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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Feb 22. 2020

어떤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막내 카피라이터가 잘 쓰려고 기록한 것들

일이 그렇듯 죽음도 불현듯 찾아온다. 야자를 마치고 들어온 집엔 적막이 감돌았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외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엉망으로 엉켜있는 빨래처럼 울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간장게장도 먹을 수 있게 됐고, 사진작가는 못됐지만, 사진작가와 약혼한 사이가 됐다. 납골당 가는 길엔 음식점과 H&B 스토어가 들어섰다. 세상은 차창 밖 풍경처럼 쉴 틈 없이 변한다. 모두 다 속도를 갖고 사라진다.


3층. 외우지 않아도 알아서 할아버지 앞에 선다. 여느 때처럼 “왔냐” 하신다. 가만히 앉아 할아버지 얼굴을 본다. 기억은 연어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왔냐”며 반겨주시던 할아버지. 식사 땐 늘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방송을 안주 삼아 반주하시던 할아버지. 내게 종종 어색하게 무언갈 묻곤 했던 할아버지. 그리고 기억은 니콘 카메라를 들고 외할머니가 짜준, 울 100%라 피부가 따가웠지만, 너무나 예뻤던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나를 찍어주시던 할아버지 모습으로 끝난다. 다리가 찡해 잠깐 일어섰다 다시 할아버지와 눈높이를 맞춘다.


그 앞에 다시 앉으면, 할아버지가 다시 “요즘도 엄마가 사진 못 찍게 하더냐?”하고 물으시는 것 같다. 나는 네, 할아버지. 대신 사진작가랑 약혼했어요. 라고 대답한다. 그럼 할아버지는 실없다는 듯 웃으시며 어깨에 메고 계신 오래된 니콘 카메라를 벗어 내게 넘겨주실 것이다. 가벼워지 않는다. 매번, 12년 전이 된다. 피부도, 손발톱도, 과거의 무게를 탈피하는데 어떤 슬픔은 태어난 그 상태로 살아있다. 할아버지의 오른쪽, 우리 집에서 찍은 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동생의 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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