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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Mar 22. 2021

지금만 할 수 있는 일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준비하다 나라 간 이동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평상시에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물을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동하면서 볼 영상을 다운로드하였다. 책도 여러 권 챙겨가고 싶었지만, 배낭 하나만 가지고 가는 여행이기 때문에 챙길 수 업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유럽에 도착하고 난 뒤로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다. 서구권 문화의 국가로 여행을 간 것도, 이렇게나 다른 환경을 만난 것도 처음이기에 모든 게 새로웠고 즐거웠다. 즐거움 반, 설렘 반으로 지내는 동안 두 번째 나라로 이동해야 하는 날이 성큼 다가왔다.     


기차에 올라타서 내가 계획한 데로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에 있는 영상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볼 수 없었다. 내 주변의 모든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창밖의 본 적 없던 풍경, 나를 둘러싼 새로운 환경, 한국에서 함께 온 내 친구 이 모든 것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 때는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고, 지금의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건 지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동하는 동안 다운로드하여 온 것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여행이 계속됨에 따라 핸드폰의 용량이 부족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하나 둘 지워졌다. 애써 준비한 것들을 보지 못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그 자리를 내가 새로 만든 추억들이 채워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갤러리가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며 이런 게 여행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경험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다분 여행에서뿐만 아니라 지금의 내 삶에서도 지금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로 넘기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때 지금이 눈부신 시절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날부터 내 삶에 조금 더 충실해지기로 노력했다. 내 충실 해진다의 기준은 내가 지금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는가였다.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 내 나이가 아니라면 도전할 수 없는 일들 그런 것들로 내 삶을 채워가고 싶었다. 여행이 끝나고 난 뒤의 갤러리가 여행의 시작 때와 다르듯, 내 삶의 끝에서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충실한 모습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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