질렀다. 엄마가 혼수로 해 온, 20년이 다 되어 가는 장롱은 발길질 몇 번에 목재가 으스러지고 문짝의 경첩이 떨어져 나갔다. 말리는 엄마에게 욕설을 하고 밀어 넘어뜨리고 목을 졸랐다.
그만하세요, 제발…
안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지방 밖에서 지켜보며 울기만 하던 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현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몇백 미터 밖 가까이 살고 있는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에 취해 몽롱한 목소리로 삼촌이 전화를 받았다.
아빠가 엄마를 죽이려고 해…
뭐! 갈게!
삼촌은 번쩍 정신 든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5분도 안 되어 집까지 달려왔다.
술에 취하면 몸을 못 가누고 쉽게 쓰러지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아빠에게 알코올은 가솔린과 비슷했다. 술을 많이 마실 수록 잠을 더 안 자고 쌩쌩해졌고, 괴력의 장사처럼 힘이 더 세져서 날뛰었다. 삼촌은 아빠를 엄마로부터 떼어내고, 마치 씨름하듯 둘은 서로의 팔이나 몸을 붙잡고 한창 실랑이를 벌였다.
형, 그만해.
형, 그만하라고.
형 이새끼야 그만 좀 씨발,
주먹질이 몇 번 오가고 삼촌은 아빠를 바닥에 눕혀 한참을 누르고 있었다.
너 이 새끼 형을 쳐, 죽여버릴 거야 개새끼야.
삼촌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발버둥 치던 아빠는 정말 영원히 멈추지 않고 그렇게 날뛸 것 같았다. 그렇지만 결국 몸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잠에 빠져들었다. 코까지 골며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삼촌은 늘어진 옷매무새를 대충 가다듬고는 말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얼른 들어가. 가서 조금이라도 자.
퉁퉁 부은 얼굴로 무력하게 옆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있던 엄마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아빠가 깰 새라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새벽 두 시를 넘어 세시를 향해 갈 무렵이었다. 다섯 시 반에는 일어나야 학교 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수능 나흘 전이었다.
수능 나흘 전까지 꼬박 나흘 연속, 아빠는 술을 진탕 마시고 엄마에게 욕설을 하다가 결국 폭력까지 가는 루트를 반복했다. 텔레비전 볼륨을 100까지 최고로 올리고는 이웃집에서 잠 좀 잡시다! 하면 뭐 이 개새끼야! 하고 욕지거리로 응대했다. 나는 문닫힌 내 방 이불 깊숙이서 귀까지 덮은 채 눈과 코만 내놓고 속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자야 한다. 내일 새벽에 학교에 가서 야간자율학습 시간까지 버티려면. D-7이야. 6이야. 5, 4… 마음과 달리 온 신경은 방 바깥에 쏠려 있었다. 말리지 않으면 엄마가 맞아 죽을지도 몰라. 목 졸려 죽을 수도. 가물가물 취성이 잦아들면 나도 겨우 잠에 들었다. 그러나 그 나흘간 아빠의 주폭은 점점 강도를 더 해 갔고, 나는 밤을 새우고도 새벽같이 아침밥을 차려 주는 엄마에게 말했다.
어디라도 가 있어. 외갓집 싫으면 이모집에라도. 난 알아서 어디든 가 있을게.
너 수능이 코 앞인데 어딜 가. 조금만 참아 보자.
하루하루 참는 일이 지옥 같던 나는 책가방에 집 나갈 짐을 싸다가 풀다가를 반복했다. 결국 문제집만 넣어서 매일 학교에 갔다. 동호회의 자취하는 오빠들 집에? 혼자 사는 담임 선생님께? 수능 볼 때까지만 거취를 부탁할 사람들을 궁리해 보았지만 염치가 없고 입을 떼기도 힘들었다. 시험 전날까지 저러면 정말 미쳐버릴 거야. 삼촌에게 완력으로 제압당한 날 이후로도 아빠는 매일 술을 마셨지만, 삼일 간은 심한 주사를 부리지 않았다. 엄마에게 간간히 욕설을 하면서 취한 채 계속 더 술을 붓다가 새벽녘 가까이 잠들었다. 꼴에 딸년 수능 앞이라고 배려한 사흘이었다. 이미 나는, 엄마는 너무 지쳐 있었다.
수능 날 새벽, 아빠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고, 나는 이럴 때 칼로 쑤셔 버리든 오이지 누름돌로 머리를 짓이겨 버리든 저 인간은 꼼짝할 수 없게 되겠지, 잠시 떠오른 생각을 털어버리고 집을 나섰다. 삼촌이 나와 엄마를 시험장 학교까지 한 시간 남짓 차로 태워다 주었다.
애 학교가 이만큼 멀어도 저 인간은 삼 년 내내 한 번도 태워다 준 적이 없어요.
한탄하듯 엄마가 삼촌에게 말했다. 나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과 대추차가 담긴 보온병을 꼬옥 끌어안고 말없이 있었다. 안정에 좋다며 엄마가 끓여준 대추차가 불러일으킬 참사를 알지 못한 채. 20년도 더 된 날이지만 생생하다. 울면서 시험장을 빠져나와 마주친 엄마에게 했던 말이.
엄마...나 서강대 이상은 못 갈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