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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거였잖아

by 나탈리

내가 사라를 만난 건 직장에서였다.

사무적인 표정의 인사과 직원이 사라의 옆자리로 안내했다. ‘독일계인가.’ 사라는 앉아 있음에도 남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컸다. 귀밑까지 오는 구불구불한 브루넷, 창백한 피부. 그동안 비어 있던 옆자리를 채울 이에 대한 불안감과 호기심이 섞인 벽안. ‘사라는, 애가 좀… 예민해.’ 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라는 옅은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위스콘신 억양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반가워, 난 사라야. 모르는 거 있으면 나에게 물어봐.” 허풍이 아니라, 나는 사라에게 업무를 배웠다. 비즈니스 관계였던 우리는 음악을 계기로 가까워졌다.


그날 오피스 DJ는 나였고, 당시 빠져있던 인디 팝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있었다.

“너도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좋아해?” 캔틴에서 커피를 타오던 사라가 평소보다 두 톤 높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렇게 나와 사라는 점심 메이트가 되었다.


사라는 회사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 예민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라를 달래주었다. 그런 면을 빼면, 사라는 좋은 친구이자 동료였으니까. 둘은 퇴근 후 종종 저녁을 먹거나 주말에 만나기도 했으며, 함께 여행을 가는 사이로 발전했다. 사라가 가까워지는 만큼, 팀장과 멀어졌다. 팀장의 경고를 무시한 탓이었다. 되돌아보면, 많이 부족하기도 했다.


다음 해에 퇴사를 했다. 사라는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도쿄로 떠났다. 나는 사라를 만나러 생애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았다. 기억에 남는 건, 일본인들이었다. “와타시 can’t speak Japanese.” 그들은 꿋꿋하게 일본어로 내게 말했다. 대답은 백인인 사라가 했다. 그것이 조금 웃겼다.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고 하루에 열 시간을 일했다. 주말도 반납하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사라와 연락했다. 예민한 성정을 빼면 잘 맞았기 때문이다. 사라는 도쿄에서의 삶에 대체로 만족했으나, 그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끊임없이 업데이트되었다.


내가 일의 힘듦에 관해 말하면, 사라는 아시아에 사는 백인의 삶에 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점점 사라가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쟤도 힘들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사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편지를 썼다. 사라, 나 사실 힘들었어. 우리는 점점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어지게 된 것 같아. 그런데 그건 내 잘못만은 아니잖아? 쓰던 글을 삭제했다.


안타까운 마음 따윈 하나도. 아니, 조금은 있었다. 그때 참았다면 달라졌을까, 하고 종종 생각했다. 자신이 사라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도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거였잖아. 새해가 밝고, 용기를 내 사라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답장을 했다.


[ 나 다시 한국에 왔어. 우리 집에 놀러 올래? ]

사라는 새로운 보금자리에 나를 초대했으나, 약속 당일 편두통이 있다며 약속을 취소했다. 그날 아침까지도 울렁이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다음에 약속을 잡자고 말했으나, 그날 이후로 연락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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