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빌더를 업으로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와 보디빌딩에도 재능이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스스로 노력하면 몸은 커진다고 믿었기에, 타고난 재능은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의외였다. “사람의 몸의 형태는 이미 정해져 있어서, 몸을 최대한 채우고 나면 그 뒤에는 타고난 부분에서 차이가 생긴다”라는 타고난 부분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나는 반대로 보디빌딩 이외의 분야에서는 재능의 존재를 너무 쉽게 인정해 버렸다. 축구에도, 그림에도 글에서도 내가 잘하고자 하는 일들이 맘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내가 재능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곤 그만해버렸다. 어차피 재능 있는 사람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곳까지 노력을 했는가 하면 아니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하지도 않았고, 축구를 잘해지고 싶다고 연습을 진지하게 하지도 않았다. 그런 내 노력의, 열정의 부족을 항상 재능 탓을 해왔다. 나는 내 타고난 능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보지 않았다.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노력을 쏟아부어 일정 수준에 도달한 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과 같은 세계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부족함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말로 합리화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사람 몸의 형태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 한다. 보디빌더들이 몸의 한계가 중요해지는 때는, 자신의 몸에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몸을 만든 뒤다. 타고난 골격과 형태는 그때의 문제다. 내가 재능이 없다는 말을 쓸 수 있는 때도 그때가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진짜 벽을 마주했을 때 그 말을 쓸 자격이 있는 듯하다. 재능이란 단어의 올바른 쓰임을 이제야 확인한 기분이다. 지금까지 나는 자기 위안의 용도로 사용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