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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Jun 21. 2021

익숙한 것을 낯설게, 낯선 것을 익숙하게

첫 번째 미술관

 예술을 향유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런 결정에 내 지적 허영심도 지분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유야 어쨌든 내가 즐겁고 내 삶이 풍요로워지면 그걸로 된 것 아닌가?

 미술관에 가기로 결정하고 어디로 갈지 정할 때 가장 중요시한 것은 위치다. 너무 멀지 않고 주변에 추가적으로 갈 곳들도 있는, 만일 미술관이 나와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아도 내가 대안으로 할 일이 있는 곳, 왔다 갔다 하는데 부담이 없는 거리에 있는 곳으로 골랐다.


 그렇게 나는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으로 갔다. 운동을 배울지 말지 결정하는 체험권처럼, 가벼운 마음이면서도 너라는 취미가 나와 맞는지를 꼼꼼히 살피겠다는 자세로 일정을 시작했다. 날씨는 어제 내린 비 덕분인지 생각보다 덥지는 않았다. 지금 수원시립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회의 제목은 ‘_____이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전시관에 있는 설명에는 코로나19로 익숙한 일상이 낯설게, 낯선 것이 익숙하게 변화된 지금의 모습처럼 새롭게 변모한 사물을 통하여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발견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돌이켜 보니 이 전시를 가장 관통하는 말인 듯하다.


 작품들은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든 것들도 있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 것들도 있었다. 평상시에 글자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 의도치 않게 작품의 설명이나 내용을 꼼꼼하게 보았다. 덕분에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일행과 속도가 맞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약간 눈치도 보였다. 하지만 덕분에 다음에는 혼자서 미술관을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내가 평상시 생각하는 미술관에 있어야 하는 물건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내게 미술관은 그림을 걸어두는 곳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여기 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미 만들어진 물건들을 활용해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일상적인 사물을 그냥 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추가로 들어갔다. 물건에 창조적인 행위를 더해 본래의 성질과는 거리가 먼 다른 사물로 새롭게 만들었다. 내가 그전에 가지고 있던 미술 작품이라고 여기던 것들과는 다르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잘은 모르지만 그런 기성품들을 활용하는 것을 레디메이드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의미 있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의미가 없는 생각을 할 때도 많다. 작품들을 보면서도 여러 생각을 했다.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작품에 의문을 품기도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내가 계속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연료를 공급해 주었다. 그런 생각들 중에는 내 삶 속에서 도움이 되는 생각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미술관에 나와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맘에 드는 카페에도 갔다. 좋은 기억들이 합쳐져서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 되었고, 다음 목적지를 정할 용기도 생겼다.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었다.

 전시회는 끝났지만 영향은 내 삶 속에도 남아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일상을 살다가 만나는 물건들에도 상상을 더해보았다. 평상시에 사용하던 마스크에도, 이어폰에도 내가 같은 주제로 만들면 어떻게 만들었을지 생각했다. 내가 처한 문제도 낯설게 해 보았다. 마치 남 일처럼 내일을 보았다.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기분은 아니었지만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다음 목적지로 출발할 의지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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