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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Jul 10. 2022

퇴근을 준비하는데 비가 옵니다.

오늘따라 눈에 밟히는 것이 많았습니다. 평상시에는 내일의 제게 부탁하겠지만, 어쩐 일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퇴근을 조금 늦게 했습니다. ‘그냥 갈까?’하는 고민 끝에 오늘은 남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퇴근을 미루고 다시 일을 잡았습니다.     


이제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가기 위한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들리는 소리가 제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게 만들었습니다. 건물 밖을 나오니 제 걱정은 확신이 되었습니다. 아, 비였습니다. 그동안 퇴근 시간, 출근 시간에 비를 잘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드디어 마주했습니다. 맞습니다. 오늘 비바람을 뚫고 퇴근한 것은 제 판단 실수 때문입니다. 제 잘못입니다.      


오늘따라 컨디션도 좋지 않았습니다. 평상시에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자주 고생합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녀석도 오늘 저를 찾아왔습니다. 매일 아침에 도라지 차를 먹었지만, 기어코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제 잘못입니다. 낌새가 느껴졌을 때 얼른 약을 먹고 쉬었어야 했습니다. 아니 그전에 제 컨디션을 더욱 잘 관리했어야 합니다.     


이렇게 퇴근길 동안 스스로를 탓해도, 비바람에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청이는 우산을 보면 부정적인 감정들이 들었습니다. 비바람에 젖어서 제 걸음을 방해하는 바지도 제가 짜증이 나게 만들었습니다.     


기분전환이 필요한 날, 오늘인 듯합니다. 달콤한 음식에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자 발걸음은 한결 더 가벼워졌습니다. 가게에 도착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많은 빵을 담았습니다. ‘이건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야’ 계산을 위해 카드를 꺼내며 합리화를 합니다. 오늘의 어려움들은 도넛을 먹는 이유가 되어줬습니다.     


도넛을 많이 샀습니다. 원래 그렇게까지 살 생각은 없었지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잔뜩 샀습니다. 커피를 사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달달한 빵을 많이 샀기 때문에 물만으로는 전부 먹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다시 머리가 아파집니다. 비바람이 점점 거세집니다. 커피보다는 집이 더 간절해졌습니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빵집을 나와서 횡단보도에서도 여전히 고민합니다. 카페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커피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시 고민이 시작됩니다. 불현듯 커피에 대한 기억이 스칩니다. 예전에 받았던 커피가 있습니다.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확실합니다. 어쩐지 머리도 덜 아픈 느낌입니다. 발걸음도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많이 덥습니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합니다. 냉장고를 뒤적여 커피를 찾습니다. 커피를 내립니다. 비도 내립니다. 비도 커피도 좋은 소리입니다. 비는 제가 도넛을 먹는 시간을 채워주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오늘은 저녁시간에 마신 커피 때문에 늦게까지 잠 못 이룰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문에 내일 오전이 평상시보다 조금 더 버거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커피를 마시며 도넛을 먹는 일, 이건 그때밖에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많은 칼로리와 당분을 섭취하게 된 경위입니다. 그리고 약간은 부른 배를 부여잡고 기분 좋게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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