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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Aug 12. 2022

교포 남편이 한국어를 말하는 법


 “자기야.. 핸드폰이 나를 못 알아봐요”

 어느 일요일, 남편의 구슬픈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거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동물농장> 유튜브가 재생되고 있었는지, 굳게 닫힌 핸드폰 안에서 낑낑거리는 반려견의 소리가 들렸다. (유튜브 프리미엄이란) 지문 인식이나 패턴을 그리면 1초 만에 열릴 텐데…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가 모르지 않을 테니까. “…난 나인데, 왜 내가 아니라고 할까요?”

 열 번의 시도 끝에 남은 건 20분 뒤 활성화.였다.


 남편에겐 수염이 있다. 아주 멋진 수염이.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제일 먼저 “수염 멋지다”라는 말을 건넨다. 게다가 그는 반수염파던 나를 개종시켰으니 말 다 했다. 오랜만에 남편의 얼굴을 본다. 그의 수염이 덥수룩해졌다. 조금.. 많이. 촬영이 몰렸던 터라 관리할 시간이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면도를 해봐요.”

“그러면 (핸드폰이) 나를 알아볼까요?”

“네 그럴 것 같아요. 어차피 20분 동안은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


그는 말이 없다. 고민에 빠진 것이다. 조각상처럼 앉아 있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터덜터덜 걷는 뒷모습에서 시무룩한 슈나우저가 보였다. 자신의 핸드폰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슬픔이 큰 걸까. 십여 분 뒤, 남편이 멀끔해진 얼굴로 나왔다. “자기 말이 맞아요. 이제 될 것 같아…!” 핸드폰을 집어 들었으나, 아직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남아있었다. 부리처럼 뾰족해진 그의 입에 아삭이 복숭아를 물려줬다. 아삭아삭. 함께 복숭아를 아삭이며 <도시어부 2> 참치 편을 재생했다.


TV 속에선 개그맨 김준현이 참치와 씨름하는 중이다. 낚싯대를 풀어줬다 감았다 하며 참치를 배 가까이 데려온다. 옆에선 남편이 핸드폰을 들었다 내렸다 한다. 참치가 배 가까이 왔다. 잡힐락 말락 하는 게, 보는 나까지 양손을 꽉 쥐게 만든다. 드디어 참치가 잡히고 출연진들이 와악 소리를 지른다. “날 알아봤어!” 남편의 눈이 윤슬처럼 반짝였다. 나를 향해 핸드폰 화면을 보여준다. 그의 목소리 만큼이나 밝다. 화면 속에선 김준현 씨가 카메라를 향해 잡은 참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좋아하던 것도 잠시, 남편이 핸드폰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무리 수염이 많아져도 그렇지. 네가 나를 못 알아보는 게 말이 돼? 우리가 어떤 사인데!” 핸드폰은 답이 없다. 미소가 그려진다. 나였다면 이제 된다!고 할텐데, ‘알아본다’고 하는 그의 언어가 흥미롭다.




남편의 모국어는 영어다. 가나다를 배우고 미국에 가서 한국어도 안다. 며칠 전, 마을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지갑을 놓고 나온 걸 버스 정류장에 가서야 알았다. 남편에게 버스비를 내달라고 했다. 버스에 오른 그가 기사님께 말했다. “2인분이요~”

눈물까지 글썽이며 웃는 나를 보고,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 잘했는데 왜..?라는 눈빛과 함께.

“재밌잖아요~ 자기는 안 웃겨요?”

“자기도 참~ 둘이니까 2인분이죠~ 웃긴 거 아닌데.”


맞다.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다.

문장을 잘못 골랐을 뿐.


“2인분은 먹을 때 쓰는 단어고, 버스 탈 땐 두 명이라고 하면 돼요.”

“아~”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남편이 올 시간에 맞춰 저녁 준비를 했다. 기다려도 그가 오지 않았다. 오다가 사진이라도 찍나? 식탁에서 일어났다. 오늘 안에는 올 거고, 식은 음식은 데우면 되니까. 그 사이 설거지를 했다. 띠띠띠- 물소리 사이로 도어록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도착 예정 시간으로부터 3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차 타고 오는데, 고양이가 도로에 있었어요. 빛 봐서 깜~짝 못 하더라고요. 아무도 안 오길래 차 세우고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래서 늦었어요.”

“꼼짝 못했다고요?”

“아뇨, 깜짝 못 했어요. 꼼짝은 freeze고 그 고양이는 surprised 해서 못 움직이니까 깜짝이 맞지요~”



영어를 쓸 때완 정반대의 매력이다. 그는 부끄러워하지만, 난 남편의 이런 모습도 좋다.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의 활용이 나를 즐겁게 한다. (결혼 생활의 수많은 즐거움 중 하나다) 지하철 탈 때 남은 정거장 수를 ‘다섯 거장’이라고 말하고, 두상이 예쁘다는 걸 ‘두통’이 예쁘다고 말하는 그가 좋다. 남편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한국어를 잘하게 된다면… 슬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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