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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Aug 12. 2020

5화. 그들을 위한 변명

그들도 댁들 만큼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뿐이다.

요즘만큼 '배달' 또는 '배달기사'라 불리는 업종과 직종이 관심받은 적이 있을까?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배달의민족' 앱 덕분(?)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도 음식 배달이 있었다는 썰이 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배달 문화가 익숙한 나라다. 그러나 막상 대중에게 배달업 종사자에 대한 인식은 거의 바닥인 듯싶다. 이 글은 쓰는 나 또한 이전에 그러했고...


인생을 살다 보니 어쩌다 배달 외식 사업을 하게 되었고 최근 가게를 접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지금은 주간에는 사무직, 주말에는 투잡으로 여전히 배달 일을 하고 있다. 역대 최장 장마라는 요즘... 정말 내가 도로에 있는 건지 수중에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포털 '다음'에 올라온 '폭우 속 배달 주문, 거절 못하는 이유'에서

상기 사진을 보라, 대단히 극단적인 사진이긴 하지만 이와 비슷한 경험은 내게도 수차례 있었다.


겨울철 블랙아이스가 내려앉은 도로에 가로등이 켜지면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흡사 밤하늘의 별이 도로로 내려온 것 같은 이 환상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면 배달기사들의 등골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도로가 아무리 빙판이라고 한들 한번 나간 배달은 돌아갈 수 없다. 그건 취소 사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네 바퀴를 가진 차량들도 쭉쭉 미끄러지는 블랙아이스 도로에서 꼴랑 두 바퀴의 오토바이가 미끄러지지 않길 바라는 건 오로지 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오늘도 무사하길' 바라는 '운빨'에 말이다.


작년 겨울, 블랙아이스로 인한 사고가 전국적으로 뉴스로 도배될 즈음, 우리 동네에서 상당수의 배달기사들이 블랙아이스 도로에서, 흡사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스러져가는 병사들처럼 이곳저곳에서 미끄러져 나뒹굴렀다. 물론 나도...


진눈깨비라도 내리면 최악이다 헬멧 쉴드(투명한 안면 가리게)에 눈이 덕지덕지 붙어 앞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쉴드를 올리면 눈에 눈을 맞으니 눈을 뜰 수 없게 된다. - 흠 쓰고 보니 표현이 시적이다. ^^ - 가뜩이나 미끄러운 도로를, 그것도 눈을 감고 앞뒤 차 사이에서 넘어지지 않는 묘기를 부리는 '생활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비' 그 자체는 눈보다는 그래도 낫다. 정말 힘든 건 여름철의 '습도'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밀폐된 우비와 헬멧에 보호장구까지 하면, 요즘 가끔 뉴스에 소개되는, 하루 종일 방호복을 입고 진료를 해야 하는 의료진들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그나마 밖에서 주행 중일 때는 견딜 수 있지만 엘리베이터라도 타면 - 에어컨이 없는 구식 엘리베이터 - 그야말로 실신각이다.


요즘은 '배달대행'이란 단어가 일반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 같다. 수년 전만 해도 배달대행이란 단어는 외식 자영업자들이 아니면 잘 모르던 단어였다. 과거에는 오토바이 좀 타는, 속칭  동네 '양아치'들이 하던 사업이 지금은 'SKY'출신이 뛰어들고 수십, 수백억의 자본이 왔다 갔다 하는 그럴듯한 신종 사업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오토바이가 타고 싶었던 애들, 흔히 '빠라빠라밤' 애들이 취미 삼아 배달업을 했다면 지금은 이십 대 이상의 청년과 중장년들이 하나의 생계수단으로써 선택 가능한 진짜 '직업'이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물론 이해는 한다. 이전에 흔히  폭주족이라 불리는 십 대 애들의 몰지각한 행위가 버려놓은 인식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 애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 업종에 요구되는 특수한 상황이 배달기사들을 어쩔 수 없이 '무법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배달기사'의 최대 덕목은 눈치껏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것이며 교통 법규를 지키는 자는 '배달기사'가 되면 안 된다는 암묵적 룰이 작용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난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도 깜빡이를 켜고, 아무도 없는 국도에서도 신호를 지키던 얌전한 모범 운전자였다 그런 내가 배달 전문 외식업자가 된 후에는 당연히 이 바닥의 룰을 따라야 했다. 공자왈 맹자왈을 외우며 고상을 떨다간 바로 도태되는 적자생존의 지옥도가 펼쳐지는 '자영업'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고로, 나도 사장으로서 배달기사에게는 내리는 지침은 '당신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최대한 빨리 움직여라'였다. 가끔 가게 바로 앞 한적한 교차로에서 눈치도 없이 한가롭게 신호 대기를 하는 내 기사의 뒤통수에 분노의 레이저를 쏘던 그저 그런 자영업자였다는 거다.


