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레이터 수첩 Apr 16. 2020

[KDK] “사진 한 장 사 보지 않으실래요?”

2017. 상업화랑/ 2018 오보이


“사진 한 장 사 보지 않으실래요?”

신보슬(큐레이터)


#KDK 작가의 인스타그램 사진전 오프닝


2017년 12월15일 오후 3시.

4시부터 선착순으로 판매한다고 했는데,

나가야 하는데, 나가야 하는데,

전시는 커녕 출근도 못하고 감기앓이중이다.

반칙인줄 알지만 KDK에게 문자를 날렸다.

“감기로 오늘 오프닝은 못갈 거 같고...

젤 좋아하는 사진으로 한 장 찜해줘”

곧 답장이 왔다.

“찜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은 해볼께요. ㅎ”

아예 안 된다고 하던가. 노력한다고 하니 뭔가 더 안달 나는 심정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번갈아가며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을지로 ‘상업화랑’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사진작가 KDK의 전시 오프닝에 온 손님들이다.

전시제목은

“20110326-20171214/ instagram@kdkkdk/ 20171215-20171231”

너무 길어 어떻게 읽어야할지 난감하지만, 사실 제목에 전시에 대한 내용은 다 들어가 있다.

해석하자면, ‘2011년3월26일부터 2017년12월14일까지 kdkkdk 인스타그램에 올라가 있는 사진들 중 1555장을 12월15일부터 12월31일까지 전시’한다는 내용이다. 사진작가의 인스타그램 사진전시라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오프닝 시간인 4시부터 선착순으로 작품을 판매한다고 하니 재밌겠다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게다가 가격도 한 장에 오천원, 사는 즉시 전시장에서 떼어 갈 수 있으니 전시가 끝날 때 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작가는 사진을 사면,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내리겠다고 했고, 그렇게 되면 ‘유일한’ 이미지를 사는 것이었으며, 사진마다 ‘친히’ 사진을 찍은 날짜를 적어놓았고, 작가사인도 있었다. KDK의 본래 작품들과는 다른 결이지만, 이 역시 작가가 찍은 ‘사진’이고, 심지어 에디션도 없는 것이었으며, 작가 본인의 증명까지 더해졌으니 ‘작품’이라 위안 삼을 만도 하다 싶었다. 그 뿐 아니었다. 작가는 작품 설치과정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등 전시를 위해 온갖 성의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작전 혹은 정성이 통했는지 작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게 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대로 오프닝 전부터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는 풍경이 만들어졌고, 실시간으로 SNS에 소식이 전해졌다.

“아, 나두 저기 있었어야 했는데..”


# 전시 설치 몇 주 전,

KDK로부터 전화가 왔다. 인스타그램 전시가 생각보다 재미있을 것 같으니 이벤트처럼 작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개인전 형식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데 의견을 묻는 전화였다. 예전 같았으면 좋다고, 한번 해보자고 했을 텐데 왠지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인스타그램 사진전은 흥미로우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뭔가 시대를 앞서가는 듯하면서도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적 느낌.

그 느낌을 거칠게 추적하면,


1. 인스타그램 사진은 디지털 사진이다.

2.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진, 나아가 디지털 매체는 본성상 복제가 가능하다. (물론 벤야민의 논의에서의 사진의 본질, 아우라, 나아가 디지털에서의 원본과 복제본에 대한 논의는 논문 한편은 나올 내용이지만, 여기는 학술적인 자리는 아니니 일단 이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자)

3. 인스타 그램의 사진을 출력하고, 거기에 서명을 넣는다는 것은 디지털의 속성을 아날로그로 전환시킨 것이며, 이를 통해 디지털 이미지는 ‘오직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어진다.

4. 그렇게 만들어진 ‘오직 한 장의 사진’은 시장의 매커니즘으로 들어와 판매가 된다.

5. 판매된 사진 이미지는 인스타그램에서 내려지면서 존재가 사라진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이미지는 아마도 작가의 하드 드라이브에 혹은 이전에 온라인에서 보고 마음에 들어서 저장했을 누군가의 드라이브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7. 작가는 더 이상 출력하지 않는다고 했고, 우리는 그 약속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오직 하나의 사진’은 믿음에 기반을 둘 뿐 에디션이 없다는 이 사진 이미지는 사실 다시 무한복제(혹은 무한 출력)의 가능성에 열려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작가의 인스타그램 ‘디지털 이미지’가 출력이 되어 종이와 잉크라는 물성을 가진 ‘아날로그 사진’으로 변환되고, 거기에 미술시장의 인증시스템인 ‘서명’이 덧붙여지면서 ‘유일성’이 담보되어 판매되는 시스템, KDK의 전시는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이런 시스템을 건드리는 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단계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고민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기에 무수히 많은 공격에 노출될 확률이 짙었다.

결국, 나는 KDK에게 말했다.

