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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Sep 07. 2022

어린이 시절이 떠올랐던 햄버거

선선해진 바람을 가르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남편에게서  전화다. “근처에 착한 수제버거가 있다던데..” 얼마나 좋은 재료를 쓰기에 착한 수제버거일까?


 한 아파트 상가 건물. 살짝 눅눅한 공기가 흐르는 곳. 미로처럼 골목을 꺾어 들어가면 수제 버거 집이 나온다. ‘착한 수제버거 & 샐러드’. 인기척을 느낀 주인이 밝은 낯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아, 이래서 착한 버거였구나.’  마흔 넘어서는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드러난다던데. 착한 버거의 주인 분은 인생을 되도록 밝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셨나 보다.


 늦은 저녁에 간 탓에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메뉴는 매진이었다. 오히려 좋았다. ‘어딜 가든 버거는 치킨 버거 파’라서다. 남편은 다소 아쉬운 눈치였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던 상황. 결국, 치킨버거 세트와 치킨 버거 단품 하나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자마자 치킨 패티에 빵가루를 입히는 것으로 조리가 시작됐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햄버거가 착실히 만들어졌다. “Just one ten minutes 내 것이 되는 시간~” 이효리의 <텐 미닛>을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았다. 남편과 눈빛을 교환하고 햄버거 포장지를 열었다. ‘음, 그냥 버거네.’ 감흥 없이 햄버거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세상에나! 어린이 시절 먹던 햄버거 맛이었다.


 흰색과 검은색의 타일 바닥과 붉은 에나멜 의자가 있는 햄버거 집에서 버거를 먹던 그때로 무대가 바뀌었다. 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앞니로 감자튀김을 갉아먹던 동생과 여름엔 수상스키, 겨울엔 스키를 타느라 일 년 내내 새카맣게 그을린 나, 그리고 아이보리색 벙거지 모자를 쓴 새하얀 엄마. 우리 셋이서 운동이 끝나면 갔던 그곳. 동생의 생일파티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지오디 얘기를 하던 곳. 갑작스러운 추억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마들렌에 홍차를 적셔 마셨더니 유년기가 떠올랐다던, 마르셀의 경험이 실재했다.


 머스터드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옛날 햄버거의 맛. 잊고 살았던 맛이 되살아났다. 추억이 더해져 버거 하나를 다 먹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세트 메뉴에 포함된 감자튀김은 기대 이상이었다. 기억 속 햄버거 집처럼 얇은 감자는 아니었지만. 버거를 먹는 동안은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당분간은 이 기억을 곱씹으며 살아갈 것 같다. 올 추석엔 가족들과 앨범을 펼치고 추억 여행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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