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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Sep 18. 2020

11화. 핵폭탄 창규와 영석이

피씨방에서 만난 아이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되었던 글 중 일부이며 경험담이지만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요즘 스마트폰 때문에 조금은 주춤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학생들의 주 놀이터는 '피시방'이다. 나도 한때 피시방 업주였지만 이 나라에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같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우리나라에서는 피시방, 노래방뿐이라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다.


그래서 피시방에는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한 장을 들고 오는 꼬마부터 사장의 눈을 피해 몰래 애들 돈을 갈취하는 일진들까지, 어른만큼이나 다양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출입한다.


내가 피시방을 운영하던 지역에 가끔 피시방에 순찰 오는 지역 파출소 경찰들이 찾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 지역 '핵폭탄'이라 불리는 두 명, 그중 한 명은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영석'이란 아이였고, 한 명은 '창규'란 고등학생이었다.


도대체 동급생도 아닌 둘이 어울리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둘이 체격이 비슷하다는 정도, 그리고 언 듯 고등학생 창규가 초등학생인 영석이를 속칭 '똘마니'로 두고 나쁜 짓을 시키는 사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였으나, 현실은 초등학생인 영석이가 훨씬 반항적이고 과격했으며 오히려 나이에 비해 왜소한 창규를 끌고 다니는 격이었다.


어린 영석이는 겉모습만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여름철 노출된 녀석의 팔, 다리의 피부는 멀쩡한 구석이 없었다. 모기인지 뭔지 모를 벌레에 물린듯한 상처로 뒤덮여 있었고 상처의 일부는 소위 '담배빵'이라는 상처로 보였다. 거기에 햇빛과 바람에 시달려 거칠어진 녀석의 알굴은 정말 누가 봐도 보살핌과는 거리가 먼, 길거리에 방치된 아이였다.


그 둘은 이 지역에서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다. 아이들 돈을 빼앗는 건 물론 방화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피시방의 경우 두 녀석이 며칠 동안 피시방 입구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소위 '삥'을 뜯었고, 학생들이 그 피시방을 기피해 폐업 직전까지 갈 정도였다고 했다. 덕분에 두 녀석은 지역 피시방 사장들의 경계대상 1호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 또한 두 녀석이 가게에 들어오면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손님으로부터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항의가 들어왔다.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열어보니 바로 그 '핵폭탄'들이었다. 고등학생 창규는 그나마 놀라는 척했지만 초등학생인 영석이는 미동도 없이 담배를 꼬나문 상태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도대체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며 난 그 둘을 카운터로 불러들였다.


"어른들은 너희처럼 애들이 담배 피우는 거 보기 싫어한다, 여기서는 담배 피우지 마라, 그리고 저렇게 바닥에 침을 뱉고 더럽게 하면 다음에는 너희들에게 청소시키겠다"란 말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영석이는 여전히 반항적인 눈빛으로 쳐다보며 "왜 애들은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느냐"며 오히려 반문을 했다. 어차피 잔소리가 먹힐 애들이 아니라고 판단한 나는 시니컬하게

 

"너 경찰에 쫓겨봤지? 경찰을 피해 뛰면 어때? 가슴이 아프지 않아? 그게 담배 많이 펴서 그런 거야~ 잘 도망가려면 담배 끊어라! 그래서 애들은 못 피게 하는 거다. 알겠냐?"


영석이와 창규는 그 말에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피시방에서 나갔다. 이후 둘은 가끔씩 들러 조용히 게임만 하다 갔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신경 쓰이는 존재들이었다. 잘 보이지 않는 어느 구석에서 있으면 혹시 다른 애들 삥이라도 뜯는 것 아닌지 살펴봐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생인 창규는 게임은 하지 않고 카운터 옆에 서서 다른 피시방에는 먹거리가 뭐가 있고 어떤 게 인기가 좋다는 둥,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녀석의 관심이 조금 귀찮고 불편했지만 마냥 무시할 수 없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런저런 대답도 해주자 녀석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사장들은 이야기가 하면 귀찮아하는데... 이렇게 들어주고 대답해준 사람은 사장님이 처음이에요."


이 아이들을 근거리에 지켜보며 가끔 연민도 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가게에서 사고 치지 않고 곱게 게임만 하다 가길 바라는'피시방 사장'일 뿐이었다.




가게를 비우고 밖에 있던 어느 날 가게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찰이 그 두 녀석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사고를 쳤는지는 모르지만 혹시라도 가게에 오면 꼭 연락해달라는 당부를 했단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가게에서 전화가 왔다. 나에게 전화를 했던 직원은 녀석들이 지금 피시방에 들어와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 경찰이 신고를 해달라고는 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가게에 해코지라도 할까 염려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고하기보다는 일단 내보내겠다고 나에게 전했다.


나는 고민스러웠지만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 다시 가게에서 전화가 왔다. 내게 전화한 직원은 녀석들을 내보려고 했고 왜 내보내야 하는지 사유를 이야기했지만, 뭔가 억울해하며 내게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난 궁금했다. 도대체 나에게 뭘 말하겠다고 녀석은 전화를 해달라고 했을까...


"사장님 왜 우리를 내쫓는 거예요? 우리가 여기서 뭘 잘못했나요?"

"너네가 여기서 뭘 잘못한 건 없지만 경찰이 니들을 찾는다고 하잖아... 니들이 여기 있으면 신고를 해야 하니까 나도 그렇고 가게에 있는 형도 그렇게까지 하기 싫어서 나가라고 한 거잖아"

"경찰이 왜 우리를 찾는데요? 우리는 잘못한 거 없어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우리가 나가야 하죠?"


녀석은 뭔가 억울해했다. 나도 가게의 직원도 녀석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는 못했다. 그저 경찰이 찾으니 당연히 뭔가 잘못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녀석은 아니라고 했다.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항변을 했다. 난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자신이 사는 집도 아닌, 가끔 들리는 피시방일 뿐인 곳에서 경찰이 찾는다고 하면 귀찮아서라도 다른 곳으로 피하면 속편 할 일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뭔가 억울해하 전화로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적극적으로 호소했다.


얼마 전 녀석이 내게 툭 던졌던 말이 떠 올랐다. "이렇게 들어주고 대답해준 사람은 사장님이 처음이에요", 그때  녀석은 나를 다른 어른들과는 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이렇게나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는 것일까... 그때나 이제나 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시시한 어른과 다를 바 없는데 말이다.  


그 뒤로 창규와 영석이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리고 피씨방을 접고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뜻밖의 장소에서 창규를 만났다. 여전히 허름한 모습에 생기멊는 얼굴의 창규를 한번에 알아봤지만 아는척 하기에는 뭔가 망설어졌다. 그러나 창규는  나를 알아보자 흡사 낯설고 물설은 타지에서 친숙한 사람을 만난것처럼 좀전까지 딱딱하게 굳어있던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어른들로부터 폭탄 취급받으며 성장한 녀석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느끼며 살고 있을까? 나같이 세파에 찌든 여느 어른들처럼 '개똥밭' 같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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