누군가에 고용된 배달 기사도 이리 쫓기는데 자신의 능력만큼 가져가야 하는 '적자생존의 경쟁시장'의 논리가 적용되는 '배달대행' 기사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그들이 당신들 눈에 거슬리는 짓거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까방권'이 된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잘못은 분명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 사람들은 어디 별세계에서 온 상종 못할 인간들, 자신의 이득에만 눈이 먼 별종으로 취급하며 흡사 섬멸해야 할 '증오'의 대상으로 보지는 말아 달라는 거다. 배달과 관련한 어느 언론 기사에 달린 이 댓글처럼 말이다.

중견 회사에서 임원으로 은퇴하고 젊은 시절 오토바이를 취미로 타봤기에 지금은 용돈 벌이로 대행 기사를 하는 육십 대 중반의 노신사, 편의점을 운영하지만 매출이 좋지 않아 투잡으로 배달 일을 하는 오십 대 가장, 도매상을 하다 부도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 하루 12시간을 쉬지 않고 우유 한팩과 삼각김밥 하나로 버티는 사십 대 남성, 취준생으로 집의 눈치가 보여 돈벌이에 나선 삼십 대 남성, 복학 후 대학 등록금을 준비하기 위해 나선 이십 대 청년, 지하상가에서 의류점을 운영하다 경영난으로 오토바이를 타는 다부진 이십 대 여성,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린 시절 방황을 접고 그 마음의 다짐처럼 머리를 시원하게 밀어버리고 오토바이를 타는 19살 소녀, 그리고 대한민국의 유별난 '교육비와 주거비'를 위해 집에서 뒹굴거릴 바에는 나가서 살도 빼고 돈이나 벌자고 나온 나 같은 사람...


'막장'이란 단어는 '갱도의 마지막'을 뜻하는 단어다. 그래서 가끔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사람들을 '막장 인생'이라고 보는 듯하다. 돈벌이의 최후의 수단으로 '배달'을 택했으니 언듯 그러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격이 '막장'이지는 않다.


그들은 당신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물론 당신들보다는 조금 더 간절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사정이 어찌 되었건 우리 사회질서의 근간(?)을 뒤 흔들 것 같은 이런 기초적인 교통법규 위반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 그건 나도 동감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하다. 집값 때문에 장애인 학교와 임대 아파트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 치졸하게 묶음 상품과 리필 중량을 속여 파는 대기업, 전쟁이라라면 '학살'로 표현되었을 가습기 살균제 기업들, 돈 몇 푼이 아까워 낙엽처럼 떨어지는 건설 인부들을 방치하는 건설사들, 이런 어마 무시한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가족들 먹여 살리고자, 또는 가진 기술은 없고 도둑질하는 것 보다야 이렇게라도 '몸빵'해서 먹고살려고 지 목숨 걸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부조리는 차라리 애교스러운 것 아닐까?


빗물이 종아리까지 차오르는 곳을 지나가야 하고,  블랙 아이스가 펼쳐진 빙판 도로를 통과해야 하며, 정전으로 멈춰 선 30층 아파트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일반인이라면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매년 한두 번은 연래 행사처럼 겪으면서도 그들은 오늘도 일터로 나간다.




수년 전  당시 전국을 강타했던 태풍으로 길에는 인적이 끊기고 지역의 모든 매장이 문을 닫았던 날, 나와 친분이 있던 인근 치킨점 사장은 그날 가게문을 열었다. 직원들은 모두 들여보내고 본인이 직접 닭을 튀기고 배달을 하며 장사를 강행한 것이다. 결국 그는 바람에 밀려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고 턱에 상처가 났다. 다음 날 상처를 염려하는 나에게 "이건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한 훈장" 이라며 엷은 미소를 짓던 그의 모습은 아직도 씁쓸하고 서글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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