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요즘 보물 찾기를 한다. 내가 집에 올 때마다 어릴 적 사진이나 다이어리, 자주 쓰던 물건들을 꺼내 오신다. 요즘 내가 엄마에게 나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해달라고 자주 전화하는 탓이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궁금해졌다. 정말 특별한 이벤트를 빼고는 기억이 휘발한 탓이다.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간다는데, 그 기억이 너무나도 희미해 뿌리 없이 자라난 나무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날은 엄마가 옛날 사진과 함께 은빛을 띠는, 내 검지만 한 기계를 꺼내주셨다. 나의 첫 MP3, 삼성 Yepp(YP-55)이었다!
YP-55는 삼성전자에서 2003년에 출시한 제품으로, 무빙 조그 레버라고 하는 헤드를 돌릴 수 있었다. 어떤 장치가 되어 있어서 20도 정도 돌리면 찰칵-하며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손맛이 꽤 좋았다. 이 헤드 때문에 대세였던 아이리버 대신 YP-55를 샀다. 헤드를 돌리면 이전 곡 또는 다음 곡을 재생할 수 있고, 메뉴의 방향 키로도 쓸 수 있다. 메탈 재질의 MP3 옆면에는 슬라이드 버튼이 있다. 이것을 오른쪽으로 밀면 SRS WOW 기능이 활성화되는데, 과장을 좀 보태자면 지금의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만큼이나 풍성한 음질을 자랑했다. 용량은 무려 256mb. 그 시절 치고는 꽤나 큰 용량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전원을 켰다. 오, 켜진다! 노래의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정답을 외쳤다. 백스트리트 보이즈(이하 BSB)의 As Long As You Love Me!
BSB의 <As Long As You Love Me>는 내 취향에 큰 영향을 줬다. 7살 때 처음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느 때처럼 친가 식구들이 모두 모인 주말이었다. “나 반에서 1등 했으니까 오늘 리모컨 내 거 찜!” 사촌 언니가 집에 오자마자 반에서 1등을 했다며 거실 탁자에 놓인 리모컨을 채갔다. 채널이 순식간에 MTV로 바뀌었다. 다섯 명의 서양 남자가 차고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화면을 뚫고 나오는 잘생김 공격에 넋을 놓았다. 충격적으로 아름다웠던 뮤직비디오가 끝났지만, 그 노래의 제목을 알 수가 없었다. 뮤비가 시작할 때 가수와 노래 제목이 나왔기 때문이다. 수수께끼는 우연한 기회에 풀렸다. 엄마가 즐겨 듣던 AFKN 라디오에 이 노래가 나온 것이다! 그날, 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노래를 알았으니 가사의 뜻을 알고 싶어졌다. 그렇게 난 영어를 더 좋아하는 어린이가 되었다.
S.E.S와 지오디, 휘성의 앨범을 샀던 초등학생은 리아나, 더 킬러스, 오케이 고를 듣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반에서 팝송 좋아하는 애가 되었다. 단지 즐겨듣는 것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전부가 바뀌었다. 어둠의 다크함이 최대치를 찍는다는 중학교 2학년. 그것도 가장 중요한 수학여행 전날이었다.
“이제 우리 팸에서 빠져줬으면 하는데.”
같이 놀던 친구들이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요지는 나와 더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해됐다. 나도 걔네들이 하는 남자 얘기니 연예인 얘기에 관심 없었으니까. 남아서 수다를 떨던 무리의 목소리가 줄어드는게 느껴졌다. 그래 알겠어. 라고 했던 것 같다. 절교는 생각보다 쿨했다. 혼자서 하교하는 길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게다가 다음 날이 수학여행인데! 그 무리랑 방을 쓸 생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보도블록이 뿌예졌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내 마음을 MP3도 알았는지, 라디오 헤드의 Creep이 재생되고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재빨리 소매로 눈을 닦고 상대를 쳐다봤다. 아까 반에 있던 애였다. 뒤로는 그 애와 노는 무리들이 털레털레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 떡볶이 먹고 노래방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그 애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오래된 친구처럼 내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나는 환승 우정을 했다. 신화 브로마이드가 덕지덕지 붙여진 분식집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었다. 마치 걔네들이 내 중학교 2년 간의 절친이었던 것처럼.
“요즘 뭐 좋아해?”
“나? 좋아하는 거 엄청 많은데.. 빅뱅도 좋아하고 블러랑 수퍼 내추럴”
“오~ 나도 수퍼 내추럴 보는데! 이번 최신 화 봤냐?”
“야 그거 그만 보고 왕의 남자 보러 가라고~ 공길이가 미쳤다니까?”
떡볶이집에서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떤 우리는 서현역 로데오 거리에 있는 노래방에 갔다. 한국 노래와 J-Pop, 그리고 팝송이 뒤섞인 예약 리스트가 완성되었다.
”이 노래 좋다. 제목이 뭐야?”
“이거 란마라고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인데 투니버스에서 해”
“란마가 뭔데?”
“남자 주인공이 물을 뒤집어쓰면 여자가 되는 내용이랄까?”
그 친구들의 관심사는 자유분방했다. 일본 아니메와 J-Pop부터 국악, 왕의 남자, 그리고 나처럼 팝을 좋아하는 친구까지. 이 친구들 덕분에 시야가 넓어졌던 것 같다. 취향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수학여행 날, 고속버스 옆자리는 새로운 친구들 차지였다. 다행히 방도 바꿀 수 있었다. 우리는 밤새 수다를 떨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컨텐츠 영업이었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이야기도 깊어졌다. 마이너 한 취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받았던 상처를 공유했다. 위로받고 위로하는 밤이었다.
농담으로라도 누군가의 취향에 관해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었다. 취향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거니까. 친구가 좋아하는 게 궁금하기도 했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이를 계기로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반이 달라져도 우리는 하나였다. 우리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자주 만났다. 서현역 로데오 거리에 모여 캔모아를 가고 스티커 사진을 찍고, 노래방에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말할 수 없는 이유로 흩어진 그 친구들이 자주 그립다. 혹시나 이 글이 그들에게 흘러갈까 싶어 이번에도 쓴다. 그때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했어.
*제목은 Backstreet Boys, As Long As You Love Me, 1999. ‘Although loneliness has always been a friend of mine’ 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