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수능 06.

나이 들어 수능 공부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by 반반

이십 년 만에 본 수능은 마음과 몸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김연수 소설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소설집을 읽었는데, 자꾸 망한 사람들한테 다 괜찮다고 위로하지 마! 하면서 책을 다 읽자마자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버렸다. 그러다 몇 달 후 다시 전자책으로 같은 소설집을 읽고 참회의 독후감을 쓰기도 했지만…


수능 끝난 바로 다음 달부터 수학 기초 문제집을 풀고 기본 개념 강의부터 다시 듣기 시작했다. 건강 검진을 하니 체중이 많이 불어 있었다. 공부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었던 듯하다. 그때 적어둔 스터디 플래너를 들춰보니...


-카야잼 버터 토스트에 콜드브루. 살이 찔 것이다.

-민초 나뚜루 맛있다.

-조선 호텔에서 생일 케이크 9만 원짜리 사 왔다!

-한우 등심…

-두리안 먹었다. 너무너무 잘 먹고 산다.


그날 공부한 기록 적는 메모마다 짧게 일기처럼 뭔가를 덧붙이곤 했는데 12월의 메모에는 왜일까 순 먹는 이야기만 한 줄씩 적혀있다.


하루 4시간에서 9시간까지, 들쭉날쭉 공부하기를 접어든 지 석 달째 되던 2월 어느 날, 자다가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살이 쪄서 이 지경까지 왔구나, 생각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동네 뒷산에 올라 한참을 걷다가 집에 돌아왔다. 몇 걸음 걸었다고 뭔가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집에서 운동하겠다고 실내 자전거를 샀다. 산책은 꽤나 중독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를 데려다주고, 산에 오르거나 동네 골목길을 이리저리 다니며 하루에 한 시간 반 정도 걷다 집에 돌아와서 공부했다. 갇혀 앉아 공부할 생각을 하니 산책길이 더더욱 행복했고, 집에 돌아가기 싫어서 자꾸만 더 멀리, 더 많이 걸었다.


산에는 나무의 눈에서 꽃이 피고, 순이 돋고, 꼬리가 연파랑색인 물까치 떼가 몰려 날았고, 작은 딱따구리가 뜨르르르르-온 숲이 울리도록 나무를 쪼았다. 벼락을 맞은 건지 폭우 폭설에 꺾인 건지 사선으로 기운 나무를 주변 나무들이 받쳐 주고 있었다. 덕분에 나무는 완전히 쓰러지지 않고 땅에 그대로 뿌리를 내린 채 버티고 있었다. 저게 내 나무야, 생각했다.

그냥 야트막한 뒷산, 이라 생각했던 곳은 무궁무진하게 이곳저곳과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새 길을 발견하는 게 매일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샛길을 보면 와, 이번엔 어디로 나를 데려갈 거냐! 하면서 이리저리 산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날도 새로운 샛길을 발견하고 신이 나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조선 초창기에 도망가는 백호 기운 누른다고 지었다는 사자 이름 붙은 암자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를 듣고 나무 위를 둘러보다, 점점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암자에를 들러볼까, 아무나 들어가도 되나, 잡생각이 많던 참이었다.

통나무로 산길 비탈에 박아둔 계단 마지막을 디뎠을 때, 하필 그 자리의 뾰족한 돌부리를 보지 못했다. 돌은 마치 지렛대의 받침점처럼 내 발바닥을 들어 올려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발레 자세를 하게 만들었고, 발목이 비정상적으로 꺾이는 게 느껴졌다. 비명이 절로 나오는 통증. 한참 그 자리에 주저앉아 산비둘기가 내 앞 나무 위에서 구구구 거리고,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를 듣고 앉아 있었다. 주변 나뭇가지를 꺾어 지팡이 삼아 내려갈까, 절에서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한참 기다렸지만 인적 드문 길이라 그런지 몇 십 분이 지나도 사람 기척이 없었다. 내내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싶어 조심스레 다친 다리를 살짝 땅에 디디며 암자 앞을 지나 산의 출구를 향했다. 마을 버스정류장이 보였고, 바로 버스가 와서 안도하며 올라탔다.

