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독일 슈트트가르트 <비상국가>
인터뷰
* 이 인터뷰는 2008년 3월부터 5월까지 독일 슈투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Württembergischer Kunstverein)에서 열린 노순택 개인전 <비상국가>에 기반하고 있다. 인터뷰는 2008년 5월에 진행되었으며, 독일의 예술전문출판사 핫제 칸츠(Hatje Cantz)에서 출간된 사진집 <비상국가State of Emergency>에 영어와 독일어로 전문이 번역되어 실렸다.
신: 당신의 작업이 다큐멘터리사진과 시각예술로서의 사진 사이에 있는 사진가들, 예를 들면 엔셀 에덤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워커 에반스, 데이비드 골드블라트와 같은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예를 든 작가들의 작품을 알고 있지만, 제가 얼만큼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학생시절의 저에게 영향을 준 작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존 하트필드와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 대해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에게 그 두 사람은 완급을 조절할 줄 아는 동시에, 쓴웃음을 자아내는 골계미의 작가였습니다.
대개의 사진가들이 그러하듯 저 역시 사진을 공부하던 초기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낭만적 휴머니즘과 사회진보의 확신, 열정을 좋아했고, 그들을 흉내 내려 애썼습니다. 사진으로 대단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죠. 헌데 자꾸 의심이 들더군요. 특히 사회적 다큐멘터리들이 전통적으로 보여주었던 고발과 명확한 교훈, 계몽의 방식이 뭔가 석연치 않았습니다.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었던 한국사회에서 제가 보아왔던 사회적 다큐멘터리 작업들 역시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듯합니다. 사회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듯한 다큐멘터리 작업이 때로는 부당한 정치권력의 관용을 증명하거나, 그들의 억압적 계몽프로그램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이러한 문제적 인식을 하고 있다고 해서, 제 작업이 그러한 문제를 극복했다거나 전혀 다른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접점이 어디인가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경계를 인식할 수 있어야 그 위에서 모종의 게임을 벌일 수 있을 테니까요.
신: 앞서 말씀 드렸듯이, 광학장치들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사실 당신의 사진 속에는 다른 어떤 사진가들의 사진에서보다 카메라나 망원경과 같은 광학장치들이 전면에 자주 등장합니다. 사진 속 인물이 휴대용 쌍안경(spyglass)를 들고 은밀히 감시하고 있는 듯 보이는 장면이라던가, 통일전망대 같은 곳에서 망원경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모습, <붉은 틀 I - 펼쳐들다 | 질서의 이면>의 마지막에 사진에 등장한 카메라 같은 것입니다. <붉은 틀> 2장 ‘스며들다 - 배타와 흡인’ 전반부에 평양 순안공항에서 카메라를 들고 남한사람들과 북한사람들이 서로 찍어대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사진 속에 카메라나 망원경 같은 광학장치들을 본격적으로 등장시키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저는 바라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About lookimg)'나 ‘보는 방법(Ways of Seeing)' 등은 제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습니다. 보는 행위에도 방법이 있다거나, 보는 행위 자체에 어떤 의미가 내재해 있다는 것이 제겐 큰 울림이었거든요. 인간의 역사가 시각확장의 역사이며, 시각의 확장이 곧 권력의 확장임을 생각해 볼 때, 시각의 메커니즘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무엇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카메라나 망원경, 현미경 등은 대표적인 시작확장 기계이며, 그것의 방향은 대부분 타자에게 향해져 있습니다. 타자에 관한 시각적 정보의 취득은 타자를 지배하고 싶은 욕망의 소산이자, 지배를 향한 의지의 밑거름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에서 서로를 향한 광학장치들이 교육이나 이해, 교류, 관광, 기념, 재현, 단순한 호기심 등의 목적을 표방한다 하더라도 그 근본적인 욕망을 모두 감출 수는 없겠지요. 게다가 그러한 광학장치들이 발생시키는 시각왜곡의 문제도 고려해봐야 할 것입니다. ‘북한에 관한 모든 것을 입체영상으로 보여준다’는 화려하고 과장된 문구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시각과 인식의 빈곤 문제라던가, “우리의 역사와 마음을 담아가라”는 정서적이고 윤리적인 문구 위에 커다랗게 쓰인 “이곳은 영업장소이니 돈을 내고 사진을 찍어라”는 문구가 보여주는 상업적 아이러니는 분단문제에 또 다른 접근을 요청하는 듯합니다.
