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똥밭 Aug 19. 2020

6화. 17일이 임시 공휴일이었니?

원시인은 '나인 투 파이브'였을까?

며칠 전인 8월 17일, 전날까지도 난 그날이 임시 휴무일인 줄 몰랐다. 아내의 "내일 출근해?"라는 말에 그때서야 나는 그 날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 것을 알았고 다음 날 나는 평상시처럼 출근했다.


쬐끄만 조합 이사장이니 감 놔라 배 놔라 할 사람도 없고 그다지 눈치 볼 사람도 없는 관계로 그건 내 순수한 의지였다.

자영업 사장 시절, 그때는 사실상 공휴일이 없었다. 연중 딱 세 번 쉬었다. 1월 1일, 추석 당일, 설날 당일, 물론 그때도 내 의지였다. 그런데 정말 순수한 '내 의지'였을까? 그랬다면 당시 기분이 그렇게 꿀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 글 내용의 절반은 2017년도 오마이뉴스에 살짝(?) 올렸던 글이다. 이번 8월 17일 임시공휴일에 문뜩 그때 내가 올렸던 글이 떠 올라 다시 곱씹어 보고 싶어 리메이크 버전으로 올려본다.


2017년 모 언론사 기사에 '9시 출근 5시 퇴근, 평범하게 일하며 사는 시대 지났다'라는 기사가 있었다. 당시 나뿐만 아니라 그 기사에 시선이 꽂힌 사람은 제목 중 '9시 출근, 5시 퇴근'이었을 것이다.


기사를 요약하면 '9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 그런 평범한 시대는 지났다는 것. 자신이 가진 감각적인 기술이나 재능을 이용하면 짧은 시간에도 '나인 투 파이브'를 채우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라는 것. 즉 지금의 시대는 트렌드와 기술이 너무도 빨리 변하는 '트렌드 변화의 가속화 시대'에서는 꾸준히 자기 개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기회를 가질 거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당시 기사에 달린 댓글들...


뭔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 기사에 보인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를 위 댓글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인 투 파이브(Nine To Five)'는 1980년에 나왔던 히트송 '돌리 파튼'의 노래 제목이며 또한 이 노래를 컨셉으로 만들어진 영화 또한 크게 히트하였다.


영화 내용은 나이도 있는 이혼녀인 주인공이 회사의 '말단'으로 입사하여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직장에서 겪는 '신변잡기'가 주 내용인 오피스 드라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이 영화를 볼 때 떠올랐던 생각은 아직도 선명하다.


 "역시 미국은 선진국이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다니.."


내가 회사원이었던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그때 난 8시 이전에 퇴근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사세가 기울고 출근해도 할 일이 없던 시기가 도래하자 어느 날부터 회사 사람들이 6시 30분에 퇴근을 했다. 난 회사 선배에게 이렇게 일찍 퇴근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배는 나에게 우리 회사 사규에 퇴근 시간은 '6시 30분'이라고 했다. 그랬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오후 8시가 우리 회사 정식 퇴근 시간인 줄 알았다. 8시는커녕 9시나 10시 퇴근이 심심치 않게 이루어지다 보니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당시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그게 일상이었다.


돌리 파튼의 나인 투 파이브(Nine To Five) 이후 40년이 지난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예전에 어느 기사의 댓글에 "우리는 자원도 없이 인력을 먹고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라는 글을 봤다. 몇 년 전 일에 지쳐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었던 친한 후배는 '단톡 방'에 자신의 출근부를 찍어 올렸었다. 나름 그 바닥에서는 인지도 있는 토목 설계회사에서 중간 관리자로 일하는 그가 올린 출근부에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RT 8시간, OT 8시간이 꽉 채워져 있었다.  


물론 그 회사의 특성이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주어진 기한 내에 설계를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일감이 없을 때는 정시퇴근, 일감이 있을 때는 기한 내 시간을 쥐어짜야 하는 특수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하루 16시간씩 그렇게 수개월을 일해야 하는 극한의 환경을 견디어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진짜 문제는 일감이 없는 시기보다 있는 시기가 당연히 압도적으로 많아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월급을 맘 놓고 탈 수 있으니까. ^^


이쯤 되면 아무리 강골이더라도 사람은 몸과 마음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집은 잠시 들러 옷 갈아입는 수준이고, 누웠다 일어나면 다시 회사에서 16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말이다.


사십 년 전의 미국은커녕, 어쩌면 이십여 년 전의 대한민국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우리 현실 속에서 이 기사의 내용 중 "내달리는 세상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사색할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은 정말 염장을 지르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글의 근본 의미에는 동의한다.


일단 나는 운 좋게도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PC방 사장 시절... 다행히도 장사가 그럭저럭 되었고 특히 알바들이 정말 좋았다. 매출이 좋아도 직원이 잼병이면 자영업자 사장은 쉴 수가 없다. 당시 믿을 수 있는 알바들 덕분에 주말에는 매장을 맡겨 놓고 하루 종일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혼자서 고독을 씹으며 자전거 안장 위에서 그야말로 '사색'을 할 수 있었고 그때 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농담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개똥철학'은 그때 정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최근 읽은 책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이런 글이 있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 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2014년 경제적 파이는 1500년보다 크지만, 분배는 너무나 불공평해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아프리카 농부와 인도네시아의 노동자가 집에 가져오는 식량은 5백 년 전보다 더 적다.'


그리고 이 책은 과연 현대인들의 노동시간이 원시인들보다 줄어들었을까? 그리고 더 행복할까?라고 묻는다.


원시인들의 삶의 환경은 현대인들보다 분명 불편하고 거칠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불편한지 몰랐다. - 아직 원시 문명을 간직하고 있는 원주민들을 연구하여 추론할 수 있다고 한다. - 그리고 그들은 적어도 해가지면 동굴로 돌아와 가족들과 작은 모닥불 주위에서 온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지금 현대인들은 해가 진후에도 전등을 켜고 업무가 완료될 때까지, 가족들과 떨어져 하루에 수십 시간을 일에 할애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현대인이 원시인보다 행복할까?


피시방을 접고 전업을 했던 나는 더 치열한 생계의 전쟁터에 맞닥뜨렸다. 그때부터는 '사색'이고 나발이고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셔츠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 땀 피지 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 가내'를 흥얼거리며 삶의 쳇바퀴를 돌려야 했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연중에 딱 삼일만 쉬고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만 해야 했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자영업은 '지옥'이라는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치열한 자영업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지옥 같았던 자영업을 접고 난 후 난 지금은 투잡을 하고 있다. 여전히 나에게 일주일은 '월화수 목금금금'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중에 자영업 사장 시절보다는 좀 더 많은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고.


각설하고 2017년에 올라온  '9시 출근 5시 퇴근, 평범하게 일하며 사는 시대 지났다'라는 기사에서 시작한 상념은 이번 8월17일 임시공휴일과 최근 올라온 "이번 기회에 재택근무 정착" vs "우린 나인 투 파이브도 못하는데.."라는 기사를 관통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과연 우리는 원시인들 보다 행복할까?

이전 05화 3화. 당신에게 이 울음은 소음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