마을버스는 지하철 역 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3월의 끄트머리 그날, 도로 양 옆에는 이르게 핀 벚꽃이 하얗게 펼쳐져있었다. 이 길을 보라고 다리를 다쳤나 보네. 마을버스를 내렸을 때, 그나마 가장 적게 걸을만한 의원을 검색한 뒤 정류장에서 또 한참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아픈 걸 참고 의원으로 향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방문한 곳은 정형외과가 아닌 그냥 외과 전문의가 정형외과 진료를 보는 곳이었다. 인대 다친 것이 방사선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의사는 사진을 확인한 뒤 뼈는 다친 것이 없고, 발목 인대 염좌 같으니 자주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내가 별로 안 아파해서 더 심한 상태인 걸 파악하지 못한 듯싶다. 병원에서 구입한 발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비탈이 심한 귀갓길을 올라가며 당분간 바깥출입 삼가고 공부나 해야겠다, 싶었다.


일반 염좌는 2주 정도면 호전되는 기미가 보인다고 했는데, 그쯤 지나도 나아지기는커녕 발목의 통증이 다리 전체로, 허리까지 심하게 이어졌다. 부종도 심해졌다. 4월 중순 무렵 큰 마음먹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몇 백 미터 거리의 정형외과에 조심히 걸어갔다. 의사는 부종을 보더니 놀라면서 처음 갔던 의원에서 진료를 보든지 전원의뢰서를 받아오라면서 진료를 해주지 않았다. 더 먼 곳까지 이동할 자신이 없었다. 의사가 환자를 보고도 어떤 조치도 안 해주는 게 마냥 서러웠다.


다리 통증으로 공부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5월 초 연휴 때는 다리의 부종과 통증이 더욱 심해져서 두 번째로 집에서 가까운 마취통증의학과에 갔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부종을 살피고 엑스레이 사진을 확인하고 초음파를 보다 말고, 더 큰 병원에서 엠알아이를 찍어보라고 의뢰서를 써 줬다. 그 길로 가장 가까이에서 엠알아이를 찍을 수 있는 발목 수술 전문으로 한다는 2차 병원에 방문했고, 의사는 어떤 염좌라도 이렇게 한 달 넘게 부종이 심할 수는 없다고, 엠알아이 찍는 것도 처음에는 주저했다. 촬영으로 부종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겨우 의사를 설득해 엠알아이를 찍었고, 촬영 자료를 받아 든 의사는 조금은 기쁜 듯이 발목 인대 파열이 맞네요! 물리치료로 재활 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부종에 대해 묻자 한참 고민하다가 같은 건물의 하지정맥류 외과에 가서 혈관 초음파를 해 보라고 권했다.


마침 점심시간에 걸려 일단 다음 진료와 물리치료 예약만 하고 돌아갔다가, 물리치료를 받고, 다리가 마구 주물려지고 세라밴드로 운동하는 법도 배우고, 의사가 오른 다리 부상을 왼다리 부상으로 잘못 써준 의뢰서를 수정받고 드디어 하지 외과에 가서 도플러 혈관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심부정맥혈전증이라고, 다리에 혈전이 있는데 이게 스스로 녹기도 해서 녹았는지 떨어져 나갔는지 알 수 없다고, 이곳에서는 처방되지 않는 항응고제를 처방받으러 3차 병원에 가라고 의뢰서를 써 주었다. 벌써 세 번째 진료 의뢰서였다. 내가 숨을 몰아쉬는 걸 보더니 숨이 차냐고 묻고는, 가능하면 빨리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나는 혈관외과를 갈지, 순환기내과를 갈지, 한참 고민하다가 일주일 후 진료가 가능하다는 혈관외과를 예약해 두었다. 집까지 숨을 몰아쉬며 걸어가면서(정형외과에서 걷는 게 재활에 더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배우자와 진단에 관해 통화를 하자, 예약 기다릴 것 없이 당장 응급실에 가라고 했다.


그 직전 주말에 꿈을 꾸었다. 독수리인지 매인지 작은 맹금류 하나가 내게 자꾸만 보챘다. 아마 자기 새끼를 집안에 들여보내달란 것 같다. 나는 단호하게 안 된다 했고, 조르던 맹금류는 갑자기 과도를 가져와 협박하기 시작했다. 설마 새가 날 찌르겠어? 하는 순간 파다다다다다다다다닥 날갯짓의 속도로 이 새새끼가 내 가슴에 칼빵을 놓았다. 찔리고 나서 이렇게 많이 찌를 줄은 몰랐네, 하고 깜짝 놀랐다. 그래도 치명상은 비껴간 것 같아…생각하며 깼다. 새의 정체는…


응급실에서 오랜 대기를 하면서 흉통은 그냥, 점심에 먹은 함박 스테이크가 짜서 생긴 위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마트밴드로 확인한 심박수는 가만히 앉아서도 자꾸 분당 120-140을 넘고 있었다. 평소보다 큰 수치였다.