편협한 광학 장치를 잠시 손에 쥔 채 “나는 북한을 보았다”거나 “이것이 바로 북한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왜 북한보기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 카메라와 같은 광학장치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붉은 틀> 2장 ‘스며들다 - 배타와 흡인’의 마지막 이미지는 북한의 경계병이 군사분계선 너머의 남한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리즈는 카메라로 어깨너머를 살펴보는 군인의 이미지로 시작합니다. 이 시리즈의 첫 사진은 당신이 직접 북한에 가셔서 찍은 북한의 풍경사진이지만, 곧 다시 카메라나 캠코더 같은 광학장치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진을 찍고, 사진을 찍고 있는 장면을 찍는다거나 단체사진 촬영장면을 다시 뒤에서 찍고 있는 장면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지요. 왜 이러한 상황을 북한에 대한 사진에서 선택하고 있는 건가요? 이러한 류의 사진들과 남한의 전망대에서 망원경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사진들을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광학장치와 광학장치의 사용자가 서로 합치되는 지점의 포착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요?
저는 <붉은 틀> 2장에서 북한이라는 공간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와 비슷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그 공간을 탐색하는 이들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남한사회에서 이제 사진기는 사회구성원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의 역할마저 하는 듯합니다. 북녘을 방문하는 1백 명의 이방인들이 1백 개 이상의 사진기를 소지한다는 사실은, 이들이 북녘공간에서 가장 왕성하게 벌이는 활동 가운데 하나가 사진 찍기 일지도 모른다는 예견을 가능케 합니다. 각자의 사진기는 기념, 이해, 경험, 감시, 정보수집의 다양한 차원에서 대상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이는 모종의 신성한 의식이나, 군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사진찍기는 외부인만의 전유행위가 아니며, 북한사람들 역시 이러한 의식에 동참합니다. 가끔 사진기는 상대방에게 건네져 우호와 기념의 정을 나누는 가교의 역할마저 담당하지요. 이때 서로는 기꺼이 상대방의 사진사가 되어줍니다.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라면, 거룩한 의식을 잠시 미룰 수도 있겠지만, 북한 방문은 늘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경험법칙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므로 ‘찍는 의식’은 미룰 수 없는 의무이자, 이 금단의 땅을 밟았다는 유일하고 거부할 수 없는 증인이 되어줄 것이므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죠. 잠시 상상해 보십시오. 이런 곳에서 사진기를 들이대지 않는 자는 얼마나 생뚱맞을 것인가. 언젠가 수전 손택은 냉전시기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당신은 왜 찍지 않느냐”는 것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사진은 그냥 ‘찍는 것’이 아니라, ‘찍어야만 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저는 <붉은 틀> 2장을 통해 북녘이라는 낯선 시공간을 제시함과 동시에, 그 낯선 공간에 스며든 이들이 취하는 행동양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각자의 사진기에 담긴 장면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또 어떻게 공유되고 유포되고 기념되었는지는 그냥 상상해 볼 뿐이지만요. 아마도 모두들 “내가 바라본 것이 진짜다”라고 생각했겠지요. 제 사진은 “그게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그것이 집단적으로 벌인 우스운 짓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슬쩍 태클을 거는 것이고요.
