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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Jul 13. 2021

어린 왕자와핸콕

어렸을 때 영화관에서 핸콕을 봤다. 며칠 아니 몇 주 동안 핸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앉았다. 특히 맨몸으로 기차와 부딪혔는데 기차가 부서지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혹시 나도..? 내게도 그런 능력이 있지 않을까? 새끼발가락을 찌이거나 손톱을 조금만 짧게 깎아도 세상을 잃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주제에, 기차나 차와 부딪히는 것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이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내가 진심이면 뭐든 이뤄낼 수 있단 마음이었다. 차와 부딪혀도 차가 찌그러지고 아직 발현이 안되었을 뿐 위기에 처하면 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어린애라서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지금 내게, 그때의 모습은 부끄러움 반, 귀여움 그리고 엉뚱함 조금 그 정도의 느낌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비슷한 인물을 책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어린 왕자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비행기 조종사도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어린 왕자지만 그런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과거에 있는 어린 왕자를 추억했다. 


책을 읽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읽고 가지는 생각도 다양할 것이다. 내가 읽은 어린 왕자는 순수성을 가진 아이와의 만남이었다. 어린 왕자가 그런 속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그가 정말 별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아이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순수한 아이가 상상해서 이야기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내가 나를 재밌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이렇게 그의 정체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때의 내 인생은 다채롭고, 더 즐거웠다. 하지만 그 즐거움들은 역시 내 상상 속에, 내 호기심 속에 존재했던 것들이다. 그때보다 더 많이보고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겪은 지금의 내게 그런 재미는 없지만, 여전히 소중함 들은 내 주변에 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어떤 것이 더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알 수 있는 건 내가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가끔 그 시절의 순수성이 그립기는 하지만, 굳이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때의 순수함이 그리운 이유는, 정확히 말하자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시간이 흘러 미화된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에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아련함을 더한다.


내가 직접 순순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순수성을 가진 존재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그리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왕자를 보고, 핸콕에 빠져 상상력 넘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며 남긴 추억이, 그리움과 따뜻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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