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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May 14. 2021

어쩌면 두 번 다시 못 볼 풍경

푸른 하늘과 은하수, 이 세상의 실로 아름다운 것.

5월 9일(일요일), 하늘은 정말 쾌청했다. 창문 넘어 저 멀리 보이는 산의 나무가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공기는 투명했다.(밖의 공기 질을 측정하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요 며칠, 유달리 심했던 황사 덕분이었을까? 황사와 미세먼지가 거친 하늘은 손에 닿으면 물이 들듯 푸르렀다. 이런 날, 집에 콕 박혀있다면 그건 '죄'인 거다.

후다닥 밥을 챙겨 먹고 낡은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 쏟아지는 햇빛... 바람은 나뭇잎들을 흔들어 초록빛을 산란시키고 작은 호수에는 황금빛 물결을 일으킨다. 이런 날은 밖에 나가야 한다. 비록 작은 시간밖에 낼 수 없다 하더라도 나가야 한다.




올해 1월에 핀 눈꽃, 차 안에서 찍어야 했음이 아쉬웠다.

벌써 십오 전 기억이다. 어느 해 겨울, 회사에서 단합대회를 겸한 야유회를 가자고 한다. 젊은 사원들에게서는 불만이 툭툭 터져 나왔다. 이 엄동설한에 그것도 내 소중한 주말 하루를 희생해야 하니 말이다. 장소는 강원도 양양의 '미천골'이라는 깊은 산골의 산장이었다. 까라면 까야 하는게 직장인의 숙명이니 다들 마지못해 회사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산길은 험했다. 비포장에다 전날 폭설로 쌓인 눈까지... 차는 거북이 걸음에 수시로 휘청거리고 미끄러졌다. 다들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자연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온 산은 순백색의 하얀 융단을 덮어 놓은 듯했고 나무들은 환상적인 눈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런 은하수를 예전에는 쉽게 볼 수 있었다. (원본 출처 - 픽사베이)

산속에서 해는 금방 떨어진다. 어둠이 짙어지고 저녁 식사를 위해 야외에 마련된 바베큐장에 모인 사람들 입에서 감탄이 쏟아졌다. 산장 주변을 뒤덮은 눈이 조명과 달빛에 반짝이며 낮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연의 선물로 사람들의 마음은 풀어졌고 '하하 호호' 웃으며 수다와 음주로 밤은 깊어갔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 '와~'하는 탄성을 터뜨리며 우리에게 하늘을 보라 한다. 모두의 눈이 밤하늘을 향하자 정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하늘을 가득 메운 수많은 별들이 땅 위의 눈처럼 반짝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게 다 별이야? 아니 하늘에 별이 원래 저렇게 많아?'


그랬다. 우리 회사의 젊은 사원들은 이런 광경을 처음 봤다고 했다. 심지어 하늘을 뿌옇게 가로지르는 것을 보고는 서로들 '구름'이다 '연기'이다 라며 설왕설래하고 있었다. "저건 은하수야"라는 내 말에 우리 회사 막내는 "저게 말로만 듣던 은하수라고요?" 하며 놀라워했다.




출처 - 픽사베이

사십여 년 전 어느 여름밤, 난 열대야를 피해 집 옥상 평상 위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봤다. 서울이었음에도 그때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밤바다 보다 더 깊고 검은 광활한 하늘과 반짝이는 별, 이 풍경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아름답지만 한참 응시하다 보면 가끔 알 수 없는 공포가 스며든다. 그렇게 누워있다 보면 초딩답게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내가 응시하는 저 별에도 누군가 누워 이쪽을 보고 있겠지...



그리스 천문대, 별마로 천문대는 이렇게 근사 하지는 않지만 꼭 한 번을 가볼만하다.

2021년 2월 어느 날, 어느덧 '별마로 천문대' 방문이 세 번째다. 처음 방문했을 때가 2005년이니 그동안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언제나 어린아이일 것 같은 내 아이들은 어느새 이십 대 성인이 되었다.  큰 성인이지만 녀석들은 천문대에 올라 밤하늘의 별을 보면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더욱이 별똥별이라도 목격하면 깨방정을 떨며 감탄한다. 그런데 난 사실 여길 올 때마다 실망과 의문이 컸다. 이런 오지의 산 위에 자리 잡은 큰 천문대의 밤하늘이 어릴 적 서울 주택가의 옥상에서 봤던 밤하늘보다 초라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 실망과 의문은 천문대 연구원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가뜩이나 미세먼지로 '별' 관측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영월 지역이 관광지로 발전하면서 - 예전에는 탄광촌이었다. - '광해'까지 심해져 밤하늘에 보이는 별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난 '광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들었다. 광해(光害)는 '빛 공해'라는 뜻이었다. 산 아래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도시의 불빛, 대 도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불빛이었지만 가냘픈 별빛을 밀어내기에는 충분했던 것이다. 그날 난, 인간의 편의와 안전을 위한 불빛이 공해(公害)가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 뒤 몇 년이 더 흐르고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내 눈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 나이가 들어 밤 눈이 어두워진 것을 몰랐다. 그러니까 내 아이들에게는 보이던 상당수의 별이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자연도 나도 시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미세먼지 하나 없이 공기가 청정한가? 그럼 주변이라도 좋으니 산책을 나가보자,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마스크를 벗고 심호흡으로 기계로 걸러진 공기가 아닌 자연이 만든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셔보자. 그리고 피부로는 따스한 햇살을 느끼고 눈으로는 아름다운 초록의 향연을 감상하자.


 아! 낮에 일이 있어 못 나갔는가? 괜찮다 맑은 날 저녁 노을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 아하 그것도 깜빡하고 지나쳤는가? 그럼 밤하늘이라도 올려보자 비록 '광해'로 별은 몇 개 보이지 않겠지만 맑고 밝은 달은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연... 비록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해도 아직은 아름다운  을 어쩌면 이제 두 번 다시 눈에 담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세상의 실로 아름다운 것을 목도하는 순간 사람은 노예가 되길 멈춘다.      

     - 넷플릭스 영화 '화이트 타이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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