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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Oct 03. 2022

이어폰 낀 것처럼 생활하기

세상에 다양한 소리가 있다. 그중에는 듣기 좋은 소리도 있고, 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 그리고 나와는 관련 없지만 내 주변을 맴도는 것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들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졌다.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소리들도 늘어만 갔다. 그래서 다들 귀촌을 하고 도인들은 산속으로 들어갔나 보다. 그들은 사람들의 소리보다는 자연의 소리를 선택했다.     


산속에도 갈 수 없고, 농촌으로도 갈 수 없는 나는 오늘도 출근길에 이어폰을 낀다. 이어폰을 끼면 도심 속의 소란은 잠시 멀어지고, 내가 듣고 싶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덕분에 잠시 차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일생 속에서는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을 때, 끼고 있을 수 없는 때가 더 많다. 그때도 내 주변의 소음은 여전히 요동친다. 그래서 그럴 때는 이어폰을 끼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곳에 없지만 있는, 들리지 않지만 들을 수 있는 상상의 이어폰을 생각하기로 했다.      


듣기 거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험담이나, 언제나 불만만을 가지고 의도를 알 수 없는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나도 덩달아 지친다. 그래서 그럴 때는 이어폰을 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선입견이 생기는 것을 피하고, 나도 불만이 많아지는 것을 막는다. 그들의 말을 버텨낸다. 흐린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직접 말을 주고받는 대화나 소리가 나는 말은 아니지만 내 주변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이 있다. 실제로 들리지는 않지만, 맴도는 말들은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렇게 나를 흔드는 소리도 마치 안 들리는 것처럼 살기로 했다. 그런 것들과 마주할 때도 내 마음속의 이어폰을 생각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처럼 다른 세상의 일인 것처럼 대한다. 어차피 내가 신경 써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살다 보면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소리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그 소음에 대처할 나만의 방법을 정했다. 무작정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게 혼자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닐뿐더러 그런 사람의 방식은 나를 아집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것처럼 반만 들으려 한다. 그래도 가끔씩은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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