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똥밭 Sep 08. 2020

9화. 가족을 위해 가족을 희생하다.

당신이 제공받은 음식과 서비스에 스며있는 슬픔...

PC 앞에 앉아 다음 포털 사이트를 들어가니 눈에 들어오는 뉴스 타이틀이 있었다. 


'꿈들이 삶을 죽인다...'


기사는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어느 외노자의 꿈과 현실에 대한 내용이었다. 문득 기사의 내용과는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내 오랜 상념 하나가 떠올랐다. 그동안 삶 속에서 시나브로 내 뇌리에 자리 잡고 있던 이 상념은 이 기사와 다른 듯 닮아 있었다.


'가족을 위해서...'


이 사회에서 '가장(家長)'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돈벌이를 하는 동안 습관처럼 했던 말. '가족을 위해서...'




요즘 귀에 자주 들리는 단어 '워라벨', 이게 뭔가 하고 그 뜻을 찾아보니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고 한다. 즉,  먹고살려고 하는 소득활동이 개인의 삶을 지나치게 침해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라고 하는데 조금 뜻밖의 사실은 이 개념이 영국에서 1970년대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50년 만에 이 단어를 들먹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거다. 


하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이며 경제규모가 전 세계에서 10위권에 든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우리도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경제발전' 보다는 '행복'이란 단어에 좀 더 가치의 비중을 두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현실은 이 놈의 사회가 여전히 '개인의 행복'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며칠 전, MBC 뉴스의 '판교 오징어배' 보도가 그러했다. 아~ '판교 오징어배'가 뭐냐고? 판교에는 유수의  IT기업들 사옥이 들어서 있다. 네이버 같은 대형 포털 서비스 기업과 유명 게임사들, 그곳에는 코딩, 그래픽 등을 주 업무로 하는 젊은 직원들이 근무한다. 그리고 이런 직업은 언젠가부터 신종 3D 직업이라 불렸다. 그 이유는 업무량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감이 오시는가? 툭하면 야근은 당근이고 밤샘 작업이 밥 먹듯 이루어지다 보니 판교에 위치한 빌딩 사무실의 불빛은 '오징어 잡이 배'의 불빛처럼 밤새 꺼질 줄 모른다 하여 '판교 오징어배'라는 별칭이 붙었다는 것이다. 흠... 이 정도면 무슨 슬픈 '도시 설화' 같지 않은가? ^^;;


내가 회사원이던 시절, 그때 직장인들에게 '야근, 연장근무, 주말 출근'은 회사원이 지켜야 할 최고의 '덕목'이긴 했다. 그 시절로부터 강산도 변한다는 십수 년이 지난 현재, 그 뉴스의 화면에는 늦은 밤 영혼은 이미 유체이탈 상태에서 각 기업의 사옥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이 조건반사적으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울한 모습이 그려졌다. 덧붙여 뉴스는 이 젊은 청춘들을 '헝거게임'과 같은 적자생존의 무한경쟁 상황에 몰아넣고 '근로기준'따위는 여전히 무시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실상을 전했다. 


그 뉴스를 보고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저 청춘들은 오늘 '행복'했을까? 혹시라도 '우울과 공허'라는 녹이 그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내 상념은 그들을 지나 한 곳에 이르렀다.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항상 근로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무시당했던 사람들…. 그들 또한 '판교 오징어배' 직원들처럼 '자의인 듯 한 타의' 또는 '선택지 없는 선택'에 의해 녹초가 되도록 살았을 뿐인데도 그 삶은 평가절하되고 그들의 '우울과 공허'는 별다른 위로받지 못한 채 바로 우리 주변에 언제나 있던 사람들, 그들은 바로 당신들에게 음식, 옷, 생필품들을 팔고 때로는 당신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이라는 서비스를 파는 자영업자들이다.


자영업자에게는 태생적으로 극단적(?) 환경이 하나 있다. 자영업자의 라이프 싸이클은 평균적 일반인들과는 완전히 어긋나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상상할 수 있겠지만 자영업자는 손님들의 라이프 싸이클에 영업시간을 맞춰야 한다. 즉 손님들이 퇴근하는 시간, 손님들의 휴무일에 장사를 집중해야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이니 자영업자는 학생, 근로자, 공무원 등의 평균적 일반인들과는 다른 시간대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당연히 자영업자는 자식들이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집이 아닌 가게에 있어야 했고 가족이 공휴일과 명절, 주말에 쉴 때 가게에 있어야 했다. 그러니 가족 간의 '정'은커녕 아주 간단한 대화 조차 못 나누는 사람이 대다수다. 


