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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Apr 30. 2021

하수구에서 용 난 이야기

영화로 보는 현실 풍경 -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에는 극장에서는 개봉되지 않은 듣도 보도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의 대부분은 사전 정보도 부족해 선택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게 장고 끝에 어찌어찌 한 영화를 선택해 보다 보면 대부분 중간에 끄거나 다 보고 난 뒤 시간낭비에 대한 자괴감으로 한동안 넷플릭스 영화는 멀리하게 된다. 그래서 현재 '찜' 리스트에는 수많은 영화들이 잔뜩 쌓여 있다. 언젠가 한가 할 때, 또는 영화가 정말 고플 때 꺼내봐야지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번 영화만은 제발 날 실망시키지 말길 바라면서...

'힐빌리'는 우리나라 말로 '촌뜨기, 촌놈'을 뜻하는 명칭이라고 한다.

'힐빌리의 노래'는 넷플릭스 영화지만 내 찜 리스트에 저장된 영화는 아니었다. 윤여정 씨와 오스카 여우조연상의 후보로 경쟁했던 '글랜 클로즈'가 출연한 영화가 마침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라는 것, 그리고 감독이 상업성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받은 '론 하워드' 감독이라고 하여 이 '따끈 따근'한 신작을 고민 없이 보았다. 그런데 보다 보니 영화 보기 직전에 브런치에 올렸던 '내 삶의 최선이 아이의 최선?'의 글 내용의 일부와 묘하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이 영화는 부모 역할은커녕 자신 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엄마(아빠는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의 아이로 태어나고 길러졌음에도 인생의 낙오자로 추락하지 않고 변호사가 되어 미국 전통적 선전 문구인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J. D. 밴스' 사람의 실화, 즉 개천에서 용 난 사람 이야기다.(그 사람의 수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개천에서 용이 난 또 다른 실화 '블라인드 사이드' 재미로 따지면 이게 최고다.

위 포스터의 '블라인드 사이드'처럼(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개천에서 용 난 이야기는 이전에도 많았던 소재다. 그럼에도 이 소재는 몇 번을 우려먹어도 사실 재미있다. 누군가가 오만 역경을 이겨내고 자기가 희망하던 목표를 - 지위, 명성, 부 등 - 이루었을 때 그 쾌감은 관객에게 충분한 대리만족을 주는 아이템이기 때문 일 것이다. 특히나 그것이 실화라면 말이다. 그러니 미국이 '아메리칸드림'을 그렇게나 써먹는 것 아니겠는가.




이 영화에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 배경에 깔려 있다.(원작 소설에는 더 자세히 그려진다고 한다)  이제는 미국 영화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등장하는 '알콜과 약물 중독' 그리고 한때 미국 제조산업을 상징하는 도시였지만 지금은 범죄 도시의 대명사가 된 디트로이트를 대표로 '러스트 벨트'라 지칭되는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의 몰락한 공업지대, 그리고 그곳에서 지역의 몰락과 함께 빈민층으로 추락한 백인 노동자들 - 바로 이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 바로 그 가족들의 척박한 삶이 녹아 있었다.


주인공의 할머니는 13살에 남친과 가출해 달아났다. 그 할머니에게서 태어난 엄마와 이모는 할아버지로부터 육체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며 성장했다. 그러니 올바른 인격이 형성되었을 리 없다. 엄마는 공부에 재능이 있었지만 가족 중 누구 하나 응원은커녕 관심조차 없었다. 이것이 그녀에게 평생의 가슴속 응어리, 즉 '한'으로 남아 있었고 이 '한' 그녀 분노조절 장애약물 중독에 빠지게 했다. 이런 집안의 아이에게 '바른 교육'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고통'의 대 물림이 삼대를 거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J. D. 밴스)의 타고난 영혼은 참으로 선하다. 동네에 나타난 상처 입은 거북이를 - 주변 친구들에게는 장난감일 뿐 -  조심스럽게 원래 살던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심성 고운 아이다.('블라인드 사이드'의 주인공도 타고난 기질이 굉장히 선한 사람이다.)  거기다 영민하기까지 하다. 바로 직전에 브런치에 올렸던 '내 삶의 최선이 아이의 최선?'에 표현했던 것처럼 이 엄마는 '로또'를 맞은 거다. 그런데 엄마는 로또를 맞은 줄 모른다. 손에 쥔 로또를 현금으로 바꾸는 수고만 들이면 되는데 그 로또를 휴지처럼 구겨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이렇게 엄마의 고통이 자식들에 다시 대물림될 것 같던 이 집안사가 할머니의 '대오각성'으로 반전이 일어난다. 얼마 전 유튜브의 AI가 권유한 어느 프로그램의 제목 "인생에서 한 번은 독해질 필요가 있다."처럼 할머니는 독한 마음을 먹고 엄마의 손에서 손자를 구해 자신이 직접 돌본다. 비록 그 돌봄이 투박 했지만 분명한 건 '진심'이었다는 거다. 영혼이 선하고 영민한 주인공이 그 진심을 몰라볼 리 없다. 잠시의 방황을 접고 그는 할머니의 열망을 받아들이고 미꾸라지에서 용이되어 승천한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보고 있는 내 입에서 탄식과 욕이 나올 정도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만감이 교차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리고 이런 영화를 보니 더욱 그러했다. 거기에 이 특별한(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이야기가 사실 내 삶에도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부모)은 없다. 마찬가지로 내 부모님도 완벽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일 뿐 내게도 부모와 관련된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또한 우리 아이들 입장에서도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내 고통이 자식에게 전달되 듯 부모가 내게 물려준 고통의 일부는 이전 세대에서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책임을 일방적으로 전가할 수 없다. 그렇다고 비탄에 젖어 탄식과 원망만으로 세월을 보낼 수 없다. 고통의 수레바퀴를 멈추려면 '대오각성'과 용기, 즉 '인생에서 한 번은 독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런 과정을 이 영화처럼 거칠지는 않았지만 거쳤다. 언젠가 이 부분만 따로 글로 올리겠지만 아이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정말 '목숨'을 걸었던 적이 있다. 무슨 '목숨'까지 들먹이냐 하겠지만 그때 내 감정은 그러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불완전한 존재.
완전할 수 있는 존재.
존재의 목적이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

- 몬드라곤의 창설자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 어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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