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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Jul 16. 2022

한걸음 떨어져서 봐야 디테일이 보인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전

이사 가고  첫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무려 한 달 전에 예매한 <안드레아스 거스키 전>을 보러 가기 위해 아모레퍼시픽 본사로 향했습니다. 신용산역 쪽에 새로 지어진 아모레 퍼시픽 본사 로비는, 마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로비 같은 느낌을 줍니다. 미술관은 꽃집 옆에 있어요. 미리 예약한 시간에 가서, 티켓을 구매하면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전시는 티켓부스 뒤 계단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독일 태생의 사진작가로, 원거리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크게 프린트하는 작가입니다. 작품이 워낙 크다 보니, 원경 속에 개인은 '월리를 찾아라'처럼 조그맣게 표현됩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거대한 사회와 그 안의 개인의 미미함을 보여준다.'라는군요. 





전시장 초엽에 있는 사진입니다. 설명을 보기 전엔 테이트 모던에 있는 작품인 줄 알았는데, 홍콩의 한 은행 건물이라고 합니다. 공항 전광판 느낌도 나고, 검은 배경과 대비되는 오렌지빛이 좋아서 카메라에 남겼습니다. 작품이 워낙 크다 보니,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몰입이 되더라고요. 마치 제가 저 건물 앞에 있는 것처럼 말이죠. 로스코의 페인팅을 처음 봤을 때처럼 이 작품 앞에서 몇 분을 보냈습니다.



작품이 큰데 전시장이 작으면, 답답하고 뭔가 억눌린 느낌이 나거든요. 이번 전시는 그런 느낌이 없었어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천고가 높고 내부도 넓더라고요. 그래서 작품을 볼 때도 시원시원하고, 관람객들과 부딪힐 일도 없었습니다. 공간이 주는 엄숙함 덕분이었을까요? 관람객들의 매너도 수준급이었습니다.



거스키 전에서 가장 좋았던 사진입니다. 보이는 사진은 서킷장인데 사막 주변으로 굽이진 도로가 깔려있어요. 이 모양이 그래픽적이라서 계속 눈길이 가더라고요. 게다가 자세히 보면 차를 세워놓고 서 있는 사람, 비품 등이 보입니다. 대규모 작품이라서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특히 이 작품, <얼음 위를 걷는 사람(2021)>이 그랬어요. 작품의 일부만 촬영했는데, 이런 모습이 4장 더 있다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얼마나 큰지 아시겠죠? 멀리서 볼 땐 그래픽 요소 같던 사람들이, 자세히 보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스트레칭하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눈밭에 엎드린 아이가 바라보는 리트리버.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마치 명화 속 인물처럼 시선이 교차되면서 주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눈길을 사로잡은 또 다른 작품입니다. <회상(2015)>이라는 작품으로, 역대 독일 총리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헬무트 슈미트, 앙겔라 메르켈, 그리고 헬무트 콜이 바넷 뉴먼의 그림 <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을 나란히 앉아서 보는 모습입니다. 작품의 색인 빨간색과 대비되는 흰 연기, 연극적으로 배치된 좌석들. 흰 선과 창문의 검은 섀시가 레이아웃을 이루면서 슈미트와 메르켈 총리만 한 방에 있는 듯, 그래서 둘만의 밀언이 오가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 같달까요.



색채의 대비가 좋아서 클로즈업으로 한 장 더 촬영했어요. 작품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 하나하나가 임팩트 있었어요. 빈 볼은 없고 안타와 홈런으로 꽉 찬 전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2층에 올라갔는데, 아모레퍼시픽 건물이 정말 예쁘더군요. 작품 같아요. 건물 때문에 그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처음이었어요.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출근할 때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거스키 전시를 보고 나서 전, 개인의 미미함보다는 삶의 재미가 더 보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큰 사회 안에서도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각자의 시선으로, 각자만의 시간에 몰입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거든요. 이런 건 가까이 선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것 같아요. 일상이 쳇바퀴 도는 것 같고, 별 의미 없는 것 같은 때 다시 보고 싶은 작품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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