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똥밭 May 28. 2021

BTS? 난 Scorpions!

그냥 음악 이야기 1.

빌보드 차트를 쥐락펴락 하며 시쳇 말로 '국뽕'을 차오르게 하는 아이돌 BTS, 아무래도 최신 유행 음악에는 둔감할 수밖에 없는 중년의 나이지만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일뿐이다. 나이와는 관계없이 아이돌 음악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노래 'Dynamite' 만큼은 귀에 쏙 들어왔다. 그 이유는 독일의 전설적인 밴드이며 나의 오랜 아이돌 'Scorpions'의 동명 곡 'Dynamite'를 내 기억에서 소환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각종 매체에서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BTS 멤버들의 곱고 부드러운 목소리 '♬ 다 다 다 다 다이나마이트~♪♬' 가 흘러나오면 내 머릿속에서는 중금속의 기타음이 터지면서 스콜피언스의 보컬 클라우스 마이네의 강열한 목소리 '다나마~ ♪♬♪ 다나마~ ♪♬♪'와 그들의 광적인 라이브 공연 'World Wide Live'의 한 장면이 자동으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딸이 중학생 시절, 아이돌 문화가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기 시작한 그 언젠가부터 십 대 소녀라면 보이 그룹 하나쯤은 '우상(아이돌)'으로 모시는 게 당연시되다 보니 나 또한 딸이 어떤 보이 그룹을 좋아하는지 문뜩 알고 싶었다. 그래서 딸에게 물었다.


"울 딸 넌 어떤 아이돌 좋아해? 동방신기?"


돌아온 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내 딴에는 십 대의 딸과 정서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아는 척 한건데 그 표정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그럼 샤이니?"

"아놔~ 나 그런 애들 싫어해 난 '방탄소년단' 좋아해!"


퉁명스러운 대답에 순간 '빠직'하며 감정에 금이 가는 느낌을 받았지만,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물었다.(난 명칭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방탄'하면 난 이 '방탄'이 떠오른다. ^^

방탄? 순간 내 머릿속에는 홍콩배우 주윤발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오래전 영화 '방탄승려'가 떠 올랐다.


"그러니까 '방탄복'할 때 그 방탄?"

"맞아, 그 방-탄-소-년-단"


'동방신기'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도 아이돌 그룹의 명칭이 특이점에 온 듯 했는데 이제는 한술 더 떠 '방탄소년단'이라니(곧 알게 되었다. '방탄'은 세상의 위해한 환경에서 청소년들을 지켜준다는 의미와 방시혁씨가 이 밴드의 아버지라는 중의적 표현이었음을 ^^), 여하튼 난 눈치도 없이 '웬 듣보잡?'이라고 했다가 알지도 못하는 '꼰대'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이 당시 '방탄소년단'은 '듣보잡'까지는 아니었지만 아직 인지도가 낮은 신인 아이돌이었다는 것과 내 딸의 취향이 '비주류'였다는 것이다.(예전에는 이런 취향의 사람들을 '아웃사이더'라고 불렀다. 요즘의 '아싸'와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난 남들이 다 좋아하는 아이돌들은 싫어, 나만의 아이돌이 좋아"


묘한 느낌이었다. 나도 그 나이 때 그러했기 때문이다. 딸이 또래 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거부했듯, 난 당시 내 또래가 즐겨 듣는 팝송, 가요 같은 말랑한 음악에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물론 마이클 잭슨은 예외다. ^^) 가능하면 대중적이지 않고 개성 있는 음악을 찾았고 그렇게 내가 좋아했던 음악은 락도 아닌 '헤비메탈'이었다. 그리고 당시 그 바닥에서 가장 잘 나가던 밴드가 바로 독일의 'Scorpions'였고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가 'Dynamite'였던 것이다.




인간의 발명품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을 꼽으라고 하면 난 주저 없이 '음악'을 꼽을 것이다. 음악의 힘은 너무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슬프고 우울할 때 어떤 이의 입바른 말보다도 위로가 되고 세상의 압력에 위축되고 찌그러지면 맞서 싸우라 독려한다. 야외에서 듣는 음악은 자연의 풍광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비 오는 날 흐르는 멜랑꼴리 음악은 마음을 치유한다. 러닝머신 위에 몸을 올릴 때마다 '나태'라는 악마는 '이제 그만'이라 유혹하지만 강열한 비트의 음악은 무거운 엉덩이를 걷어차며 다시 움직이게 한다.

스콜피언스의 음악을 들려주는 어느 음악 채널에 달린 댓글, 출처 - 유튜브

그리고 음악의 진짜 놀라운 능력은 바로 영혼의 타임머신이라는 거다. 우리의 몸을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기계는 지금도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그때 그 시절을 바로 어제처럼 소환하는 마법을 가졌다.




최근 언젠가 딸에게 BTS가 세계적인 스타가 돼서 기분 좋겠네 라고 말을 건네자 딸은 이런 말을 했다.

 

"이제 그만 놓아줘야겠어, 슈퍼스타가 되니 내가 키운 것 같아 기분은 좋지만 이제 나만의 아이돌은 아닌 것 같아서..."


확실히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한다 해도 사람의 감정은 어느 시대나 비슷한 모양이다. 그때 나도 그랬었다. 말 그대로 '우리끼리'만 좋아했던 이 음악을 좋아하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하이텔, 천리안의 취미방) 너무 반가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고, 아직 본격 입문 못한 누군가(일면식도 없던)에게는 유망한 밴드를 소개하고 카세트 테잎에 좋은 곡만 선정해 녹음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우리 편으로 끌어 들었다. 그렇게 우리만의 세계에서 우리끼리 좋아하던 밴드가 훗날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을 때, 내 딸처럼 나만의 '우상'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 같았던 그 모순된 기분을 그때 나도 느꼈었다.


음악은 일상의 먼지를 영혼으로부터 씻어 낸다. -Red Auerbach-



작가의 이전글 어쩌면 두 번 다시 못 볼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