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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Jan 15. 2021

어때? 프라이드는 있어?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기억의 시계를 또 한 번 빙빙 돌려 보자... 회사원? 아니 그건 좀 멀리 갔고 인생 삼모작 시절인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 사장 시절로....

오늘도 저조한 매출에 한숨을 쉬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숨은 나오는데 왠지 이 한가함이 그리 나쁘지 않은..  그러니까 돈은 필요한데 이 한가함도 떠나보내기 싫은, 자본주의와 능력주의가 콜라보된 이 적자생존의 사회에 부적응자처럼 멍 때리고 있던 어느 날... 떡대가 매우 좋은 젊은 청년 두 명이 우리 가게에 불쑥 들어왔다. 한눈에도 그들은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 공지한 바와 같이 요즘 가맹점 특별 점검 기간이라 오늘은 사장님 가게에 들렸습니다. 주방의 식자재 좀 살펴보겠습니다.'

그러했다. 이 건장한 두 젊은이는 본사에서 나온 '가맹점 감찰팀'이었다. 간단한 인사로 기본 의례를 끝낸 두 사람은 일본 순사가 독립군 밀서를 수색하듯 주방을 샅샅이 뒤졌다.

이쁜 인테리어와 고은 조명으로 치장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프랜차이즈 가게들... 그 가게 뒤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을 상상했던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이 바닥에서 흔한 일일까? 그렇지는 않다. 사실 내가 본사에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이 배경에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 여기에 구구절절 쓸 수는 없고(궁금하신 분들은 이 링크를 따라가 보시기 바란다.) 여하튼... 내 주방을 한참 뒤지던 그 두 직원은 의도했던 꼬투리를 찾아낸 듯했다. 그리고는 그 꼬투리로 조금은 의기양양하게 나에게 다가와 '가맹계약 위반'을 들먹였다.


이 두 직원이 내 가게에 오기 전에 분명 회사로부터 어떤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회사가 까라면 까야하는 게 직장인의 숙명이지만 분명 부담스러울 수 박에 없는 이 일에 그들이 혹시라도 주저하지 않도록 회사는 이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로 독려했을 것이다.


'저 사람들은 돈이나 밝히는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무식한 장사치들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가서 계약서의 신성함과 본사의 존엄을 깨우쳐 주어라!!'

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그들을 좌석에 착석을 시켰다. 그리고 회사가 정당하다며 지시한 이 일이 얼마나 부당하고 불공정한 일인지를 조근조근 설명했다. 진지한 내 설명이 이어지자 이들의 표정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내 일장 연설(?) 끝자 그들은 반신반의한 모습이었다. 당연했다. 내가 인용한 그럴듯한 법조문, 논리적 반박과 수사적 표현은 그저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안간힘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보다 직장생활을 먼저 했던 사회 선배로서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군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 '프라이드'가 있나요? 지금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나요?"   


내 말에 이들의 동공은 흔들렸다. 연매출 수백억짜리 본사 직원들이 내 가게 알바들보다도 근속 기간이 짧은 상황을 이전에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자리 잡은 회사의 직원들 충성심은 늦가을 나무 가지에 간신히 매달여 있는 마른 잎사귀와 같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인생에서 터득한 깨달음이 하나 있다. 누군가를 진짜 설득하고자 한다면 '감언이설'이 아니라 '진심'이 결국 최종병기라는 사실.


"예전에 내가 다녔던 회사, 그것도 내 아버지가 오너인 회사를 스스로 관두고 장사를 했던 이유는 바로 '자부심'이 사라졌기 때문이요... 아무리 돈벌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거슬리는 일을 하며 어떤 자부심도 느끼지 못하는 회사에서 내 인생을 낭비하는 건 잘못된 선택 아닐까요?"


두 직원의 낯빛은 무척이나 어두워졌다. 그들이 본사로 돌아간 뒤 일주일 후... 두 직원이 회사를 관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이 회사를 갑작스럽게 관두 이유가 내 말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오비이락'이라고 우연히 시기가 그리 맞았을 듯싶다.


영화 '베테랑'의 대사로 한때 유행어였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말... 살아보면 알게 된다. 이게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이다.  


그들이 당신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당신이 그들에게 '뭐라고 대답하는가'이다.

- W.C. 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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