“괜히 일 키우지 말고, 그냥 작은 이벤트 전시가 나을 것 같아”


# 전시 철수 전날,

사진이 다 팔렸을까? 아직 남았을까? 오프닝에 가서 온전한 전시를 보고,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특권(?)도 재미있었겠지만, 전시 마지막 즈음 들러 남은 사진들을 보며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을지로 상가들 사이에 쌩뚱맞게 자리한 오래된 건물의 3층을 헉헉 거리며 올라갔다. 고맙게도 토요일 오후에 작가가 나와 있었고, 전시장 한 켠에 놓인 삼각대 위의 카메라는 타임랩스로 전시장의 변화를 기록 중이었다.

아직도 벽에 붙어 있던 사진들을 보며 ‘솔드 아웃은 못했나봐?’라고 장난삼아 물어봤다. 작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다 팔았다고 했다. 전시 첫 날에 오신 분이 남은 사진을 다 사시겠다고 했단다. 5천원씩 1555장이면, 무려 7,775,000원이다. 물론 3명이 5일을 달라붙어 편집하고, 또 5일 동안 출력하고 넘버링하고 커팅한 후 다시 3일을 꼬박 설치했다고 하니 그 시간과 인건비를 생각한다면, 그리 큰 수입도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인스타에 올렸던 사진으로 그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면 성공적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왠지 작가에게 그렇게 말하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을 꾸욱 눌러 담았다.

전시장에 남아 있는 사진들을 고르며, 문득 어떤 분들이 어떤 사진을 사갔을지 궁금해졌다. 한 장에 5천원이니 커피 한잔 안 마신다 치면 작가의 작품(?)을 살 수 있는 것이었고, 10장 정도는 큰 부담 없이 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관객들이 꽤 즐기며 사진들을 사갔다고 했다. 관객들마다 작품 선택의 기준도 다양했단다. KDK의 작품과 닮은 구도라던가 작품이 들어가 있는 사진, 특정 날짜의 사진, 공간의 사진 등등 저마다의 기준으로 사진을 사갔다고 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렇게 가져간 사진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있을까?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품을 고른 순간부터 인스타그램에 올리신 분도 있고, 저마다의 공간에 나름 개성 있게 설치(?)하여 인스타그램에 공유한 분들도 많다고 했다. 어쩌면 사진의 복제가능성이니 아우라니 하는 이야기는 쓸데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작가의 사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아마 그 중에는 KDK의 사진을 무척이나 좋아한 팬이 있을 수도 있다. 너무나 좋아하지만, 살 수 없었던 그 누군가에겐 비록 ‘정식 작품’은 아니지만, 작가의 서명이 담겨있는 그만의 스타일의 사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이 전시는 가치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궁싯거리며 사진 앞을 서성이는데 KDK가 웃으며 물었다.

“이건 토탈미술관에서 찍은 사진이고, 이건 로드쇼할 때 찍은 것이니

토탈미술관 큐레이터가 사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KDK 인스타그램 사진 8장과 함께 전시장을 나섰다.


# 전시가 끝나고,

KDK의 전시는 끝났다. 책상 앞에 붙여 놓은 KDK의 인스타그램 사진들을 보면서 작년이었던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가의 작품을 산 후배가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선배, 나는 작품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신문이나 뉴스에서는 어느 옥션에서 얼마에 작품이 팔렸다고 하는데, 그 금액이 어마어마하니까 아예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 생각했고, 시립미술관이나 국립현대에서 하는 유명 전시들을 봐도 그걸 살 수 있다고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번 사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그 후배는 국회의원들과 한동안 일을 했었고, 아프리카 관련 기관에서도 일을 했었다. 예술과는 아무 관련 없던 회사원이었다. 후배의 이야기는 평범한 일반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바쁜 일상에 쪼들리다 보면, 전시나 작품 감상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고, 설령 전시장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작품을 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일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작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전시를 보러다니다가 작품을 사기도 한다.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거나 유명 작가라서가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작품이 좋아서 집에 두고 오래 보고 싶어서 산다는 요즘 그 후배는 지금도 종종 작가들을 만나고, 전시장을 찾으며, 소품을 산다. 사는 형편이 나아져서가 아니었다.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보니 작가에게도 작품에도 더 관심이 간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자라면서 작품을 사는 것을 배워본 적이 없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거 전시회는 갈지언정, 작품을 사서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100만 원짜리 가방은 사지만, 100만 원짜리 그림은 안 산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날, KDK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샀던 사람들은 아마 이후에도 KDK의 작품을 보러 전시장을 찾겠지? 어디선가 KDK라는 이름을 보면 자연스레 관심이 가지 않을까?


# 사진 한 장 사 보지 않으실래요?

처음 KDK가 인스타그램 전시에 대해서 연락을 했을 때에도, 전시장을 찾았을 때에도, 전시장에서 사진을 사와서 책상 앞에 붙인 지금도 나는 그 사진 이미지가 KDK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작가가 포착했던 이미지들을 ‘공유’할 수 있었던 일종의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작가와 ‘공유’하게 된 시간들이 생겨났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가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라는 것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그 계기를 시작으로 한 작가의 작품으로 나아갈 수 있을 수도 있다.

그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낸 추억이다.

작품을 갖는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작가에게 다가는 일, 작가와 가까워진다는 일, 작가와 공감한다는 일. 그래서 작품을 사보시길 권해보고 싶다. 고가의 회화나 조각보다 사진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백승우] 사진으로 사진을 의심하는 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