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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Feb 07. 2021

책과 나의 연대기

내 인생에서 독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왔다. 초등학생 때 독서는 보상을 받기 위한 과정이었다. 정해진 독서량을 채우면 원하는 장난감을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독서는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였지만, 그렇다고 재미를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읽는 것에 가까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책은 생활기록부에 올리기 위해서 읽는 존재였다. 필요한 책들을, 최대한 간략하게 읽으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내 삶 속에서 독서는 과제의 성격이 강했다. 대학에 가기 위해 필요한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소설은 만화나 영화나 마찬가지로 시간을 죽이는 용도 말고는 없는 것 같았다. 인터넷에 정보와 자료가 넘치는데 굳이 책을 통해서 지식을 얻어야 하나라는 회의감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고 몇 년간은 시험공부가 아니라면 책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책을 다시 마주하게 된 계기는 영화였다. 재밌게 본 한국 영화의 원작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욤 뮈소를 알게 되었고, 지금 이 순간이라는 책을 만났다. 책은 영화와 만화와는 다른 세계로 나를 초대했다. 글들을 따라가며 내 머릿속에는 새로운 세계가 탄생했다. 그 뒤로는 집에 있는 책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책은 도끼다를 통해서는 인문학의 힘을 느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서는 오늘을 사는 방법을 배웠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덕분에 나는 미술작품과 제대로 마주하는 법을 찾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내 마음을 한층 따뜻하게 만들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책들이 내게 울림을 줬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독서의 이유를 찾게 되었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에 대한 반론들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으로는 느꼈지만, 이성적으로도 나를 설득하고자 했다. 과거의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독서의 이유에 대해서 조리 있게 말하고 싶었다.


소설을 통해서는 다양한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 재미는 영화와 만화 하고는 결이 달랐다. 책을 통해 내 머릿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세계는 또 다른 이야기로 나를 인도했다. 결말 뒷부분을 생각하기도 했고, 같은 장면이지만 여러 해석을 곁들여 상상하기도 했다. 때로는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기도 했고 그의 표현 방식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기도 했다. 덕분에 내 삶은 좀 더 풍부해졌다. 


 세상의 지식이 담겨 있는 책들은 노련한 가이드와 함께 정보의 숲을 나아간다는 느낌을 줬다. 오랜 시간 그 분야에 대해서 연구한 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들의 시선에서 지식을 볼 수 있었다. 어느 형태로든 책은 내게 자극을 주었다.


독서를 통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의 내용이 삶 속에 스며들었다. 미술 관련 서적을 읽고 미술에 흥미가 생겨 작품들을 보며 힘을 얻기도 하고, 인문학의 중요성을 느껴 고전들을 도전하기 시작했다. 고전들 속에서 삶의 방향성을 찾기도 했다. 이렇듯 내가 읽은 책들은 여러 형태로 내 삶에 남았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 내 삶에 차이를 만들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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