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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Aug 27. 2020

7화. 화구(畵具)를 손에 든 아주머니

삶은 애잔하다.

수년 전 자그마한 피자 가게를 할 때 이야기다.


아침 8시,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자정을 넘겨 일하는 자영업자에게 이 시각은 일반 직장인에게 새벽 6시와 같은 느낌이다. 이 이른 시각에 인터폰이 울렸다. 깜짝 놀라 일어난 나는 혼미한 정신을 바로 잡고 인터폰을 받았다. 


"누구세요?"

"네~ 경비실입니다. 여기 어떤 분이 오셔서 사장님을 찾는데... 사전에 연락하셨냐고 하니 그렇지는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안된다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너무 간절하게 부탁하셔서... 어떻게 할까요?"

"어떤 분이 날 찾는다고요?"


일단 무슨 상황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날 찾는데... 경비실을 통해서 연락했다는 것은 내 구체적인 주소와 연락처를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날 잘 아는 사람은 아닐 텐데 누가 왜 날 찾아온 거지?'


주섬주섬 옷을 입고 공동현관에 내려가 보니 경비원 한분과 어떤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의 손에는 화구(畵具, 이젤, 붓 등 미술용품)가 들려 있었다. 그분은 나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아침에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어! 어제 면접 보셨던 아주머니시죠? 아니 어떻게 여길 찾아오셨어요?"




주방 알바 구인에 면접을 보러 온 단아한 외모의 60대 초반 여성, 사실 이런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기에는 적잖은 나이였다. 아니 그 시절만 해도 '패스트푸드'라는 업종의 특성상 대부분의 알바 지원자는 십 대나 이십 대였고 삼사십 대도 드문 편이었으니 육십 대는 대단히 희귀한 사례였다. 더욱이 그분의 차림세와 조신한 말투로 보아 이런 주방 노동으로 생계를 꾸렸던 분은 아닌 듯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동종업계의 경력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분이 당시 했던 일은 가게가 오픈하기 전에 출근하여 도우(주먹만 한 크기의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펴서 발효실에 넣어두는 대단히 국소적이고 단순한 작업이었고 근무 기간도 한 달 정도로 짧았다. 


"비슷한 일은 해보셨긴 하지만 여기는 빵만 만들지는 않고요 이 가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하죠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켜만 주시면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면접 때마다 등장하는 뻔한 대화를 나누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자녀교육 등 가정사도 조금 나누었다. 


그분에게는 삼십 대의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들은 이런저런 작은 사업을 벌였다 접었고 최근에는 외국에 나가 일했지만 그마저도 어려워져 귀국했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이 안쓰러워 용돈이라도 쥐어 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수입이 없어 생계도 어려운 상황, 뭐라도 해서 아들의 부담만이라도 덜어주고자 알바를 알아보고 있었다고 했다.


난 알바를 뽑을 때 나이, 성별, 장애여부를 따진 적은 없었다. 나의 고용 조건은 딱 두 가지뿐이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자영업자라면 누구나 요구하는 '근면'이었다. 그러나 이분의 나이는 솔직히 고민스러운 부분이었다. 난 그분에게 오늘 면접 볼 사람이 더 있으니 출근 여부는 내일 연락을 드리겠다는 말로 면접을 끝냈다. 


그런데 이분이 다음날 아침에 내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아주머니 여기는 왜 찾아오신 거예요?"

"사장님 제가 나이도 많고 그러다 보니 탐탁지 않은 부분이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제가 꼭 일자리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다시 한번 부탁드리려고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거... 따님이 미술을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비싸고 좋은 건 아니지만 받아주세요"


그분은 손에 들고 있던 '화구'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난 너무도 의아스러웠다. 도대체 이런 작은 가게의 알바 자리가 뭐라고 이른 아침에, 그것도 주소를 몰라서 경비실을 경유하는 곤란함을 마다하지 않고, 어제 대화중 아주 잠깐 흘러나온 '내 딸아이가 미술을 잘한다'라는 단편적인 정보를 기억해 내서 '화구'를 선물로 준비하는 수고와 '청탁'이라는 부담을 감수했을까....


