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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Mar 05. 2022

좋은 전시는 손가락을 춤추게 한다

마음 정리의 경험

나를 기분좋게 하는 것들이 있다. 깨끗한 바닥, 설거지가 끝난 싱크대, 그리고 뽀송한 빨래. 정확하게는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라 무엇이든 하고 싶어지는, 그런 상태가 좋다.


오늘은 바닥도 깨끗하고, 설거지도 끝냈고, 빨래도 뽀송하게 말리는 중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진다. 마침 친구의 전시가 있어 방문하기로 했다.



장소는 서강대학교 근처 스파인서울 이라는 곳으로, 연보라색 문이 맞이하는 곳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예상치 못한 따뜻한 공간이 나온다. 채광이 좋고 연보라색으로 포인트를 준 오브제들이 있다.



방명록을 작성하고 전시 작품을 -디자인 학교 학생들이 쓴 글을 각각 책으로 펴냈다- 읽었다. 전시회를 하기 전, 유튜브 라이브로 서로의 작업물을 보여주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설명하는, 프리 도슨트 같은 세션을 진행했는데, 확실히 유튜브로 보는 것보다 실제로 책을 만져보고 읽어보니 이들이 들인 시간과 노력이 보였다.


친구의 작품. 사진을 크롭해 단순화 한 그래픽이다.

친구의 글인 777,77,7. 접근 방식이 재미있었는데 랜덤으로 777 곡을 고르고, 77개의 곡을 선택해 가사를 7개 나라(G7)의 언어로 번역한 텍스트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너의 유령의 냄새를 맡습니다”라던지 “나는 우호호 타입이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위 사진은 친구의 글을 보고 다른 디자이너가 만든 텍스트 레이아웃이다. 같은 글인데도 모티프가 다르다.


다른 디자이너 분의 작품. 일기 형식의 글을 잘 살린 레이아웃이다. 이 외에도 좋은 디자인이 많았다.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스툴에 앉아 더 읽어보거나, 나처럼 노트를 만들 수 있다. 디자이너들이 만든 책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2장씩 찢어 완성하는 노트로, 굉장히.. 책을 찢으며 죄스러웠다. 이들의 노력이 이렇게 찢겨져 나간다니..! 하는 마음이 든 이유에서다. 또, 뭐 다르게 생각하면 이들이 들인 노력과 시간을 내가 영원히 간직하는 의미도 있으니 죄라기 보단 구원인걸까.


사실 그동안 쓰고 싶다는 욕구가 없었다. 가뭄처럼 박박 긁어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처럼, 좋은 글은 손가락을 춤추게 한다.


전시를 보고 남편의 스튜디오로 가는 길, 새로 생긴 쌀국수 집을 발견했다. 갑자기 배가 고파져 들어갔다.


현지 분위기가 물씬 났던 곳. 음식 사진은 찍지 않았다. 쌀국수와 비빔국수를 먹었는데 둘 다 짱맛탱. 언젠가 서강대 쪽을 지나간다면 또 방문해야지.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분다. 그 덕분인지 업무 스트레스가 다 날아갔다. 사람이 기분으로 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상공 2먼 미터 위를 날아다니고 있을 거다. 내일은 또 어떤 얼굴일지 모르나. 지금은 굉장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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