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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Mar 26. 2021

부패의 메커니즘

LH 비리는 100년전에 만들어졌다.

정지선 지키는게 '양심'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오래전, 개그맨 이경규 씨가 진행했던 '양심 냉장고'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타인의 시선은 물론 교통사고의 위험도 거의 없는 한적한 도로에서 정지선과 신호등을 지키는 운전자에게 당신의 양심(?)을 칭찬한다며 선물(냉장고)을 주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그 시절은 그 기초적인 질서 조차 습관적으로 무시되던 시절이었다는 거다. 


그런 시절에도 난 모범 운전자였다. 뒤 따르는 차량이 없는 도로에서도 깜빡이를 켜고 정지선과 신호를 언제나 반듯하게 지키던 범생이었다. 그런 내가 자영업자가 되고 직접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게 되면서 변해 갔다. 차 사이를 비집고 가는 '칼치기'와 신호 무시는 기본이고 지금도 정말 싫지만 가끔(배달이 늦었을 때)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횡단보도 주행까지 감수했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결국 '돈'이었다. 교통 법규를 준수할 때와 무시할 때 배달 효율의 차이가 거의 두배 이상 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덕 책이나 읊다가는 적자생존의 시장에서 도태될 건 분명했고 그렇게 망한 자영업자에게 돌아오는 건 '무능력자'라는 모멸뿐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평상시 자가용 운전 습관에도 문제가 생겼다. 언젠가부터 난 도로의 무법자가 된 것이다. 가끔 차에 동승한 아내는 내 이런 모습에 화들짝 놀라 했다. '범생이' 남편이 어쩌다 이리 타락했는가 하고 말이다.


'부패의 메커니즘', 뭔가 그럴듯하고 학문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이 문장의 핵심은 바로 이런 거다. 요즘 정권까지 흔드는 'LH공사 비리'라는 뭔가 어마 무시해 보이는 거창한 비리도 따지고 보면 배달기사가 LH공사 직원으로 바뀐, 우리 사회 속 시시한 인간들의 이기적 욕망의 발로였을 뿐이다. 




가뜩이나 부동산에 스트레스받던 내 지인들은 - 결국은 국민들 - 가열찬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그 분노의 진심은 뭘까? 진짜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실망감일까? 아니면 그 부조리에 끼지 못한 '박탈감'일까? 

지인들끼리 이 논재로 시시덕거리다 "야 니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라고 하면 서로 실실 웃으며 이리 이야기한다.  


"안 하면 그게 X신이지..." (당연히 나 또한 그런 시시한 인간이다.)


'LH 공사'는 높은 연봉에 철밥통으로 흔히 '신의 직장'이라 불리며 취준생들에게 오래전부터 선망의 대상인 '공사'다. 그러다 보니 그 많은 청년들 중 걸러지고 걸러진 소수의 '능력자'들만이 선택받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우월의식에 정신줄 놓은 녀석이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한다.   


어느 똑똑한 LH 공사 직원의 글, 이 정도면 사회적 지능은 거의 바닥인 거다.


뭐 이 정도면 사람들이 그렇게나 욕하는 도로 위의 무법자 '빠라빠라 밤'과 수준에 차이가 없다. 아니 이들의 해악은 교통 무법자로 인식된 배달기사와는 비할바가 아니다. 도로위의 무법자가 사고를 내면 거의 자신들이 다치거나 죽지만 이자들의 '부조리'는 사회의 근간을 흔들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그렇게나 똑똑하다는 엘리트들의 윤리 의식이 왜 저 모양일까? 뭐긴 뭐겠는가... 언젠가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도덕과 윤리'는 돈벌이에 걸리적 거리는 '비효율과 무능력'의 상징으로 취급을 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정치체제나 사회체제로부터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도덕 감각이 사라지고, 양심이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다...(중략)... 사태가 이지경에 이르면 결국 인간은 이를 해결하려고 권력 남용에 의지하게 되고, 그 결과 인간은 더욱 타락한다.

- 호세 마리아 신부(세계적 협동조합 '몬드라곤'의 창업자), 신부님의 이 말씀은 1940년대 세상에서 나왔다. 80년이 지난 현재의 우리는 그때보다 나아진 것인가? -   

 



브라질의 사회 고발 드라마 '부패의 매카니즘'


'부패의 메커니즘' 이란 제목은 넷플릭스 드라마의 제목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드라마의 배경은 '브라질'이며 극의 내용은 돈과 권력에 눈먼 자들이(관료, 검사, 정치가, 기업가, 마약 카르텔들) 벌이는 아비규환이다. 요즘 애들 말로 표현하면 브라질 사회의 '부정과 부패 대환장 파티'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번 '코로나 재난'에서 보여준 브라질의 대응 꼬라지를 보면 그들 사회가 어떤 수준인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솔직히 말해 이런 나라가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불가사의에 가깝다고 본다.


지난 세월 돌이켜 보면 보면 솔직히 우리 사회도 그 '썩은 브라질' 직전까지 갔었다. 최민식 주연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나오는 이 대사가 그 시절 시대상의 상징이다.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어 내가 임마 느그 서장이랑 어! 같이 밥도 묵고 어! 싸우나도 가고 어! 다했어"




어쩌다 보니 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검정고시 출신에서 박사학위까지, 이삼십 대 젊은이부터 육십 대 중장년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면서 언 듯, 세상이 변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그 어느 때보다 '공정'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그렇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이 말하는 '공정'이 사전에 나와있는 '공평하고 올바름'이라는 뜻으로 인식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내 생각에는 '올바름'이란 뜻은 슬적 뺀 느낌이다.


식물이 땅속에 깊이 뿌리내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사상과 감정이 인간과 공동체의 정신에 자리 잡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인간과 공동체의 경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식물의 살이는 5년이나 100년 단위로 측정하지만, 인간과 공동체의 역사는 보통 천 년 단위로 헤아린다.
한 인간은 그가 태어나기 백 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오늘 우리는 백 년 전에 만들어졌다.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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