문득 수년 전 피시방을 운영할 때의 기억이 떠 올랐다. 어느 날 피시방에 하얀 머리에 등이 굽고 다리도 편치 않아 보이는 어느 할머니가 찾아왔다. 그분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사장님 되시죠~"

"네, 어떻게 오셨나요?" 


난 당연히 그 할머니가 피시방에 있는 손주를 찾으러 온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나왔다.


"사장님 부탁하나 드리려고 왔습니다. 가게 앞에 내놓은 종이박스를 내가 가져갈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그러면서 그분은 내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쥐어 주었다. 

"이거 변변찮지만 돼지고기입니다."


그 검은 비닐봉지에는 신문지로 둘둘 말은 작은 돼지고기 한 덩이가 들어 있었다. 


"할머니, 저건 아무나 가져가라고 내놓은 폐지예요... 그냥 가져가시면 돼요... 이런 거 안 주셔도 돼요"

"아니에요~ 그래도 사장님 허락을 받아야지요... 그리고 앞으로 저도 폐지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랬다. 그때 알게 된 거지만 폐지 수거하는 노인분들은 서로 간 암묵적으로 지정한 가게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가게 앞의 폐지를 가져가려면 적어도 그 가게의 사장 허락이 있었다는 명분은 있어야 했다.


"할머니, 제 가게 앞의 폐지는 누구든지 가져가셔도 돼요, 정해 놓고 드리는 분 없어요... 할머니가 먼저 오셨으면 할머니가 가져가시면 돼요... 그리고 이 고기는 가져가셔서 손주하고 드세요.."




난 내 손에 쥐어진 화구를 그때 그 돼지고기처럼 다시 그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런 거 안 주셔도 돼요~ 이 알바가 뭐라고 이런 걸 가지고 오십니까... 그냥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그분은 당연히 성실했다. 당시 20대 초반의 여자 알바들 두 명과 함께 같이 근무해야 했기에 더 그러했을까? 자식 같은 나이의 어린 동료들이 휴식을 취할 때도 그분은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말려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부분은 같이 일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오히려 불편함으로 작용했다.


피자는 외국 음식이었던 만큼 메뉴는 물론 식자재 용어조차도 대부분 외국어였다. 일상생활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경한 명칭들... 그러나 보니 그분은 실수가 잦았다. 주문과 다른 메뉴를 만들거나 다른 식자재를 사용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같이 협업을 해야 하는 젊은 알바들은 간간히 내게 불만을 호소했다. 결국 눈치가 보였던 그분은 두어 달 만에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분이 그만두고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나는 항상 이용하던 도시락 가게에 직원 식사로 주문했던 도시락을 찾기 위해 들어갔다. 그때 가게 카운터 뒤쪽 주방에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바로 그 아주머니였다.


"어! 여사님 여기서 일하시는 거예요?"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네... 얼마 전부터 여기서 일하고 있어요..."


바쁜 주문 속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잠시 가게 주인의 신경이 다른 주문에 쏠린 사이 일은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힘들어요... 거기나 여기나 바쁜 건 매한가지이지만... 여기는 큰 솥을 다루고 닦아야 하니까... 손목과 팔목에 너무 무리가 와서요..."


난 그분의 어두운 얼굴을 뒤로하고 도시락을 받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찾은 그 도시락 가게에서 그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난 가게 사장에게 그 아주머니의 거취를 물어보았다.


"아 사장님 가게에서도 일했었구나... 이런 일을 해보 적이 없는지 그 양반 일을 잘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라고 했어요"


누군가에게는 그저 버려진 폐지, 누군가에게는 시답지 않은 알바, 그러나 어느 누군가에게는 '간절함'인 개똥밭 같은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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