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나비, 면적과 고도가 만드는 생태 법칙
한반도 연안에 흩어진 섬들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입니다. 큰 섬에는 다양한 나비가 살고, 작은 섬에는 몇 종만 발견됩니다. 이것이 단순히 우연일까요? 생물지리학자들은 이를 ’ 평형설(equilibrium theory)’로 설명합니다. 섬의 종 수는 면적과 본토로부터의 거리라는 두 요인이 결정한다는 이론입니다.
71개 섬이 들려주는 이야기
최세웅 교수는 1976년부터 1996년까지 한반도 도서 지역 71개 섬에서 나비를 조사했습니다. 제주도처럼 1,824.9 km²에 달하는 큰 섬부터 0.03 km²에 불과한 군계도 같은 작은 섬까지, 면적 범위만 6만 배 차이가 났습니다. 조사 결과 가장 작은 섬에서는 나비가 1종만 발견된 반면, 제주도에서는 104종이 확인됐습니다.
데이터를 분석하자 명확한 관계가 드러났습니다. 섬의 면적이 클수록 나비 종 수가 많았습니다(r²=0.405, P <0.005). 로그 변환한 값으로 회귀분석을 하면 식은 y=0.279x+0.809가 됩니다. 즉, 면적이 10배 커지면 종 수는 약 2배 증가하는 셈입니다.
고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나비가
섬의 최고 고도 역시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고도가 높은 섬일수록 더 많은 나비 종이 서식했습니다(r²=0.341, P <0.005). 이는 고도가 높으면 다양한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산 아래에는 해안 식생이, 중턱에는 활엽수림이, 정상 부근에는 침엽수림이 분포하면서 각기 다른 식물을 먹는 나비들이 공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본토로부터의 거리는 예상과 달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r²=0.018, P>0.05). 위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r²=0.040, P>0.05). 이는 한반도 부속도서들이 대부분 본토에서 그리 멀지 않고, 남북으로도 기후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z-값이 말해주는 것
생물지리학에서는 종-면적 관계를 S=CAᶻ라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z는 면적이 증가할 때 종 수가 얼마나 빠르게 늘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상수입니다. 일반적으로 z값은 0.17~0.49 범위를 보입니다.
한반도 부속도서 나비의 z값은 0.29였습니다. 이는 일본 나비의 0.29, 한국 나비의 0.23과 비슷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레서앤틸리스 제도의 나비(z=0.27)나 파충류(z=0.17), 박쥐(z=0.23)보다는 높았지만, 영국 섬들의 나비(z=0.34)보다는 낮았습니다. 이는 각 지역의 지리적 조건과 생물 분포 특성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섬은 자연의 실험실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섬이 생태학의 살아있는 실험실이기 때문입니다. 본토와 달리 명확히 구분되는 경계를 가진 섬에서는 면적, 거리, 고도 같은 변수들이 생물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적 정확히 측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연구는 20년에 걸친 장기 조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71개 섬이라는 충분한 표본 수, 면적·고도·거리·위도라는 다양한 변수 분석을 통해 한반도 도서 생태계의 패턴을 체계적으로 규명했습니다.
* 원고에 사용된 이미지는 AI로 만들어졌습니다.
* 출처. 최세웅. (2000). 한반도 도서지역 나비 종 수에 미치는 생태학적 영향에 관한 연구: 섬 면적, 격리정도, 위도 및 최고 고도의 역할. 환경생물, 18(2), 237-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