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한 친구가 약속을 깼다. 자주 약속을 깨는 친구였다. 통보에 가까운 약속 변경이었다. 이미 그의 일정에 맞춰 한번 바꿔줬었다. 그 친구가 원하는 날에는 나도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만나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원래 만나기로 했던 날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만난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다. 내게 약속을 바꿔 달라며 말했던 사정과는 거리가 먼 사진이었다.
약속을 자주 깨는 사람이 있다. 만난다 해도 제시간을 지키는 경우도 거의 없다. 쌓이고 쌓여 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쪼잔하게 왜 그러냐고 역으로 쏘아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도 이렇게 대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나와 처음 친해졌을 때, 아직 편해지기 전에는 이런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친구가 관계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과 나의 차이점은 뭘까?
다시 그 친구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자신의 sns에 그런 사진을 올리는 모습에서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반면 사진 속 그들은 어떨까? 그들은 그 사람에게는 나와의 약속을 깨고서라도 만나러 가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사실 차이는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차이는 약속을 깬 그가 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판단한 내 가치는 그 정도였다.
살면서 몇 가지 터닝 포인트들을 만난다고 들었다. 만나는 모습은 다르겠지만 공통점은 그전과는 다른 모습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날이 내가 인간관계에 대해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된 터닝 포인트였다. 예전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에서 지하철을 멈추기 위해 위태롭게 거미줄을 잡고 있던 피터 파커의 모습처럼, 내가 위태위태하게 잡고 있는 관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억지로 잡고 있던 인간관계들이 덧없게 느껴졌다.
사실 그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의 의미는 굳이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그들의 행동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냥 내가 외면했을 뿐이다. 내가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던 것들을 자세하게 애정을 담아 살펴보았다. 허탈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쥐고 있던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이미 끝났어야 했던 것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이야기를 꺼내서 씁쓸해질 이야기를 굳이 다시 꺼내는 이유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 정리할 마음이 생겼거니와 이제는 아무렇지 않을 것이란 착각 때문이었다. 감정과 기억을 되새김질하면서 마음 한쪽이 시린 걸 보니, 역시 나는 이런 일은 서툰가 보다. 그래도 내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저울질당하는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