별 거 아니라고 돌려보내지길, 했던 기대와 달리 진료의뢰서를 내밀고 증상을 말하자,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은 코로나검사를 시키고 응급실 깊은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피를 뽑고 긴 대기 끝에 의사 선생님 한 분이 오셨다. 초음파 기계를 든 채 숨이 많이 차요? 하더니 심장, 무릎 뒤, 대정맥 어쩌고 여기저기 내가 겪은 것 중 가장 오랫동안 초음파 기계를 가슴팍에 문지르셨다. 그러다가 내 팔뚝의 링거 바늘이 빠진 것도 모르고 깔고 앉아서 계속 초음파를 쏘신 모양이다. 다른 베드 호출이 오자 벌떡 일어나신 자리 시트에는 쏟아진 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중에 돌아오신 선생님 가운에도 피가… 주말에 새에게 담금질당한 꿈은 병원에서 초음파 보다가 피투성이 될 꿈이었던 것이다. 선생님 독수리세요?


초음파 보신 선생님은 판막 역류 이런 증상이 있어서 씨티를 찍어봐야 한다고, 그럼 웬만한 건 다 나온다고 하셨다. 오랜 대기 끝에 씨티를 찍고, 결과는 두 시간 넘게 걸린다고 들었는데 몇 분 안 돼서 바로 영상 판독하는 선생님이 오셨다. 저기...약을 써야겠네요. 주사요? 먹는 약이요. 무슨 병이에요? 폐색전증입니다. 입원 자리 나면 입원하고 안 되면 가장 빠른 외래를 잡아준다고 했다.


그렇게, 약 한 알을 바로 받아먹고, 오후 6시께 도착한 응급실로부터 밤 1시 넘어 병실에 도착하기까지 기다리는 내내 “아이고 이보시오 의사양반, 내가 폐색전증이라니!” 혼자 심영 흉내를 내며 몇 번을 주절거렸다.


2박 3일 특별한 치료 없이 주는 밥 먹고, 항응고제 먹고, 이런저런 검사실에 불려 다니고, 팔뚝에 이식한 호르몬 피임제가 혈전에 안 좋다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산부인과에서 힘들게 제거를 하고, 퇴원해서 택시 타고 집에 돌아왔다.


결국 병명을 알아내고 치료를 받기까지 일반 외과-정형외과(진료거부)-마취통증의학과-정형외과-하지외과-응급의학과-순환기내과-산부인과 협진까지… 온갖 진료과목 현장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인대도 끊어먹고, 혈전도 만들고, 공부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산소포화도를 기계로 재면, 정상치라는 것보다 많이 떨어져 있었고, 심박수도 여전히 높았는데, 약을 먹고 며칠이 지나니 점차 심박수가 떨어지면서 안정되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너무 못 걸어서 다리 근육 없어지는 걸 막겠다고 의사가 최대한 안정 취하라는 2주 정도가 지나고 나서는 실내자전거를 조금씩 탔다.


5월에 처음 병원에 갔다가, 6월에 다시 상태를 보고, 석 달 후 9월쯤 다시 병원에 가서 11월 말까지 먹을 약을 타왔다. 결국 수능이 끝나도록 약물 치료를 해야 했다. 당장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면, 운 나쁘게 재발하면 또 죽을 수도 있는 질환이라면, 그래도 더 먼 미래를 생각하며 수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몇 차례 공부를 하려고 시도하다 울면서 문제집을 덮고 강의를 꺼버렸다. 가족들도 올해는 낫는 게 우선이라고 공부하지 말고 쉬라고 말렸다.


그래서 그해 남은 동안에는 그냥 읽고 싶던 책을 읽었다. 연말까지 백 권 넘게 읽었다. 수능과 상관없는 책들 읽는 일은 오랜만이라 더 신이 났다. 당신은 당장 삶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면 무슨 책을 읽겠습니까? 나에게는 최소 5천 권 넘는 장서가 집 곳곳에 쌓여있었다. 이걸 반도 못 읽고 죽을 거라 생각하면 조금 서글퍼졌다. 그래서 서둘러 펼친 책 중 기억나는 건… 박상륭의 1000쪽 넘는 소설 ‘칠조어론’, 사드의 사악하고 끔찍한 소설들(ㅋㅋㅋ), 온갖 소설책, 만화책, 과학책… 그해 수능날에는 가고 싶었던 대학까지 걸어서 산책을 나갔고, 11월 말에 항응고제 치료를 끝냈다. 다행히 혈전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발하지 않고 있다.

살아있으니 그걸로 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중년의 수능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