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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Sep 25. 2020

13화. 사진을 찍는데 필요한 시간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직전의 글에 '책을 읽는데 필요한 시간'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와 연장 선상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어느 보석이 이보다 아름다울까...

위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은 1분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그 1분 중 대부분의 시간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켜고 초점을 맞추는 데까지 필요한 시간이다. 말 그대로 '스냅샷'이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 Crimson Glory의 'Painted Skies'란 제목과 어울리는 하늘이다.

난 사진 촬영이 취미는 아니다. 그러니 사진을 찍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고 찍을 줄도 모른다. 이 사진들은 디카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이다. 더욱이 난 프리미엄 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스마트 폰의 성능이 나의 형편없는 촬영 기술을 커버해줄 리 없고 '포토샵'으로 보정할 시간도 없다. 고로... 이 사진들은 날것 그대로이다.

태풍이 온 다음날 하늘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처럼 은근한 공포를 드러낸다.

내가 하늘 사진을 찍은 이유는 딱 하나다. 인간의 어떠한 미사여구로 표현 불가능한 그 신비로움을 담아두고 때때로 꺼내 보기 위함이다. 


구름은 석양을 더더욱 아름답게 표현하는 붓과 같다.

하늘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할 즈음, 지인들 단톡 방에 이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반응이 의외였다.


"좋겠다. 하늘도 보고..."


우리 머리 위에 하늘은 언제나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인류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그런데 하늘을 본다는 행위가 새삼스러웠던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앞도 아닌 아래를 보고 다니고 있다.


하늘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우리가 보지 않는다면 그 아름다움은 무의미 해진다. 이 세상은 우리가 관측할 때 그 상태가 결정된다는 양자역학 이론이 맞다면 이 아름다움은 우리 의지에 자연이 응답하는 '찰나'의 선물이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청명한 날씨에 해지기 직전에만 볼 수 있는 하늘색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1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년 중 하늘이 허락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것은 이 아름다움이 시간, 장소, 날씨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룰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태양과 구름이 만든 한 폭의 유화 같다

보석이 비싼 것은 아름답고 귀하기 때문이다. 해질 무렵의 하늘은 '마법의 시간'으로 표현될 정도로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이 세상 누구나에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아무나 누리지는 못한다. 


한번 지나간 하늘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누구나 볼 수는 있지만 누구나 느낄 수는 없으며 소유는 불가능한, 세상의 어떤 보석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존재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사진으로라도 남긴다.

마법의 시간이 도래하면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Betty Blue

사진 대부분은 주말 투잡을 할 때 찍는다. 마법의 시간이 도래하기 몇 시간 전 난 하늘을 본다. 자연이 마법을 부려 하늘에 채색을 시작하면 마음이 바빠진다. 하늘은 캔버스를 펼치고 구름은 붓질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곳에 태양은 자신의 빛을 물감으로 만들어 뿌린다. 처음 태양은 황금빛으로 구름을 물 드린다. 조금 지나면 밝은 주황색으로 그리고 진홍빛으로... 태양은 마지막 자신을 낮추어 자극적인 핏빛의 하늘, Blood Red Skies를 그려낸다. 


그리고 구름은 물론 미세먼지조차 없는, 조금 과장해서 천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그런 날에 석양은 그야말로 마법의 절정을 보여준다. 어두운 남청색과 보라색, 주황색 그 아래 몸을 숨긴 태양은 옅은 노란색 숨을 쉰다. 그리고 이 시간은 정말 '찰나'이기 때문에 잠시 한눈을 팔면 신기루처럼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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