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글 Feb 05. 2021

아이리시 맨

그들이 무대에서 퇴장하는 법

영화 내용에 스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친구 중에 갱스터 영화를 상당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마피아가 나오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런 그에게 아이리시맨을 추천받았다. 평상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품이기도 해서 금요일 저녁시간을 활용해 아이리시맨을 보았다. 여담이지만 마트에서 사 온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영화를 보는 것은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해온 내 일상의 소소한 낙이다.     


넷플릭스에 접속해서 영화를 재생하려 할 때 항상 내 도전을 가로막던 존재가 등장했다. 그것은 영화의 러닝 타임이 209분인 점이다. 3시간 하고도 29분 그래도 일단 보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시청하기로 했다. 한 번에 볼 생각은 하지 말고 시작하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트럭 기사였던 프랭크 시런이라는 남자가 마피아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었던 일들을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러닝타임이 긴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치 어렸을 때 두꺼운 책을 읽기 싫어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재밌었을 때의 경험이랑 비슷했다. 오히려 주말에 할 일이 생겨서 좋았다.     


내용은 격정적이었지만, 표현방식은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들의 화려했던 시절도,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제거할 때도, 그들이 세상에서 사라져 갈 때도 담담했다. 그렇다고 영화 자체가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갱스터 영화처럼 권력의 달콤함보다는 그들이 잃은 것에 집중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악인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에서는 씁쓸하게 느껴졌다.     


영화에 나오는 조연들 중 대부분이 그들이 어떻게 죽는지에 대해 등장과 동시에 자막이 나온다. 친절하게 마지막 모습을 알려주지만 어쨌든 사람이 죽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죽음이 영화에 나오는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대조가 되었다. 영화에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화려하고, 강하고 두려울 게 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설명으로 알 수 있는 그들의 최후는 대부분 객사였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 주연들의 마지막 모습들도 나온다. 영화를 보던 중에는 총을 맞아 죽는 조연들이 불쌍하고, 총을 맞지 않고 오래 산 자들이 승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법과 시기의 차이일 뿐 승자는 없었다. 오히려 앞에 말한 그들은 무대 위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그들을 죽이려는 자들의 관심이기는 하지만 죽을 때까지 관심을 받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관심에서 멀어지며 역사 밖으로 물러났다. 어쩌면 모두에게 잊히는 것이 가장 큰 벌이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무대 밖으로 퇴장할 때 커튼콜도, 관중들의 환호성도 들리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외면받고 형제라 칭하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몇몇 형제는 서로를 죽이기도 했다) 결국, 가장 애타게 찾아주는 사람은 수사관들이었다. 퇴장하는 모습은 희망차 미래를 위한 바통을 넘겨주는 것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도, 이룬 일들에 뿌듯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시간과 세월의 흐름에서 무대 밖으로 밀려났다.      


프랭크 시런의 인생을 관찰자로서 따라간 기분이 드는 영화였다. 인생에 흐름상 마지막이 찾아오는 것은 그와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나의 퇴장 신은 그와 달랐으면 한다.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와 사랑을 받으면서 퇴장하고 싶다. 내 역할을 잘 해냈다는 만족감과 함께 그들의 응원을 뒤로하고 내려가고 싶다. 그의 과거를 통해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다.

작가의 이전글 유리는 사실 액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