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컬리 레시피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친밀한 행위다. 설거지가 끝난 뒤엔 남편과 요새 즐겨보는 넷플릭스의 <더 먹고 가>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시청했다. <더 먹고 가>는 산꼭대기에 살며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하고, 요리와 관련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우리가 다른 예능 프로그램보다 <더 먹고 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예능이 '순한 맛'이라서다. 부부 생활을 적나라하게 전시하는 것도 아니고, 웃기기 위해서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것도 아닌. 자연에서 나는 재료로 자연스럽게 밥을 하고, 그 음식을 먹다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속내를 말하는 예능. 그래서인지 다른 예능보다도 연예인이 눈물을 보이거나 하는 모습이 진실되게 다가온다.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특히, 배우 한지민 씨가 나왔던 편에서는 내가 힘들 때 자주 듣던 Bill Withers의 Lean on Me가 나와 더 따뜻한 에피소드였다.
<더 먹고 가>를 보면 늘 내가 요리하고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이유가 떠오른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특별히 남편의 추억과 나의 가치관이 담긴 요리를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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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5일. 새로운 가족과 맞는 새로운 크리스마스다. 사실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오늘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마주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그의 추억이 담긴 요리를 함께 먹었는데, 이런 게 크리스마스의 의미인가 싶다. 오늘의 만찬은 남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요리로 준비했다. (물론 준비는 남편이 했다) 매쉬 포테이토와 그레이비소스. 그리고 스테이크와 파스타, 와인으로 한상차림 했다.
감자 5개
오이스터 소스
코브람 호지블랑카 올리브 오일
칸나멜라 블루 페르시아 소금 그라인더
코타니 검정 후추
라 파브리카 스파게티 디 그라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실버펀 팜 소고기 안심
백년백계 닭 안심
마늘 많이
양송이버섯 3개
완숙 토마토 1개
파슬리 가루
매쉬 포테이토 만드는 법:
차가운 물에 썰어 놓은 감자를 5~10분 정도 담가 놓는다. 그다음 냄비에 감자를 넣고 포슬해질 때까지 끓인 뒤, 물을 버리고 소금 많이, 후추 조금, 버터 70g 정도를 넣고 으깨준다. 감자가 많이 으깨졌으면 우유를 넣고 또 으깬다. 남편은 홀리데이 때마다 부드러운 매쉬 포테이토를 먹어서, 최대한 감자 알갱이가 없게 꾹꾹 으깼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거나,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을 생각하며 으깨면 이 과정이 훨씬 수월해진다.
그레이비소스 만드는 법:
올리브 오일(버터로 해도 된다)을 많~이 넣고 밀가루 3스푼을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저어준다. 그다음, 버터를 20g 정도 넣고 저어 루를 만들어 준다.
그 사이, 치킨 스톡 1개에 1.5 컵(약 350mL)의 물을 넣고 끓여준다. 치킨 스톡이 끓으면 불을 끄고 루를 만든 냄비에다 치킨 스톡을 부어준 뒤, 인덕션 세기를 4-5 정도로 맞추고 계속 젓는다. 한눈팔면 안 된다. 그레이비소스를 아기나 반려견처럼 생각하고 계속 관심을 가져주어야 타지 않는다. 여기에 소금과 후추, 오이스터 소스(원래는 월체스터 소스를 넣어야 하지만, 있는 것을 썼다)를 2스푼 정도 넣고 계~~~속 저어준다. 수분이 날아가고 어느 정도 점성이 생기면 그레이비소스 만들기 끝!
오일 토마토 파스타 만드는 법:
마늘과 토마토, 양송이버섯을 잘게 잘라준다. 미리 예열한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마늘을 먼저 볶아 향을 낸다. 약 4분 정도가 지나고 매운 향이 사라지면, 버섯을 넣는다. 버섯이 투명해지면 토마토를 넣고 볶아준다.
절대로! 시간이 없다고 채소를 한 번에 와다다다 넣어서 볶아서는 안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취미나 직업 등을 물어보며 친근감을 쌓는 것처럼 재료도 빌드업의 과정이 필요하다. 처음 만나자마자 우리 이제 절친인가요?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재료 각자의 고유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채소를 익히는 와중에 면수를 만든다. 2인분 기준 물을 700mL 정도 넣고 소금을 많~~이 넣어준다. 물이 팔팔 끓으면 2인분 양의 파스타 면을 잡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녹여준다. 면이 완전히 잠기면 센 불로 7분 정도 끓여준다. 면이 잘 익었는지 확인하려면 중간중간 면을 들어 끝부분을 똑 떼서 먹는다. 처음엔 부드럽다가 나중에 심이 느껴지면 불을 끄고, 재료를 볶은 팬에 면을 옮긴다. 면수도 조금 넣어준다.
