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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Oct 29. 2020

17화. 다래는 돌아왔나?

격려와 칭찬은 고래도 다래도 춤추게 한다.

다래와의 첫 대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빨간머리 앤'처럼 주근깨가 많은, 통통하게 살찐 '앤' 같았던 다래는 한 손으로는 카운터 위의 볼펜을 만지작 거리며 짝다리로 몸을 비스듬히 카운터 데스크에 기댄 채  날 '빤질빤질' 쳐다보며 - 어린아이였다면 '똘망똘망'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만 -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기 피자집에서 알바 구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고딩이 된 지 이제 한 달이 지난 사춘기의 정점에 올라선 나이, 그 나이를 입증이라도 하는 듯 한 무개념한 말투, 이 두 가지만으로도 '결격사유' 충분했기에 다른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시원하게 '당장 나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연락해주겠다는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하고 서둘러 내보냈다. 그런데 녀석은 다음 날, 엄마까지 대동하고 우리 피자가게에 다시 나타났다.

"아! 사장님 되세요? 우리 애가 오늘부터 여기서 알바하기로 했다고 해서요~ 부모로서 자식이 어떤 가게에서 일하는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지 좀 봐야 할것 같아 와봤습니다."


그 엄마는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다.


"아 뭔가 착각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전 어제 따님에게 나중에 연락을 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는데요…."


내 말에 아랑곳없이 우리 가게 배달기사와 주방의 여대생을 유심히 보던 그 엄마는


"가게 분위기도 괜찮은 것 같고…. 같이 일하는 분들도 좋은 분들 같아서 그런데 아직 알바 못 구하셨으면 우리 딸 좀 써주시면 안 될까요?"




알고 보니 그 엄마는 배달 직원만 예닐곱의 우리 가게보다 훨씬 규모 있는 식당의 사장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가게가 아닌 남의 가게에 딸을 알바로 취업시키려고 한 것은 나름의 '고육지책'이었다. 사실 이해는 갔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 또래 녀석들은 부모의 '애와 증' 양극단을 종횡무진하는 '혼돈'의 존재이니 말이다.


그렇게 그 엄마의 설득에 다래를 알바로 쓰기로 했다. 최소 삼 개월 이상을 일해야 한다는 내 조건에 그 엄마는 한술 더 떠 그 기간을 못 채우면 급여를 안 받겠다는 각서까지 쓰겠다며 나름의 '진정성'을 보였다.


난 다래에게 전혀 기대가 없었다. 이런 천방지축 사춘기 애들에게 뭔가를 기대하기에는 자영업자로서 때가 제법 묻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대가 없어 그러했을까? 방학 시즌이라 꽤 바빴지만, 다래는 이전의 그 또래 애들과는 달리 엄살이나 꾀를 부리지 않고 나름으로 열심히 했다. 그런 녀석이 대견해서 작은 칭찬이라도 해주면 코와 볼은 물론 눈썹에 밀가루가 소복이 내려앉아 하얗게 된 것도 모르는 채 히죽거리며 더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녀석에게 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화장실을 유달리 자주 들락거리길래 화장실에서 뭐 맛있는 거라도 몰래 먹느냐는 내 농담에 왠지 모르게 난처해하거나, 가게에 방문한 같은 학교 친구가 '니가 이런 알바도 해?'라는 말을 하자 내 눈치를 슬며시 보며 '나도 알바해~ 이일 재미있어~'라며 친구를 가게 밖으로 서둘러 내보냈던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래와 같이 일하는 여대생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거 아세요? 다래가 얼마 전에 무릎 다쳤잖아요~ 그래서 제가 어쩌다 그랬냐고 하니 경찰 피해서 도망가다 넘어져 다친 거래요~ 그리고 사장님 다래 담배 피우는 거 모르시죠? 게 화장실 자주 갔던 거 담배 때문이었어요~ 저번에 가방에서 담배가 떨어져서 알게 되었거든요…. 사장님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소문난 일진이더라고요…."


가끔 당돌한 말투가 보였지만 주근깨의 순진한 외모와 밝은 성격, 그리고 가게에서 나름 성실한 모습에 난 다래가 '일진'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 가끔 다래에 느꼈던 그 '이상한 부분'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나에게 선물이라며 주던 외제 초콜릿과 얽힌 사연도 퍼즐처럼 다른 조각들과 맞물리며 의미 있게 다가왔다.


당시 난 다래의 작은 호의가 고마워 이런 초콜릿은 비싼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다래는 자신의 아버지가 관련 사업을 하므로 돈을 주고 산 것은 아니라 했고 이에 난 농담으로 '사장님 초콜릿 좋아하니 앞으로 더 많이 가져와라'라고 했다. 그러자 다래는 어두운 얼굴로 '새아빠'라서 '많이' 가져오는 건 좀 곤란하다며 말끝을 흐렸었다.


이제 그동안의 작은 의문들과 당시 다래 엄마의 간절한(?) 부탁이 이해가 갔다. 더 깊은 사연은 모르겠지만 다래는 엄마도 통제하기 힘들었던, 가끔은 경찰을 피해 도망가기도 했던 방황하는 십 대 소녀였다.


어느덧 약속한 삼 개월이 며칠 남은 어느 날…. 다래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았다. 전화와 카톡, 문자로 연락을 해봤으나 응답은 없었다. 조금 지나 다래의 엄마로부터 장문의 문자가 왔다. 요지는 이러했다.


자신도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다래가 아무 말도 없이 무단으로 출근하지 않은 것에 너무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지난번에 약속한 것처럼 이번 달 급여는 받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다래가 가출했다는 것이었다.


내 자식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마음이 심란했다. 비슷한 또래의 아들딸이 있었기에 그리고 다래가 비록 밖에는 통제 불가한 혼돈의 사춘기 소녀인지 몰라도 가게에서는 서툴지만 성실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살갑게 군 정감 가는 소녀였기 때문이다.  다래 엄마는 급여를 안 받겠다고 했지만 난 급여를 계산해서 보냈다. 그런데 아차 싶었다. 급여 계좌가 다래의 계좌였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녀석이 이 돈으로 가출을 장기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심란했다.




그뒤로 일주가 지났을 무렵, 혹시나 해서 난 다래의 카톡 프로필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카톡 프로필이 바뀌어 있었다. 그 프로필 소개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x발 돌아왔다'


이 불쾌한 육두문자 왠지 웃음이 났다.

 

'그나마 다행이다 돌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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