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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Jul 22. 2021

호구가 되지 않는 법

타인의 시선으로 사는 피곤한 시대.

'일체유심조', 역시 사람은 마음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맞다. 최근 한 달 동안 내게 닥친 여러 가지 부정적 일들은 그 사건의 경중에 관계없이 내 멘탈을 뒤 흔들었고 일상을 깨기에 충분했다. 비록 코로나 시국의 '홈트레이닝'이었지만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은 꼬박꼬박하던 운동도 중지했고, 주에 한 번은 꼭 올리리라 마음먹은 브런치 글도 중단했다. 그리고 신경은 면도날처럼 곤두서 있었다. 수년 전 언젠가처럼...


그러다 한 달 여를 질질 끌던 지극히 개인적인 분쟁이 해결되었다. 이번 해프닝(우연히 일어난 사고)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나를 포함해서) 중 그 누구도 잘못이 없었다. 살다 보면 언젠가 일어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고 그 해결책 또한 사고로 인한 피해를 확인하고 그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받으면 끝나는 매우 단순하고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고민이 그러하듯 인간 사이의 문제는 참으로 녹녹지 않다. 특히 '돈'이 핵심이라면 말이다. 누가 좀 더 이득을 취하느냐 손해를 보느냐의 줄다리기는 일상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 사건을 매듭지은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처럼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시대' 에는 분명 서로 보상해주고 받아야 할 금액이 객관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 소리는 어차피 줘야 할 돈과 받아야 할 돈이 비교적 명확하다는 거다. 한마디로 서로의 입장 대립에 작용하는 금액이란 수준은 거기서 '조금 더'에 대한 대립이고 그 금액이 이렇게나 에너지를 소모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도 나를 포함해서 이번 해프닝에 직접 연루된 사람들은 왜 한 달의 시간 동안 쿨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질척거렸을까? 여기에는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하는 화두가 하나 있었던 거다.


'난 호구가 아니야!!'


사실 이거였다. 이 해프닝이 끝나면 주변에서(물론 나 스스로도) 이번 사건 처리에 대해 평가를 내릴 것이다. 그 주변이란 것은 주로 가족과 지인 그리고 가끔 지나가던 제삼자까지 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말을 툭 던질 것이다. 


"호구 잡혔네, 손해 본거잖아, 왜 손해를 봐?"  

 

우리가 아마 가장 무서웠던 건 어쩌면 '돈'이 아니라 주변의 이런 평가나 눈치였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가족,  친구, 동네 이웃사촌을 넘어 최근 페이스 북, 인스타그램으로 상징되는 범 지구촌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는 이 시대의 이념으로 자리 잡은 '능력주의'가 녹아 있다. 그러니까 '호구'를 달리 말하면 '무능력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랭 드 보통의 저서 '불안'에 한 문장이 무척이나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돈만큼이나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존경을 추구한다."


이 문장의 '존경'이란 단어는 결국 '능력자'란 의미와 연결된다. 돈도 잘 벌어야 하지만 '호구'도 되지 않아야 하는 세상, 참 피곤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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