인덕션 세기를 7-8 정도로 높이고 면과 재료를 섞어주고 후추를 조금 갈아 넣는다. 여기에 풍미를 주기 위해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50g 정도(대충 동네 뒷산처럼 쌓일 정도로) 뿌려준 뒤, 빠르게 섞고 불을 끈 뒤 플레이팅 한다.
스테이크 만드는 법:
인덕션을 최고 온도로 높이고 오래 예열한다. 종이 호일을 2겹으로 겹치고 소고기 안심과 닭 안심 3점을 올린다. 소금과 후추, 올리브 오일, 그리고 파슬리 가루를 넉넉하게 뿌려준다. 고기 같은 메인 음식을 낼 땐 최대한 군침이 돌도록 만들어야 한다. 마치 크리에이티브팀이 CD 님들과 클라이언트의 구미가 당기는 아이디어 덱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이 아이디어는 어떤 인사이트에서 왔고, 이 캠페인을 효과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A, B, C와 같은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요리도 이걸 먹으면 너의 기분이 좋아질 거야! 혹은 네가 낸 비용보다 더 큰 만족을 줄 거야!라고 디쉬에서 말해줘야 하기에 보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팬이 뜨거워지면 올리브 오일을 살~짝 두르고 고기와 통마늘 3점을 올려준다. 한쪽 면을 시어링 한 뒤, 뒤집어서 다른 쪽면을 시어링 한다. 한쪽 면당 5분 정도의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간중간 밑면을 체크해본다) 시어링이 끝나면 종이 호일에 다시 스테이크를 담고 180도의 오븐에서 2분 정도 구워준다. (육즙 빠져나가는 거 방지)
늘 느끼는 거지만, 요리도 '한 끗'이 중요하다. 불을 조금 일찍 꺼서 덜 익히거나, 불을 조금 늦게 꺼서 오버쿡 되면 내가 목적했던 맛을 낼 수 없으니 말이다. 그 선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그래서 지치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바가 있는데, 거기까지 도달하기에 목표는 너무 멀리 있으니까. 인생을 넷플릭스처럼 15초씩 빨리 감기 해서 목표에 도달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요리가 그렇듯 '빨리'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이 스테이크처럼 말이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만든 우리의 만찬을 공개한다! 따라란~
오늘의 주인공 매쉬 포테이토&그레이비소스가 센터에 위치했다. 와인은 나와 남편의 최애 와인 런치 카페 루바브에서 구매. 포토타임을 가진 뒤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엄마가 준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매쉬 포테이토를 떴다. 뭔가 캐러멜 아이스크림 같은 비주얼~
클로즈업! 매쉬 포테이토의 식감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그레이비소스의 짭조름하고 깊은 맛이 만나 계속 먹고 싶은 맛이다.
스테이키들 클로즈업. 남편 말대로 파슬리 가루를 많이 뿌렸더니 비주얼도 좋고 맛도 더 좋아졌다.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결과물이 달라진다.
나는 카피라이터고 취미로 글을 쓴다. 그래서인지 요리도 글처럼 자신을 그대로 내보이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자라온 환경과 그의 생각이 한 접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 오늘 먹은 그레이비소스와 매쉬 포테이토는 남편의 유년 시절을 그대로 담아낸 것 같았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미국에 살았는데, 홀리데이 시즌 때마다 매쉬 포테이토&그레이비소스를 먹었다고 한다. 스테이크와 터키가 오히려 사이드처럼 느껴졌다고. 혼자 살 땐 만들 엄두를 내지 않다가 우리가 부부가 되고 남편이 인생 처음으로 그레이비소스 만들기에 도전했다.
처음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그동안 먹었던 그 어느 그레이비소스보다 다채롭고 진한 풍미를 가진 그레이비였다. 그가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해왔기에 풍미가 깊고 진한 음식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유난히도 명절 분위기가 없어 맹숭맹숭 지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저녁 먹기 전 본 <더 먹고 가>, 그리고 우리 부부가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만찬을 먹으니 그 어느 때보다 더 풍성하고 행복한 연휴를 보냈다. 남은 연휴 동안 남편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먹으면서, 음식에 대한 새로운 추억을 쌓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