신: <붉은 틀> 2장 ‘스며들다 - 배타와 흡인’ 작업 중에서 눈에 띄는 또 한 쌍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천지와 김일성 동상을 나란히 걸어 놓은 작업입니다. 사실 이 두 장의 사진은 풍경이 가지고 있는 고결함/숭고의 파토스와 정치적 권력을 다루면서 지금까지 작업들과는 전혀 다른 문제적인 미학적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 사진들은 이미지가 보여 주려고 하는 것과 이미지가 찍히는 것의 종교적 정치적 함의 사이에 있는 어떤 전설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과도 충돌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사진들은 <애국의 길>이나 <비상국가>와 같은 시리즈에 있는 다른 사진들을 지칭하기도 하면서 ‘활인화(Tableau viviant)’와 같이 연출된 사진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극적인 전투장면을 그린 그림이라던가, 종교적인 감흥이나 열정의 사진처럼 인공적인 구성물 사이 어디쯤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이러한 인상은 몇몇 사진 속에서 아주 미니멀하게 컬러를 허용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그럼으로써 이미지의 분위기는 강화되지만, 다른 한편 그것에 의해서 어떤 거리감 같은 것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이미지들이 가혹한 정치적 현실의 증인이 되어 버립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천지의 풍경사진과 김일성 동상사진에 대해서, 이 두 사진을 나란히 병치시킨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왜 이처럼 모순되고 배치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인지요? 그리고 더불어서 이미지를 양면적인 상황으로 사용함으로써 , <레드하우스>, <애국의 길>, 그리고 <비상국가>라는 시리즈에서 나타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내용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차이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백두산 천지는 북한에서 항일투쟁을 상징하는 숭고한 산으로 숭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북한만이 아닙니다. 남한에서도 백두산은 한민족이 발원한 태고의 명산으로 여겨져 왔을 뿐만 아니라, 애국가의 가사에도 맨 앞에 등장하는 상징적 장소입니다. 그런 이유로 백두산 사진은 남한의 어느 곳에서라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치인이나 기업가의 사무실에는 하나의 관행처럼 백두산 천지의 사진이 걸리곤 했습니다. 물론 식당이나 이발소, 학교, 관공서의 벽에서도 쉽게 백두산 천지 사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백두산만큼은 북한이라는 특정 정치공간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듯합니다. 백두산은 하나이되, 남한과 북한에는 저마다의 백두산이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북한에서 백두산은 특히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김일성은 백두산을 근거지로 하여 저항운동을 벌였으며, 이러한 시기에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에서 백두산은 항일투쟁의 고향이자, 북한사회를 건설한 수령의 영기가 서린 숭고의 공간인 셈이죠. 그래서 북한에서는 최고의 국빈이 북한을 방문할 때 김일성(1994년 사망), 김정일과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의 지형적 공간이, 다시 말해 백두산이라는 상징적 이미지가 서로 다른 정치체제 속의 구성원들에게 너무도 상이하게 해석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백두산 천지만 담은 사진을 바라보며 남한 사람들은 민족의 숭고한 기운을 느낄 것이지만, 김일성 조각상의 배경으로 펼쳐진 백두산을 보면서는 경악을 할 것입니다. 북한에서 백두산은 김일성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남한에서 백두산은 감히 김일성과 관계 지을 수 없는 숭고한 독립성을 지니는 듯합니다. 한반도에서 백두산을 향한 욕망의 배후에는 권력을 향한 정치적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김일성을 욕하면서도, 자신 또한 그 자리에 앉고 싶은 욕망이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었습니다.
신: 당신의 사진을 보고 많은 분들이 연출사진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비상국가>의 첫 장면 역시 안개가 자욱한 도로에 세워진 패트롤카를 찍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하고, 역시 같은 시리즈에 나오는 무장 경찰들의 모습은 패션화보 속의 사진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지점들이 당신의 작품을 보는 즐거움일수도 있습니다. 어느 한 지점에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레이어를 펼쳐 보이니까요. 한 순간 영화 속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가혹한 현실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로 인해 그 상황이 더욱 궁금해지게 되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가혹한 정치적 현실의 장면을 극적인 이미지로 재현하는 것에 대해 저 역시 적지 않은 시간을 고민해 왔습니다. 여기에는 이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를 묻는 윤리적인 점검도 포함됩니다. 답을 찾아가는 고민의 과정은 있으되, 미리 정해진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숱한 사회적 갈등의 상황들이 어떤 정점으로 치달을 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비현실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벌어질 수 없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을 백주대낮에 목격한다는 것이 그런 느낌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때로는 스펙터클한 전쟁영화의 한 장면이, 때로는 낭만적인 드라마가, 때로는 숭고한 종교화가 머릿속에 오버랩 되었지요. 저는 결코 웃을 수 없는 폭력적 현실의 장면이 마치 연출된 듯한 극적인 이미지로 제시될 때 유발되는 쓴 웃음의 아이러니가 모종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도적으로 연출한 가공의 이미지 같은데 현실 속의 장면임을 부인할 수 없는, 해괴망측한 괴물인 듯한데 정작 자신임을 부인할 수 없는, 그런 장면들이 발생시키는 어떤 불편함, 쓴웃음 이런 것이 반성적 거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겁니다.
