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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Mar 29. 2021

오징어 전을 먹다가

오징어 전을 먹을 때 맛있는 부분은 정해져 있다. 가장자리의 바삭한 부분이 가장 맛있고, 그다음으로는 전에 박혀있는 오징어가 맛있다. 홍어무침에서는 역시 메인 재료인 홍어가 가장 맛있다. 그래서 맛있는 부분들만 골라서 먹었다. 그게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골라 먹는 버릇이 없어진 계기는 간단했다. 결국 맛있는 부분들만 먹고 남은 것들을 언젠가는 먹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맛있는 부분을 먼저 먹고 맛없는 부분을 먹는 건 내 성향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음식을 먹는 방법을 바꾸었다. 어차피 먹어야 할 것이라면 그냥 함께 먹자고 마음먹었다.      


지진 전을 한 움큼 베어 먹고, 버무려진 무침을 여러 재료를 함께 입에 크게 넣었다. 가장 놀란 점은 음식의 맛이 내가 전에 먹던 맛과는 상당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여러 재료가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그 조화로움과 향긋함이 내가 맛있는 것이라 믿었던 '부분'이 아니라,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 주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자 음식을 먹을 때 골라 먹는 일은 사라졌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맛있다고 믿는 것들을 먹고,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내 편견에 빠져서 제대로 음식을 마주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내 입맛대로 고른 건 음식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입맛에 따라 거르고, 골랐다. 지금까지는 그게 맛있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그저 맞다고 생각하는 방법만을 고수했던 것이다. 이제는 제대로 된 관계의 맛을 느끼고 싶다. 내가 느낀 조화로움과 향긋함을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느끼고 싶다.     


언제나 벽을 쌓고, 선을 정해 놓고 사람을 만났을 때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마주하기 위해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역시나 나와는 맞지 않는 길이었다면, 그때 가서 돌아가면 될 일이다. 그런 과정이 힘들 수도 있지만, 그것이 어떤지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더 아쉽다는 게 내 결론이다.     


내가 느꼈던 그 조화로움, 향긋함을 기대하며 맛있게 살기 위해 한 발짝 내디뎌 보려 한다. 오징어 전이 내 등을 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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