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이틀 전엔 코로 봄을 느꼈는데, 오늘은 온몸으로 봄이 느껴진다. 운동하고 나온 오후, 이렇게 좋은 날을 낭비할 순 없지!라는 생각에 카페에 가기로 했다. 막상 가려니 선택지가 많았다. 글쓰기 모임에서 추천받은 파주의 ‘콰이어트 라이트’를 가려고 했다. 생각해 보니 퇴근 시간이 겹치면 집에 올 때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마음의 고향 ‘커피상점 이심’을 갈까? 아니면 응암에 있는 ‘로모 커피’를 갈까. 그것도 아니면, 동네 카페를 찾아볼까. 삼십 분 정도를 고민했다. 그리고 4단지에 있는 카페 ‘숲’에 방문하기로 했다.
이곳에 가기로 한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안 가본 곳을 갈 것. 음악도 듣던 것만 듣고, 카페도 가던 곳만 간다. 오늘같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에 새로운 카페를 찾아보기로 했다. 둘째, 집 근처일 것. 이미 세 시에 가까워진 시간. 서울이나 파주에 가면 오후 네 시쯤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햇빛 즐기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셋째, 동네에 좋은 곳을 찾고 싶은 마음. 이곳에서 뿌리를 내릴 거라면 단골 집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결정하자마자 옷을 갈아입었다. 해가 좋으니 오랜만에 얇은 옷을 꺼냈다. 발걸음이 옷처럼 가벼웠다.
두 블록을 걸으니 4단지가 보였다. 상가를 오른쪽에 끼고 뱅-돌면 ‘숲’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고양이 두 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식물에 물을 주던 사장님이 입구가 이쪽이라며 안내해 주셨다. 사장님은 붉은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은퇴하고 인생 2막으로 카페를 창업하신 분 같았다.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나의 질문에 친절하게 응대해 주셨다. 오후 세 시라는 애매한 시간에도 카페의 좌석이 많이 차 있었다. 단골로 보이는 두 여성분, 셔츠에 넥타이를 꽉 맨 직장인 남성 두 명, 커리어 우먼과 나. 나머지 자리는 나무와 꽃, 다육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의 수제 메뉴라는 따뜻한 애플 시나몬 티와 곁들일 오트밀 과자를 주문했다. 나는 카페의 가장 안쪽 자리이자 식물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사장님이 음료와 쿠키를 가져다주셨다.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이 근처 살아서 한 번 와봤어요. 2단지 살거든요~”
“여기까지 오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아, 그래! 이게 바로 동네 카페의 맛이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힙하지는 않지만, 사장님의 애정이 듬뿍 묻어있는 공간. 매일 엄마 손을 잡고 갔던 동네 미용실 같았다. 그 미용실은 동네 사랑방이어서 언제 가든 누가 있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아줌마들이 떠드는 소리를 배경 삼아 투니버스를 보곤 했다. 이런 분위기가 그리웠던 것 같다. 요즘 과거에 관한 기억을 들춰보고 있어서일까.
차가 조금 식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그 누구도 에어팟을 끼고 있지 않다. 직장인 남성 두 명 중 한 명은 서류에 열심히 풀칠하고 있다. 다른 한 명은 맹렬한 기세로 노트북에 타이밍을 하다가 우당탕탕 일어나 서류를 정리한다.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영업사원인 걸까. 옆에 병원이 있으니, 보험사 직원이나 제약회사 직원일 수도 있겠다.
단골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의 자리로 이인조가 합석했다. 보이스 피싱에서 친구 관계로 흘러가던 대화는, 새로 온 듀오의 참여로 손주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름은 잊어버린, 기억 속 그 미용실에서도 그랬다. 엄마와 친구들이 수다를 떨고 있으면, 원장님이 미용실을 분주히 오가며 대화에 참여하곤 했다. 손님의 머리에 롯드를 말고, 다른 손님의 머리에 중화제를 뿌리고, 파마를 마친 손님 드라이를 하면서 말이다. 텔레비전을 보느라 엄마들의 대화에 집중하지는 못했지만, 엄마들은 해가 중천에서 땅으로 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문득, 그때 엄마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가 궁금했다. 엄마도 나처럼 친구들과 실없는 이야기를 나눴을까.
.. 이쯤 하면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됐을 것이다. 애플 시나몬 티가 담긴 유리컵을 보고 웃음이 났다. *우리 집에서도 쓰던 건데.* 손잡이가 있는 투명한 유리 머그컵을 들고 차를 한 입 마셨다. *좋다.*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 준 것 같은 맛이다. 사과 여덟 조각과 시나몬 스틱을 넣고 물을 부어, 파는 것보다 색이 맑은 애플 시나몬 티를 마셨다. 파는 것과 선긋기 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내 기분은 마치 미용실 아줌마가 준 밀키스를 마신 느낌이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은은한 시나몬 향과 꿀의 맛이 미세먼지로 지친 목을 도닥여주는 기분이다.
오후 세시 반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떴다. 그 빈자리를 다른 단골이 채웠다. 사랑방을 찾는 데 성공했다.
조만간 남편을 데려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