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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Mar 24. 2021

괜찮다. 나는 파워레인저가 아니니까

어렸을 때 TV에서 나오는 변신 용사들을 동경했었다. 그들은 지구에 쳐들어온 악당들을 쫓아내고, 온갖 역경을 극복해서 결국에는 지구를 지켰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용기 있는 사람들이 되고 싶었다. 그들을 응원했고, 응원받았다.     


어리지만 열심히 노력했다. 착한 일을 하려 노력하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들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고, 어른이 되었다.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자연스럽게 파워레인저 장난감은 내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내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그들이 다시 내 인생에 들어오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새로 배정된 일을 해야 하는데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주말이 되어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다는 생각에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의미 없이 일을 붙잡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있었다.     

 

그러던 중 알고리즘에 어렸을 때 재밌게 본 만화영화가 떴다. 저런 영웅들이 진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지 하며 즐거운 추억여행을 떠났다. 자연스레 영상 속의 존재들에게 용기와 힘을 얻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의 어린이는 이제 없다. 같은 영상을 보고 용기가 아닌 그리움이 생기는 걸 보면,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화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만화들의 내용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게 한동안 정신이 팔려서 이런저런 영웅들이 나오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움에 시작된 추억 여행이었지만 한 가지 깨달은 점은 있었다. 그것은 내가 파워 레인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다들 지구의 위기,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이 지면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큰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내가 실수하고 실패한다 해서 지구 종말이 온다던가 인류가 다른 행성에 지배를 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저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배워서 다시 시작하면 될 뿐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부딪혀볼 용기를 얻었다. 나한테 지금 필요한 것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보이지 않는 땅에 한걸음 내딛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었다. 내게 다시금 용기를 준 존재는 그 옛날에 내가 응원했던 존재들이었다.     


예전에는 그들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노력했지만, 지금은 내가 그들이 아님에 응원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 가지 같은 점은, 여전히 그들에게서 용기를 얻는다는 점이다. 지금도 나는 어려울 때면 TV에서 봤던 벡터맨이나 가면라이더 같은 변신 영웅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스스로 되뇐다. 괜찮아 나는 파워 레인저가 아니니까, 실수해도 괜찮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내게 힘이 되어주는 변신 용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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