내 자영업 시절도 별 다를 바 없었다. 아직 사춘기였던 아이들은 당연히(?) 방치되었다. 물론 사업 시작 전 신중하게 고민하여 대책을 세워 놓았지만 현실의 장벽은 그 대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부모와의 대화는 언강생심... 내 아이들은 부모가 차려준 따뜻한 밥 한 끼조차 거의 먹을 수 없었고 심지어 하루 동안 서로 인사말조차 나누지 못한 날도 많았다. 그러니 가족 관계가 좋을 리 없었다. 


우리 가게에 알바로 일했던 여대생은 자신의 부모님도 자영업자라 소개 했다. 당시 부모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음에도 그녀만 따로 원룸에 살고 있던 사연이 궁금해 슬쩍 물어보니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뇌리에 각인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애잔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어린시절 슈퍼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아침 일찍 나가야 했고 엄마는 집안을 돌봐야 했기에 늦은 오후에는 들어왔지만 아빠는 새벽까지 근무했단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아직 저학년 초등학생일 뿐인 이 아이의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굶지 않으려면 끼니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고 엄마는 그녀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밥솥에 밥물을 맞추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고 했다.


"손등까지 물이 올라오면 밥물이 맞는 거야... "


내 이웃 가게의 치킨점 사장은 어린아이가 셋이나 됐지만 자영업 특성상 부부가 일하지 않으면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이라 아내까지 나와 일하며 아이들은 남(가족이 아닌 진짜 남)의 손에 맡겨야 했다. 예순이 넘은 그의 아버지는 비와 눈을 마다하지 않고 배달을 뛰어 주었다. 자식이 한 푼이라도 더 가져갈 수 있게... 빗길 눈길 사이로 배달을 떠나는 아버지를 가게 앞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 사장의 모습을 난 가끔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그의 아내가 가게 주방에 주저앉아 이 모든 애타는 현실에 눈물만 뚝뚝 흘렸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전했다.


몇 년 전 지인과 함께 어느 일식 주점을 방문했다. 지인은 그 일식 주점의 주인 부부와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터라,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홀서빙을 하던 사장 아내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성분의 얼굴이 너무도 어둡고 슬퍼 보여 나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분은 지금 집에 유치원 다니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다. 자신이 여기 나와 새벽까지 일하느라, 엄마의 손이 가장 많이 필요할 시기임에도 전혀 돌봐주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남편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그 남편은 '가족을 위해서'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내가 종사하는 브랜드에 계약한 가맹점주 두 분은 어린 자식들의 보육 때문에 너무도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매출이 좋은 가게를 급매로 헐값에 넘기고 사업을 포기했다.




이들 자영업자에게 '왜 주말과 공휴일에 쉬지 않고 일하는지? 왜 그렇게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지? 왜 부부가 모두 나가 일 하는지?' 물어본다면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돈을 더 벌어야 해서'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왜 돈을 더 벌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가족을 위해서'라고 할 것이다.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말이다.


수년 전 어느 자영업자 출신의 창업 컨설턴트가 기고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의 내용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다.


"'손님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라는 헛소리는 하지 말라, 당신이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가족을 위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은 '가족을 위해 가족을 희생' 시키라 하고 있다. 어느 동남아시아 출신 외노자가 낯설고 물설은 타국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자신의 삶을 죽이는 것처럼...



이 글을 쓰다 보니 몇 년 전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된 기사가 문뜩 떠 올랐다. 이 기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6년 네팔과 부탄을 방문했을 때 일화였다.


문 대통령은 가난해 보이는 현지의 한 농민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땅을 좀 더 개간하면 가족들이 더 부유하게 살 수 있지 않느냐”


그러자 그 농민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럼 언제 가족과 노느냐” 


문재인 대통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전 03화 7화. 화구(畵具)를 손에 든 아주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