신: 개별사진들을 오랫동안 꼼꼼히 세밀하게 살펴본 다음 한 걸음 물러서서 시리즈 전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시리즈의 기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리즈는 대부분 당신이 찍은 수 천장의 사진에서 선별되어 구성되었습니다. 대부분 지난 10여 년 동안 꾸준히 찍어온 사진들이지요. 특히 슈투트가르트의 <비상국가> 전을 준비하면서 시리즈를 새롭게 구성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은 마치 이미지 컬렉션의 재구성처럼 보였습니다. 즉 당신의 아카이브 안에 어떤 질서를 가지고 정리되어 있지만, 동시에 주어진 전시의 맥락이라던가 어떤 개인적인 목적에 의해서 언제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비상국가>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전에는 ‘조류도감 II'라고 불렸던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다른 시리즈들에서 작품들을 선별해 시리즈를 축소시키거나 <비상국가>에 대한 일반적인 담론에 맞게 새롭게 사진들을 재구성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신에게 하나의 이미지가 갖는 의미 혹은 기능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어떤 기준과 과정에 의해서 작품을 재구성 하십니까? <비상국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의 이미지가, 또는 하나의 개별 프로젝트가 어떤 고정성을 갖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의문을 가집니다. <레드하우스> 2장에서 저는 북한사회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한 장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 관광객의 손에 쥐어진 담배꽁초가 마치 주체사상탑과 키재기를 하는 듯한 장면인데요. 이는 북한사회의 입장에서 볼 때 참기 힘든 모욕이겠지만, 다른 사회의 구성원들이 볼 때는 아주 단순한 유머나 위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렌즈가 만들어낸 광학적 원근감과 순간적인 포착을 통해 만들어진 이 이미지로 제가 의도한 것은 북한 사회를 모욕하려는 것도 아니고, 싱거운 웃음을 자아내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가 서로 다른 맥락의 시공간에 놓일 때 발생시키는 상이한 반응에 대해 뭔가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는 작가 개인이 진행하는 어떤 프로젝트들 또한 다양한 맥락의 시험대 위에 오르내리며 저울질되기를 반복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위치시킨 혼자만의 맥락도 들쑥날쑥할 뿐만 아니라, 작가 밖의 외부적 시공간이 갖는 맥락은 그야말로 다양한 셈이지요. 저는 그러한 맥락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재구성, 혹은 ‘넣고 빼기’가 새로운 효과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시행착오와 수정의 과정을 통해 흥미롭고, 탄탄한 변주를 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지요.
질문에서 예로 들었던 <비상국가>의 경우 두 가지의 측면에서 고민이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예정된 대형전시를 앞두고, ‘내가 지금까지 과연 무엇에 대해 말해왔으며, 앞으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 폭력의 문제가 한반도라는 특수한 사회공간에 내재된 문제임을 인정하지만, 이것이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문제임과 동시에 경찰력을 사회통제의 근간으로 하고 있는 근대국가 어느 곳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러한 비상상황은 발생하는 것이며, 때로 국가권력이 위장된 비상상황을 조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상상황은 어떤 효과를 유발하며 그로 인해 실현된 이익은 누구의 몫인가, 사회구성원은 비상상황에 어떻게 동의하고, 또 어떻게 저항하는가에 관한 의문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슈투트가르트 전시의 타이틀이 정해진 것이고, 또 한편에서는 하나의 도감을 만들듯 수집해 왔던 경찰력의 장면들을 <조류도감 II>란 제목에서 <비상국가>로 수정했던 것입니다.
저는 가끔 사람들로부터 “우리사회에 어두운 단면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듣곤 했습니다. 곤란한 질문이었습니다. 제게도 대안은 없거든요.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말을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대안을 부각시키는 것이 예술의 책무는 아니다. 예술의 책무는 오히려 인간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이 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해, ‘형식’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한국의 홍상수 감독이 만든 영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대사의 한 구절도 인용할까 합니다. “인간이 되기는 어려워도, 괴물이 되지는 말자!”
저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이 무엇인지, 그러한 확신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바람직한 인간형이 무엇인지, 그 또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의구심, 그러한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시각적 증거들, 괴물이 되어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아주 조금 보여 주고자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