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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Oct 08. 2020

14화. 늑대는 홀로 살수 없다

늑대처럼 살아야 하는데 호랑이처럼 살라고 한다.

어느날 거실에 틀어 놓은 TV에서 자연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북아메리카 즉 미국이나 캐나다 지역 어느 국립공원의 야생을 보여주는 그 화면에는 검은색과 짙은 회색의 털이 뒤섞인 늑대 한 마리가 보였다.


사람으로 따지면 '청년'이 된 수컷 늑대 한 마리가 무리를 뛰쳐나와 거친 야생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다. 무리 사냥이 주특기인 늑대가 혼자서 사냥을 한다는 것은, 특히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늑대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녀석은 결국 들소의 사체를 노려야 했지만, 야생은 절대 만만치 않았다. 자신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덩치 큰 회색곰이 으르렁거렸고, 어찌어찌 곰탱이를 따돌릴라치면 이번에는 코요테 무리가가 다가왔다. 녀석은 여전히 굶주려야 했다.


이렇게 늑대는 무리 생활을 해야 살 수 있는 동물이다. 그런데 호랑이는 어떠할까? 알다시피 호랑이는 단독 생활을 한다. 홀로 살고 홀로 사냥한다. 자기 영역에 다른 호랭이가 들어 오면 사생 결딴을 내야 하는 놈들이다. 그래서 옛말에 한 산에 두 호랑이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는 거다.



무한경쟁시대

내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수업이 있던 날, 담임에게 들었던 말은 "네 옆에 앉은 사람은 친구이기보다는 경쟁자이다."라는 말이었단다. 솔직히 이제는 전혀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 말, 그동안 수많은 교육전문가와 사회 철학자들로부터 지적되고 질타를 받았던 이 천박한(?) 충고가 여전히 우리 교육현장에서 아직 여물지 않은 청춘들에게 우리 사회의 척박한 현실을 자각시키는 채찍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어리바리 신입사원으로 회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그날따라 내 업무가 조금 한가했고 나보다 1년 앞서 입사한 선배는 바빠 보였다, 그래서 난 혹시 도와줄 일 없냐고 물었다. 그런데 반응이 정말 의외였다. 그의 반응은 “왜 굳이 시키지 않은 남의 일을 일부러 하려 할까?” 였다. 난 분명히 ‘백지장도 맞들면 나으니 서로 도와야 한다.’라고 배웠고 그 배움을 실천했을 뿐인데 말이다.


몇 년 전 어느 프랜차이즈에 창업 상담을 받았을 때 기억이다. 당시 난 그 회사 영업 사원과 회사가 추천한 상가를 탐방했다. 해당 상가를 방문해 보니 바로 맞은편 상가에 이미 동종업의 경쟁 브랜드가 입점하여 성업 중이었다. 개업 한지 몇 달 되지 않았다는 그 가게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알바 한 명과 같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다른 브랜드가 이미 들어와 있네요…."

"네~ 그래서 추천해 드리는 겁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장사가 잘되잖아요~ 한마디로 검증된 상권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건 경우가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이제 막 개업한 저 노부부의 손님을 빼앗아 오라는 거잖아요."


내 말에 그 영업 사원은 좀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부드럽고 점잖았지만, 학생을 훈계하듯 단호하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장님~ 장사는 경쟁이에요~ 그렇게 나약한 마음으로 장사하시면 쫄딱 망해요~ 맞은편 가게는 사장님 이웃이 아니고 경쟁자예요."




입학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미술로 대입을 코앞에 둔 딸은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했다. 대입 실기 시험장에 가끔 이상한 애들이 다른 수험생에게 해코지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한 애들이 다른 수험생의 도화지에 물감을 뿌리거나 자신의 도화지 뒷면에 티 나지 않게 하얀색을 칠해 자신의 도화지에 깔리는 다른 수험생 작품을 망치게 한다는 이야기였다.


몇 년 전에는 과도한 업무에 치인 게임사 직원의 자살과 돌연사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그리고 어느 날 모 프랜차이즈 본사 앞에서는 가맹점주들이 모여 ‘근접출점’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가맹점 간 영업구역을 넓혀달라는 ‘하소연’를 했다.


우리는 늑대에 가까울까? 호랑이에 가까울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하면 다들 아마 '우문'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는 ‘사회적 동물’이니 유치원생도 당연히 사람은 늑대에 가깝다고 답을 할 것이다. 우리는 늑대처럼 - 물론 규모에서 비교하긴 어렵지만 - 무리를 이루고 사는 동물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상하다. 우리는 늑대처럼 무리를 이루고 살며 서로 배려하고 협력해야만 생존 가능한 존재임에도 이 세상은 우리에게 '호랑이'처럼 살라고 교육하고 조언한다. 정말 이상한 세상이다.


다큐는 끝에 다다랐다. 화면에는 부상과 굶주림에 초췌해진 ‘검은꼬리’의 안쓰러운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이런 나레이션으로 마무리되었다.


“검은꼬리는 하루라도 빨리 무리에 합류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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