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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Mar 15. 2021

시간이 흐르면 내 가치도 올라갈까?

모든 물건이 시간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어렸을 적 포도주가 티부이에 나온 걸 본 적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포도로 나도 저런 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통 안에 포도와 설탕 그리고 물을 넣어서 냉장고 속에 보관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통 안을 확인했다. 그 안에 든 것은 내 기대와는 다른 맛과 냄새를 가진 존재였다. 시간을 들였지만 그전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    

 

오랜 시간 숙성한 술, 오래전에 나왔던 어느 기업의 게임팩들은 시간이 흘러 가치가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예전에 만들었던 포도주스가 그러했고, 사뒀다가 잊어버렸던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치즈가 그랬다.      


문득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가치를 높이며 살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들었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때 내가 과연 예전의 나보다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10년 치의 가능성을 잃은 지금의 내가 더 가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앞으로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의 10년은 이미 지나가버려서 어쩔 수 없다지만. 다음의 10년은 과연 어떻게 보내야 할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정할 수 있다. 단순히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점이 이전의 나와 다른 점이다.      


지금 내가 보낸 시간들에 비해 이룬 것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충분히 이룬 사람도 더 잘했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린 시절 내가 숙성한 포도에게 느꼈던 감정은 실망이었다. 그때의 내게 그 액체는 냉장고에서 시간을 보내기 전 포도보다 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그때의 액체는, 인생에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게 해 준 존재이다. 그 주스 덕분에 지금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 생각을 가지게 해 줬다는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지금이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미래의 내가 지금을 떠올리며 '그래, 그때의 내가 있었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지'하며 웃을 수 있도록, 나는 오늘부터 달라질 것이다. 오늘이 시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이기에, 오늘의 가치는 그날의 내가 정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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