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을 위한 고민
청출어람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學不可以已].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而靑於藍]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물보다도 더 차다[氷水爲之而寒於水].' 학문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푸른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면학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뜻인 '청출어람'이 나왔으며, '출람(出藍)'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원래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고 해야 '쪽빛보다 더 푸르다(靑於藍)'는 의미가 갖추어지지만 일반적으로 줄여서 청출어람이라고 쓴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출어람 [靑出於藍] (두산백과)
나는 여기서 제자의 입장보다 스승의 입장에 주목했다. 아무래도 내 직업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보니 그쪽에 눈이 갔다. ‘면학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는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마치 스승을 넘는 제자가 나오기 어렵다고 말하는 듯했다.
스승이 제자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리고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이,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기가 어렵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1. 지식 전달 주체가 스승이기 때문이다.
학습자가 스승을 통해 얻은 정보만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된다면 결국 그 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고사성어에서도 면학을 계속해야 한다며 학습자의 노력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지식의 전달자가 스승이라는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부분을 학생이 스스로 채워야 한다.
2. 비교적 짧은 시기의 수학 기간 때문이다.
스승 쪽이 연구 주제에 대해서 더욱 오랜 기간 고민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한 주제에 같은 사람이 고민할 때 오랜 기간 연구한 사람의 이해도가 더 높을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공부했는지가 성취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중요한 요인들 중에 하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3. 경험의 차이 때문이다.
수학 기간이 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쪽이 연장자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경험의 차이와도 이어진다. 문제와 마주했을 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은 무시 못 한다.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교육대상이 초등학생인 나는 그들과 나이 차이가 극단적으로 많이 난다. 그렇다 보니 같은 문제를 대할 때도 바라보는 시야나 고려하는 사항들이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초등학교 교사인 내가 청출어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 보았다. 당장에 나를 뛰어넘는 학생이 나오게 노력하는 것은 내 역할에 맞지 않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성장단계나 초등학교의 교육목표를 고려해서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그보다는 스승을 뛰어넘는 학생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선 학생들에게 열린 사고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지식 전달 주체가 나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사고의 틀에 얽매여서 지식을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한 가지 문제를 다룰 때도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도와야 한다.
또한, 내가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이 나를 넘지 못하더라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넘는다면 그거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가 애초에 좋지 못한 선생님이라면 내가 가르친 학생들 대부분의 수준은 그것보다 아래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더 깊어지고 넓어져야 한다. 그건 내 발전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면학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속에는 스승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점과 스승을 넘는 제자를 만들기 위해서 내가 노력해야 하는 점에 대한 힌트를 알려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노력하려 한다. 그리고 그게 학생과 내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